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비오는 날의 공원

in #kr6 years ago

Seoul, May. 2018, Nexus 5x


비오는 날의 공원을 정말로 좋아한다.


사진은 문장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담기에 최적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 때면 생각과 지식보다 감정과 상념을 떠올린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이 사진을 바라보아주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응하는 것을 상상한다. 시선으로 구성된 세계로의 초대와 같은 느낌이다.

최근에는 동영상을 찍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기록에 담기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순간의 호흡을 떠올리는 작업은 좀 더 쉬워지고 날 것에 가깝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가 또독또독 떨어지는 소리가 공기에 퍼지면 나는 그것을 서서히 모은다. 존재들이 서로를 노크하는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여러가지 기록 수단은 우리의 기억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제는 어떠한 날짜의 라벨을 붙이지 않으면, 바로 오늘 겪고 있는 것 만큼 생생하게 보인다. 사진의 빛바램이나 인화지의 날짜 각인 같은 건 정말로 예전 시대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모든 순간들은 시간의 구분이 없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고 삶을 이룬다.


Seoul, May. 2018, Nexus 5x


비가 많이 오는 날, 물방울들이 곱게 깔린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런 날에는 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부드러운 공기의 질감이 여러 존재들을 감싸 안는 느낌이다. 대체로 비오는 날의 공원에는 사람이 적다. 비가 많이 올수록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공원의 세세하고 소소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습기가 짙게 깔린 날이면 문득 제주의 비자림을 가보고 싶어진다. 조금 더 원시적인 형태가 남아있었으면 하지만 그래도 빽빽히 들어찬 초록 물결을 보는 일은 즐겁다. 물기를 머금으면 좀 더 깊고 푸른 색이 난다. 5월이지만 여름을 잠깐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Seoul, May. 2018, Nexus 5x


완연한 5월이다. 5월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다. 비오는 5월에는 수줍은 연둣빛 생이 돋아나고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씩 발을 내딛는다. 하나 둘 땅에 노크를 한다. 본래 우리의 리듬감은 자연에서 왔다. 우리의 의지와 자연의 중력이 빚어내는 주기적인 섭동이 결국 걸음의 박자를 결정할 것이다.


일상을 담는 사진은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제어하기도 어려울 뿐 더러, 한번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놓치기 때문이다.모든 일상은 발견되는 순간 비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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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나무 길 걷고 싶어요

비오는 날, 무수한 나무들이 서있는 길은 참 걷기 좋은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지요

날이 좋와도
날이 흐려도
비가 내려도

나무가 있는 길의 운치란 늘상 좋아요

초록이 촉촉하게 젖은 느낌에 사진에서 초여름 느낌이 물씬나네요~!

나중에는 영상도 구경할 수 있겠죠?^^ 기대됩니다.

조금 있으면 초여름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계속 봄인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여름이 오면 공기는 맑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

최근에 어디를 가든 풍경의 영상을 수집하곤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올려보아도 괜찮겠네요-

사진을 보면 영상도 기대가됩니다^^ 좋은 사진, 영상 많이 보여주세요~!

오우~~~!!!
사진들 그리고 가슴을 적시는 글~

감사합니다. 한 달에 한 일주일 정도는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ㅎ

저도 동감이요~~!!!^^

일상을 담는 사진은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제어하기도 어려울 뿐 더러, 한번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놓치기 때문이다.모든 일상은 발견되는 순간 비범해진다.

이런 시선을 두고 통찰이라고 하지요.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이러한 칭찬이 익숙하지 못해 칭찬을 받으면 뭔가 몸이 디스코춤을춥니다ㅎㅎ

오호... 그 춤 솜씨, 한 번 보고 싶네요. ;)

요즘 날씨가 줄곧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올려주신 글과 사진으로 너무 멋진 5월의 표정을 마주하고 갑니다-감사해요-🙏

그렇습니다. 봄이자 여름인 날씨가 (후덥지근하지만 않다면) 묘한 조화를 이루는 느낌입니다. 매년 5월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

비록 스마트폰 카메라이지만, 매번 조리개 말고 모든 감각을 열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보면서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감각을 열어두려 하면, 그만큼 순간은 느리게 지나가고 삶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조금 더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깨어있으려 노력합니다. 제 시선이 잘 닿을 수 있었다면 정말로 다행입니다. :)

카아, 상큼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후각적 편안함이 참 좋았는데, 전달하기 어려워 참 아쉽네요 :)

비오는 날의 정취가 잘 느껴지는 사진이네요.
왠지 빗소리가 다른 소리들을 감춰서 고요하고 침착해지는 느낌...

빗소리가 들릴 때면 다른 존재들이 모두 멈춰서 귀를 기울이는 느낌일까요, 비오는 날 특유의 정취를 좋아합니다 :)

멋진 말입니다. 글로 담지 못하는 것을 담는 수단이라. 😁👍👍

글과 사진 이외에도 여러 수단이 있겠지만, 제가 주요하게 쓰는 도구는 아무래도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

깨끗하게 목욕한 초록초록 나무들과 초록잎 이뻐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울 때 인것 같아요^^

저도 지금이 참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나무들로부터 젊음이라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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