[qrwerq, photo] 선선하고 치열했던 밤.

in #kr6 years ago

Oct. 2018, Seoul, Nexus 5x


선선한 가을밤이었다. 아직 몇몇 나무는 여름의 푸르름을 머금고 있었지만 피부에 닿는 공기는 선선함을 넘어서 서늘함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이 날, 회의의 격론과 바깥 풍경의 한적한 여유가 같은 날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치열함은 꼭꼭 숨어 있기도 하다.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내 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성향 또한 틀리지 않기를 바란다.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오면, 결국 선택을 더 잘하거나 좋아하거나 강하게 하는 사람의 성향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권한이 위임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맡겨졌다가 얹히는 경험을 했다. 이는 역할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나쁜 징후이기도 하고 그만큼 상황에 따라 조직이나 사람들의 역할이 가감되거나 변할 수 있는 적응성을 나타내는 좋은 징조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상황 해석은 양면적이기에, 다른 여러 증거들이 뒷받침 되어야 할테지만 말이다.


Oct. 2018, Seoul, Nexus 5x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는 이미 가을인 것이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가을 쯤 되면 이 선선함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고민에 휩싸이곤 한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대해 슬퍼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음에 기뻐해야하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가을의 빛, 기분이 물드는 시점의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물론 고민에만 빠지기에 10월은 너무 좋은 달이다.

서로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심한 어둠이 거리에 깔리면, 사람들은 빛으로 스며든다. 나도 그 일부가 되어 어디론가 훌쩍 걷는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있었고,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어떤 길을 택할까 생각하다가 둘러둘러 선선함과 어둠과 사람과 빛과 바람이 뒤섞인 경로를 택하기로 했다. 최단 경로로만 가기엔 뭔가 재미가 없다.


치고 받는 회의를 한다는 것은 의외로 상당히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다.
단,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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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제법 기온이 떨어집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밤에는 좀 쌀쌀하긴 하더라고요.

선을 넘지 않는다는게 중요한데 현실에서는 참 어렵네요. 더군다나 갑을관계가 되면... 밤에 찍으신 사진들이 좋네요.^^

하다보면 선을 넘게 되는 일도 발생하곤 합니다. 저는 (방어적 입장의 경우) 즉시 주의를 주거나 (공격적 입장이었던 경우) 바로 사과하는 편입니다. '을' 없으면, 상대방도 '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끔 환기시키곤 합니다만, 사실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그때 그때 풀어야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을이 없으면 갑이 없다는 말 너무 좋은데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보복이 두려운거죠. ㅠㅠ

그렇습니다. 서로 마이너스가 되는 게임을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겠지요.

존중이 살아 있는 ... 치고 받는 회의

감정 개입이 절제되는 격렬한 회의가 떠오릅니다. 예전 국제 프로젝트 근무 시, 계약 문제로 얽혀있는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출신들이 수시간에 걸친 회의에서 핏대 올리며 논쟁을 벌이다가도, 끝나고 나면 서로 사이좋게 밥먹으러 가곤 하는 모습이 참 근사해 보였습니다. So Cooool~ ^^

아마도 서로 믿거나 믿을 만큼 치고 받는 수준의 선을 알고 있는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분야가 단지 사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관계의 측면에서도 가능한 것 ("적을 만들지 말라" 같은 격언을 생각해 보면 말이지요.)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습관이나 문화인듯 했어요. 고수들의 느낌 ^^

전 다가올 매서운 겨울을 두려워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

저는 그 겨울의 매서움 - 피부를 자극하는 따가운 추위가 참 좋더라고요. 살아있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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