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pen] 벚꽃이 떨어지는 날, 추억도 함께 떨어지다

in #kr6 years ago

벚꽃이 떨어지는 날, 추억도 함께 떨어지다





우리는, 아니 너와 나는 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벚꽃이 떨어지던 그 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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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에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려고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나가던 우리 과 여자후배를 만났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웃으며 인사했다. 그런데 보통 반갑게 다시 인사해주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차갑게 고개를 돌리고 가버린다. 아, 이 친구는 나와 한 때 사귀‘었’던 아이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냥 3년 만에 처음 만난 네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하던 것처럼 인사를 해주었다면, 옛날 일이 생각나지 않았을 텐데, 덕분에 잠깐 옛 일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어.


나는 2학년, 너는 새내기 때 처음 만났지. 수시로 일찍 붙어 새내기 모임을 자주 나가던 너를 만나 신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지. 발렌타인데이 전날이었지 아마? 너와 나 모두 첫 연애였기 때문에 많이 서툴렀지만, 그만큼 풋풋한 연애를 할 수 있었어.


사실, 2학년으로서 1학년 신입생과 개강하기도 전에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내가 여러 선배들로부터 ‘도둑놈’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지만, 그런 말도 나를 부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아.


같은 학년은 아니었지만, 같은 과였기에 같은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고,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었어. 지금 생각하니 특별히 거창한 것을 하지 않고 학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어도, 편의점 라면을 먹어도 마냥 좋았었네.


군대를 간다고 했을 때도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기다리겠다고 말하던 너의 모습이 생각났어. 당시에는 너무 사이가 좋았던 나머지, 주변에서 10명 중 9명이 했던 ‘일말상초’라는 말은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전역을 하고 나서도 쭉 만나는 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감히 확신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나 싶어.


사실 갓 입대를 했을 때도 신병교육대에서 적어도 내 펜은 쉬었던 적이 없었어. 틈만 나면 편지를 썼고, 훈련을 받으러 나가면서도 안주머니에 수첩과 펜은 꼭 챙겨나갔어. 힘들어도 일과가 끝나고 받을 너의 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을 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냈던 것 같아.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말은 정말 맞았나봐. 4~5달에 한 번씩밖에 나갈 수 없었던 내가 너는 싫었나봐. 전화를 하는 너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깨끗한 물에 떨어진 검은 잉크처럼 빠르게 퍼져가기 시작했고, 전화비로만 한 달에 10만원 가까이 쓰던 나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어.


이별의 그림자가 커지는 것을 느꼈고, 부대의 선임들에게 결코 보여서는 안 되었기에 몰래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치며 나홀로 다가올 그 날에 대한 준비를 했어. 결국 군대에서의 1년을 채워가던, 많은 사람들이 봄만 되면 듣고 싶어 하는 그 노래가 한창 들릴 때쯤 그 노래의 제목처럼 너와 나에게도 엔딩이 찾아왔네. 하필 그날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떨어지는 날이었지.


이제는 너와 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지 3년이 조금 넘었어. 솔직히 말하면 너와 헤어지고 군대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며 너를 다 잊었어. 전역하고 나서는 그 전에 하지 못했던 많은 활동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잘 지내왔어. 널 우연히라도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어. 내가 밉지? 생각보다 빨리 잊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내게 군 생활이 힘들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했던 것이 너를 잊는데 정말 큰 도움을 준 것 같아.


아참, 내가 이렇게 그때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것이 너를 그리워해서는 아니야. 네가 내 기억, 그것도 꽤 구석에 넣어두었던 것을 건드려서 떠올랐던 거니까, 내 스물한 살 때의 풋풋했던 기억이 그리웠던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떠나면서 떨어진 벚꽃잎에 추억을 가득 담아주었으니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라 생각이 나서 글로 옮겨보았네요.
제 속마음을 털어놓는 식이라 조금은 부끄럽긴 하지만,
진솔하고 담백하게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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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그땐 그랬지~~ ㅋ
군대 있을때 지지고보고헤어져도 편지받는 그들이 부러웠네ㅋㅋ 잘보고가용^^~

캬..감성 좋구요. 표현도 너무 좋구요.
나도 모르게 빠져서 봤네..

윽... 이런 칭찬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진지한 글? 을 쓰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것 같군요!

떨어진 벚꽃잎에 추억을 가득 담아주었다니 !! 크으~ ㅋㅋㅋ

하하... 괜찮았나요? 벚꽃잎이 옛일을 생각나게 만들었기에..그렇게 적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혼은 결국 타이밍이거든요. 그 타이밍에 어떤 사람이 곁에 있을 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친구가 될 지도 모르죠.

하..하 뭐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긴 하죠..!

괜찮아. 새로운 벚꽃은 다시 필테니까. 넌 잠깐피고지는 벚꽃과 달리 늘 네 옆에 있을 사람을 만날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겠죠...! 뭐 인연은 언젠가 생길거라 믿습니다~
이런 좋은 얘기를 해주시다니 역시 누나...흑ㅠㅠ

땅콩님 필력.. 생각보다 빨리 잊을 수 있다는 건 왠지 부럽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빨리 잊는것... 가끔은 필요하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

캬 피넛 필력봐..

아직 부족한 필력으로 열심히 써봤습니닷...이렇게 풀어내니까 후련하네요!

꽃잎은 떨어지지만 내년에 다시 다른 꽃을 피울테니 피넛이 화이팅-! 다들 겪는 과정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충분히 아파하고 괴로워한만큼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거야 :)

핫.. 형은 진짜 넘나 감성적인, 위로가 되는, 공감이 되는 댓글을 항상 남겨주시네여ㅠㅠㅠㅠ
사ㄹ... 좋아합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날 추억도 함께 떨어진다.....
진짜 박수치고 갑니다
덕분에 갬성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최고!!!

핫.. 감사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이렇게 감성에 빠져 글을 써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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