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중독 14. 인재를 등용하려면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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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AD179~214), 제갈량과 더불어 '와룡봉추(臥龍鳳雛)'라 불리던 기재. 그러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낙현에서 화살을 맞아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는다.


오나라에서 제갈량의 농락에 화병을 입어 주유가 죽자 오의 책사인 노숙은 주유의 빈자리를 대신할 인물로 손권에게 방통을 천거하였다. 방통은 와룡봉추(누운 용과 봉황의 새끼)의 봉추에 해당하는 인물로, 일찍이 서서는 ‘와룡(제갈량)과 봉추(방통) 어느 하나라도 얻으면 천하를 편안하게 할 것’이라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손권은 방통의 외모가 너무 못나고 말하는 것이 퉁명스러운 탓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방통을 돌려보냈다. 노숙은 주군의 실책이 안타까운 와중에 훌륭한 인재가 초야에서 썩는 것이 아까워, 방통을 만나 추천장을 써주며 유비에게 의탁할 것을 권한다. 마침 주유의 장례식차 오나라에 있던 제갈량도 방통을 만나 유비에게 의탁할 것을 권하며 추천장을 써주었으므로, 방통은 유비를 찾아간다.

그러나 방통은 유비를 만나 일부러 노숙과 제갈량의 추천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유비도 역시나 추한 외모에 실망하고 차마 내치진 못해 그를 뇌양현이라는 지방 구석의 현령으로 임명한다. 그러자 지방으로 내려간 방통은 백여 일 술을 퍼마시며 전혀 업무를 보지 않았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고 그 소식이 본성에도 전해지자 유비는 장비를 보내 진상을 캐도록 했다.

과연 장비가 뇌양현에 이르니 방통은 술에 취해 업무를 돌보지 않고 나자빠져있을 따름이었다. 대노한 장비가 방통을 추궁하자 방통은 코웃음 치며 그동안 밀린 업무를 모두 가져와 처리하니 그 신속함이 이를 데 없고 공정함은 잘 벼린 칼날 같았다. 반나절 만에 장비의 눈앞에서 일을 끝낸 방통이 “아직도 내가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하자 그제야 장비는 방통의 신묘함을 깨닫고 군사 (軍師)대우를 하며 유비에게 찾아갔다. 이후 방통이 비로소 노숙과 제갈량이 주었던 추천장을 꺼내보이자 유비는 크게 후회하며 방통을 군사로 대우한다.

실제 정사(正史)에서는 이 일화 속 방통의 임관과정이 조금 다르게 표현돼있으나, 유비가 방통을 홀대했다가 중용한 것은 일치한다.

이 일화의 핵심은 외형적인 판단요소가 실제 일처리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음을 내포하는데, 스펙만능주의인 요즘 시대에도 적절히 들어맞는 이야기다. 과연 걸출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그러한 인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를 먼저 걱정해야한다. 즉, 인사를 담당하는 책임자라면 일반적인 통념에서 스펙의 기준을 참고하느라 우리 집단의 정책과 비전에 부합하지도 않는 인재 정책을 잘못 채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확하게 판단해 볼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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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해졌고, 취향도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보다 '다양한' 형태의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이제 세상의 취향이 천편일률적이지가 않고, 컨텐츠 미디어 분야의 발달과 사이버 네트워크의 발달로 취미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며, 미래 산업의 영역은 한정된 틀을 벗어난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사람들이 소비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독특한 분야의 전문성이 더욱 요구됨을 의미한다. 일례로 게임 산업이 발달하면서 게임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시도가 생겨났듯이, 요즘 ‘건전한 덕후’가 주목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별다른 영화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영화를 2천편씩 보는 비디오 가게 점원인 영화광이었으며,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수학광’이었지만, 고등학교 중퇴에 취리히의 대학 입시에서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이 낙제를 받아 떨어졌다. 그러나 학장은 오직 그의 범상치 않은 ‘수학 답안지’만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하여 김나지움에서 다른 소양을 쌓게 한 뒤 “무시험 입학”을 하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였고, 훗날 모두가 잘 아는 상대성이론의 제창자가 된다.

