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표지를 뒤적임.

in #kr8 years ago

종종 예전에 살았던 동네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에 관한 표지는 때론 놀라운 것이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에서의 마들렌의 냄새가 굳이 아니더라도 [1,2] 듣고 있던 음악이나 내가 취하던 자세만으로도 그 때의 감정과 생각이 명징하게 그려지곤 한다.

세상을 담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문득 살던 곳과 그 곳에 살던 내 모습이 그리워질때면, 사진을 들추어보거나 혹은 (조금은 희한한 취미이지만) 네이버나 구글맵에서 제공하는 지도의 거리사진 - 특히 새롭게 업데이트 되기 전의 풍경 -을 검색하고 돌아다녀본다.

일종의 기억과 추억에 관한 되새김질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내 삶에서 지금 당장 무엇이 변한다거나 영향을 받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허나 삶의 궤적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현재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과, 앞으로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기억의 표지와 같은 작금의 경험들이 퇴적될 것을 알기에, 시간 축에서는 연속적이지만, 주관적으로 잘게 나누어진 기억의 실타래라는 측면에서는 도저히 연속적으로 보이지 않는 지난한 과정들을,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고 다시금 무언가를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작업을, 기억의 갈피를 만드는 작업이라 칭한다. 스스로 잊지 않고 싶은 순간에 대한 트리거 표지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2014.4. 청주. 넥서스5

스스로 돌이켜볼 때 어디서 사는가에 마음이나 생각이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학자 헤겔[3] 을 생각해보라. 헤겔은 살았던 곳 기준으로 자신의 의식에 관한 세대가 정의되는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물론 내가 그런 거대한 철학을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과거의 감정과 생각을 소환하는 기억의 표지가 '살았던 동네'라는 것이 어쩌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시점의 바로 그 동네는 결국 이젠 머릿 속에만 존재할 뿐 보고 만지고 디딜 수 없다는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의 나 자신도 지금의 내가 보기엔 1인칭과 3인칭이 결합된 녹화된 비디오테이프 속 등장인물 같은 것이어서 가끔 이렇게 아련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반복 재생하다보면 언젠가 늘어지고 알아볼 수 없게되다가 결국 끊어질 것 -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게될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지금의 순간들도 언젠가 아련해질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

항상 머리로 먼저 알고 마음으로 늦게 아는 것 같다.
마음의 갈피는 이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Ref

  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옴
  2. Why Do Smells Trigger Memories?, Scientific American, 2016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why-do-smells-trigger-memories/
  3.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9760&cid=41978&categoryId=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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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팔로우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종종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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