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렇게 썩어가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처럼 보였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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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Q의 얼굴에서 근심이 떠나지를 않았다. 차마 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거나 지극히도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유일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길어야 며칠이면 예전의 모습으로 보기 좋게 돌아올 것이라고 어쩌면 안이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섣부른 위로나 격려 따위를 하기보다 때로는 모르는 척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상책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시간은 무심하게도 빠르게 흘러 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인사 마저도 주고 받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고나서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됐다. 평소 동료들과 스스럼이 없던 그였기기도 한데다, 대체로 말을 잘 옮기거나 하는 호사가가 아니었기에 어떤 이유가 그를 그토록 메마르게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적막하고 침울했다. 특정 한 사람에게만 지워진 일종의 형벌이었다. 떨리는 미간에 힘을 바짝 준 채 모니터를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던 그의 표정은 종종 울그락불그락거렸고 이따금씩 겨우 참은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두가 그의 침묵을 종용했으며 방관하고 있었다.

그를 가운데 두고도 빼놓은 채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약속 따위를 잡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유독 강씨의 행동이 두드러졌다. Q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술자리를 제의한다던지, 가족 모임이나 골프 활동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Q가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뻔히 그가 자리한 곳에서 공연하게 그랬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그들 중 그 누구도 강씨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주의를 주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나는 단 한 차례도 목격하지 못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 그랬다. 게다가 강씨는 그의 후임이었고 대여섯살이나 어린 친구였음에도 말이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매일 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나 싶었던 나는 고작 며칠이나 몇 차례 정도로 그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고, 오히려 갈수록 심해졌다. 몇 차례의 예를 들자면, 점심시간, 먼저 자리를 잡은 팀장을 따라 마주 앉은 Q가 국을 한 숟갈 떠 마실 차에, 식판을 들고 온 강씨가 다른 식탁을 찾아 앉은 적이 있었다. 이에 뒤따라 오던 다른 동료들은 강씨를 따라 하나둘씩 같은 식탁에 앉았고, 그들의 눈치를 보던 팀장 역시 그들과 같은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가버렸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지켜본 Q는 들었던 수저를 잠시 내려놓고 식당 입구 쪽으로 조그맣게 난 창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심경이 어떤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그는 상처받았고,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됐다. 굳이 어떤 이유로 그가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를 설명하는데 있어 현학적일 이유도, 일일이 증거 따위를 들어 설명해야만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이나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분명할 만큼의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나조차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는 Q의 미련할 만큼이나 깊은 참을성과 진지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다른 날에 있었던 일이다. 먼저 구내식당으로 향한 Q가 배식을 받고 있었다. 뒤이어 식당으로 온 J의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통화를 채 마치기도 전에 집어 든 빈 식판을 내려놓고는 부리나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상황을 나 혼자만 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도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어떤 의미로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반찬 코너에서 반찬을 뜨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배식구 근처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도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을 괴로워했다.

또 한 번은 회사의 연중행사로 체육대회에 함께 간 그의 아내에게 인사 한번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은 적이 있다. 모두가 강씨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듯 모든 시선을 쏟아놓고 있었다. 그나마 몇몇의 형식적인 인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도 못했다.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그의 아내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남편의 표정을 살피기에 바빴다.

부부는 평소 안부를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며 지내던 환경미화원 분들과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참을성이 많은 Q였지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쉬이 받아들이기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라든지 그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둘의 관계 역시 병들어 가는 것 같은 인상이 짙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들어온 남편의 얼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근심 투성이인 것을 본 아내들 중에서 그 상황을 넋 놓고 보고 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업무의 공유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와 그들의 업무 특성상 서로가 교차 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강씨는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Q를 배제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Q가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이미 대부분은 알아차렸겠지만,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나 '그런 경우'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 오랜 시간 Q는 감내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회사에는 이런 상황을 고발하고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 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 그는 그것을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만에 하나 자신의 행동이 볼러오게 될 결과를 너무도 신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마음을 먹고도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그였다. 제아무리 자신이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측면으로만 작용할 것이 아님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일이 지나도록 고민했던 그가 내부 고발을 하기 전에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던지 팀장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면담을 신청했다.

팀장과 마주 앉은 Q는 그간의 일들을 풀어 놓았고, 꽤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자신을 위한 최후의 방어기제로 내부 고발을 생각하고 있다고 입을 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팀장의 입에서는 약간의 파열음과 함께 한쪽 입꼬리가 치켜 올랐다. 생글생글한 표정을 지으며 Q를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의 너를 보면 무슨 일만 있으면 고소와 고발을 입에 달고 사는 내 지인이 생각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둘의 면담이 끝날 때까지 팀장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상황을 떠올리고 있을 모든 여러분들의 예상처럼,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공감할 줄 알았던 Q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내부 고발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해서도 안되지. 그렇게 되면 우리 팀은 난리가 난다구. 그리고, 위에서 봤을 때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안 돼. 하지마."