일전에 거의 모든 차종의 외형과 제원을 외워 CCTV의 잔상만 보고 범인의 차량을 특정한 어린 아이의 일을 기억하는가. 베테랑 형사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이 아이의 미래에서 어떤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가? 혹은 레고를 이용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프린터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한 중학생은 어떠한가?

한 편 잘못된 인재를 등용해 끔찍한 사태를 야기하는 것은 멀리 볼 것도 없이 일전에 있었던 메르스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중보건학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는 ‘경제전문가’를 고위공무원의 동류전용(*부품 돌려막기)격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해 병이 창궐한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막대한 부가적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애초에 단추가 잘못 꿰어진 탓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인재 등용의 포커스를 맞춰야할 부분은 외형적인 범용성 보다는 해당 인재의 깊이 숨어있는 비범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집중력이다. 해당 과제에 정말로 가장 절실히 요구 되는 능력과 지식은 무엇이며, 과연 이것이 실제로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이를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어떻게 발굴해낼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혜안이 필요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방통처럼 봉황에게 참새의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또 하나는 독수리가 필요한데 치타를 뽑는 시험관문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대호는 커다란 앞발과 강한 이빨로 큰 짐승을 물어뜯는 일에 능하다. 그런 대호에게 작은 낚싯대를 쥐어주고 강가에 앉아 물고기나 잡고 있으면 잘 잡을 수도 없거니와, 도리어 더 큰 것을 잡을 수 있음에도 비효율적인 낭비를 초래하는 셈이다. 만일 배가 고픈데 대호가 곁에 있어준다면, 그가 이빨을 드러내고 강인한 앞발로 산을 휘저을 수 있게 해야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고기를 얻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독수리와 치타가 땅 위에서 견주면 독수리가 이길 재간이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에 하늘을 빠르게 나는 능력이 필요한데, 속도만을 측정하게 된다면 땅에서 독수리의 속도를 측정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비범함을 끄집어내고 싶다면, 그 비범함을 시험하는 일 또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색다른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틀에 박힌 사고로 수많은 '봉추'들이 참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땅을 기어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틀에 박히기 위해' 획일화 되어가는 현재 청년들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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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던 신기한 일화와 교훈을 많이 얻어가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 인물 됨됨이를 유비도 못 보는데 제가 어떻게 인물을 적재적소에 선발하겠나...하면서도 "내가 또 유비보다 못한거라곤 귀가 작은것 밖에 더 있겠냐!" 하면서 호기를 부려봅니다. 정말 인물을 보는 눈이 없어 답답한 1인

스팀잇처럼 다양한 사고가 공존하며 교류하는 곳에 머물다 보면 다방면의 획기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는지요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유비보다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

재능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이지요. 그리고 재능을 알아볼 재능이 있던 이들도 같은 공정을 거쳐 가진 야성에 맞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문명의 충돌 서두에 언급된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말이 적절히 들어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미래의 세계는 이념을 두고 벌여온 흥미진진한 싸움판을 거두고 무미건조한 경제적,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할 것이다. 그 세계는 살기에 다소 따분할 것이다." 이 세계에 더이상 야수적인 인재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역시 시대의 흐름 때문일는지요. 100만 명의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된 사회에서 이들이 마냥 고시생이 되도록 방치하는 '장님'들의 사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이 됩니다.

사람이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와룡봉추가 쏟아질텐데 모두 먹고 살기에 바빠서 공무원에만 매진하는 요즘 모습이 연상되네요 ㅠ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에 목을 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건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몰려올 것입니다. 무척 걱정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길이도 스팀잇에서 읽히기 적당한 것 같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방문하실 블로그일 것 같습니다, 재밌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최근의 풍류님 글을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고 생각을 듣고자 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pistol4747님!
@channelsteemit 운영하는 Feel通 입니다!
스팀잇의 가치있거나 감동있는 글을 영상과 음성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 글을 채널스팀잇에서 제작하고 싶은데 어떠신지 생각을 여쭙습니다.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답변 부탁드릴게요:-)

좋은 일 하고 계시는군요 :)
네 그리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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