팀장은 여전히 웃음을 띈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손사래를 더했다.

팀장의 얼굴과 Q의 표정을 번갈아 가며 지켜본 나로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의 도의적인 위로나 사과 따위를 기대했을 법한 Q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손을 허벅지에 깔고 앉아, 깊은 숨을 내 뱉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음을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썩어가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말과 또 그를 대신해서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사소함 나열해본들 정작 그들이 깨우치고 알아차려야 할 중요한 점은 달라질 것이 없기에,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맺고자 한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고 나오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매우 힘들어할 수 있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어,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라면 얼마든지 자그마치 2년 5개월 동안 그가 견뎌야만 했던 고통에 대해서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할 준비가 된 사람들 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Q를 포함하는 모두가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그들과는 실로 다른 존재다. 외면하거나 마주하기를 거부하고 뒷걸음질을 친들 부정되거나 엄폐되고 훼손될 수 없는 그들 보다 더 숭고한 값어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는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겠지만, '사람'들은 그 정도에 이르는 사고가 부족하거나 어쩌다그런 사람을 발견했더라도 금방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경우를 허구한 날 마주하고 있다.

때문에, 나는 Q가 더 가여웠다. Q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이미 알아 차린 사람인 듯했으며, 나를 잊지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을 지난 4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옳고 바른것에 집중했고, 혹여 다 잡지 못한 그의 실수나 격한 감정에 의한 되바라진 행동을 할 때마다 극심한 자괴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를 반복했기에, 나 역시 묵묵히 그의 곁에서 머물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지금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기란 쉽지 않다. 암묵적인 형태의 의견과 동의만 오고 가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 그의 대변인으로서 여러분 앞에 나선 것이기에 그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차츰 또 기회가 된다면 그의 손과 입을 빌려서 여러분들에게 내가 느낀 '그'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꽤 오랜 시간 종적을 감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를 기다려준 당신들에게 대신하여 감사의 마음과 오랜만의 인사를 전한다. 또 기회가 되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어떻게 하면 그가 지금과 같은 시간을 현명하고 또 무사히 이겨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고 용기를 북돋어 주어야 할 것이고 여러분보다 더 가까운 내가 힘을 다하여 그를 도와야 한다. 가끔은 나 혼자서 역부족일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언제든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구할 것이다. 그래 주길 바란다.

오늘, 이 밤. 그에게 있어 편안하고 또 따듯한 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사진, Photo by Alessio L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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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저 자주 뵐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조차 제 욕심이겠지만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우유님!! 어디다녀오셨어요?
너무 오랜만이라...
넘 반가워요!!!
그냥 혼자 소식이 막막 궁금해 지는군요^^

지난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희야님 ;)

아 그러셨구나 ㅠㅠ 저도 그랬어여 ㅠㅠ
여유되시면 저번에 못다한 이야길 다시 해봐야죠?^^ ㅋ

그래요. 조금만 더 있다가요. ;)

아~~ 우유님 복귀하신건가요~~~ ^^/
반갑습니다~~~

그 반가움, 실로 느끼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

댓글 보고 바로 달려왔어요.
정말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좋은 글 자주 읽고 싶고 소식 자주 듣고 싶어요!

버선발로 맞이해 주신 당신.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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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덕분에 이렇게 댓글을 남기며 안부를 묻습니다.

;) 맞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복 중입니다. 아직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차차 나아질거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기다렸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하지 않은 까닭으로 또 언제 자취를 감추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김리님께서 그때도 묵묵히 기다려 주실 것이라고 근거 없는 욕심과 희망을 부려 봅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어제는 8개월만에 뵌 분도 계십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쉬다 오시길.

우유님 닉네임을 보고 눈을 살짝 의심했습니다. 참 오랜만이군요. 석달이 훌쩍 지나있었네요. 반갑고 다시 환영합니다^^ 천천히 거니시길 바랍니다ㅎ

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금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

아주 격하게 반가워요.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반겨 주셔서 몹시 고맙습니다.

우아 다시 보게되서 기쁩니다~ 항상 힘을 전해주시는 밀크님 언제나 환영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니 다시 밀크님이 오신 것이 실감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무거운 얘기가 현실이라니.. 또 어떻게보면 우리 주변 어디서나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닐까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밀크님이 함께 하고 계시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평소 밀크님의 글의 분위기와 정반대로 긍정가득한 소식이 올라오는 날이 오기를 함께 응원해봅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요. 반겨 주셔서 감사할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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