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연재] 겜블라이프 #11

in #kr7 years ago (edited)

난 어쩔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세탁실 창문을 열었다.

그렇게 구렁이 담 넘듯 집으로 스며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다리가 다 나았지만 집을 떠나지 않고 은근 슬적 뭉갰다.

여전히 일은 하지 않았다. 도저히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처지에 같잖은 직장에서 한달에 25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아서는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없다고

변명하고 집에서 놀며 한달에 250만원을 버는 대신 0 원을 선택한 것이다.

돌아 보면 이런 병신같은 선택은 또 잘하는게 나였다.

근데 사실 나는 어떤 일을 한다는것은 그 사람들과 말을 섞고 소통하며 감정도 나누며

그 공간에서의 룰을 지키고 내가 보편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어야만 했다. 내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느끼면

그들은 보통 나를 위한 것이라며 핑계대고는 사실 본인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내 생각을 바꾸려 들기 일 쑤였다. 나를 그냥 그대로 봐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틀안에서 정상적인 대접을 받으려면 그 정도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불과 몇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데

그런 세상의 틀안에 나를 맞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피곤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렵고 심적으로 압박감도 컸다 .

나는 절박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도 절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꼴리는 대로 자고 꼴리는 대로 가고 꼴리는걸 먹는게 좋다는 J말이 너무나 공감이 갔다.

하지만 J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능력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어쩌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진짜 이상해져 버린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도박에 빠지기 전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집에서 리모콘을 붙 잡고 티비나 보며 일상을 지내며 문득 문득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벌린일들이 말끔이 지워지고 잃고 버린것들이 돌아 올 수 있다면

그래서 평범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망상이 자꾸 떠올랐다.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가꾸어야만 한다.

그오랜만에 안긴 가족의 품은 남들이 일상에서 느끼는것과 달리 별것 없지만 정말 행복했다.

내일은 어디서 갈지 또 숙소를 어디로 구할지 생각을 안해도 되는것이 일단은 너무 편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도 너무 맛 있다. 나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그렇게 꽤 뛰어난 편이신데

그 중에서도 특히 미역국과 시락국 소고기국을 굉장히 잘 하셨다.

갖다 팔아도 이건 전혀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난 실수로 카펫에 오줌을 싼 개 마냥 기도 못 펴고 비록 쭈구리처럼 지냈지만 그 대상이 내 가족이라

행복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바보같은 모습으로 광대처럼 재롱도 떨면서 난 어머니와 누나를 즐겁게 했다.

그들은 내가 그러면 처음엔 황당해 했지만 내 개그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고 나중에는 시작하는

특유의 몸짓만 해도 웃었다.

난 사실 좀 재밌는 놈인 지도 모른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TV를 끼고 살다보니 성대묘사 몇개를 연습해서 선보였더니 반응이 좋았다.

어머니는 특히 내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대묘사를 하면 좋아하셨다.(그때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로 "안녕하셰~요오? 호허허?"

라고 인사하면 아침의 시작이 즐거웠다.

난 놀지만 출근하는 가족들에게 기운을 주려고 우스꽝스러운짓을 더 했다.

가족이 보기에 나는 도박따위는 이제 잊고 그저 재 충전중인 사람을 보였을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로 조금 무게가 있는 편이라 재롱을 떠는 것이 익숙치 않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군대에서 후임병 시절에 난 개그맨 이었던것 같다.

고참들은 경계 근무간에 내가 개그를 치면 참 좋아했다. 그래서 나랑 근무 서려고 본부에

근무를 바꾸는 고참도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이 좋았다.

약간 조증 증세가 있던 김천에 살던 KSY 병장. 잘 지내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니까 더 이상 여유도 자신감도 없고

열등감이 커지니까 남에게 광대로 보이는것은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다시 내 속에 있던 그런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니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면 그 모습을 보면 난 정말 속이 시원하고 후련 했다.

어머니가 남은 시간을 그렇게 항상 웃고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다.

나는 떠돌 적에 사색을 너무나 많이 했다. 인간의 걸음.

두발로 걷는 것은 인간에게 깊은 성찰을 준다.

나는 인간을 개조하는 방법 중에 최고는 걷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당신도 죽고 친구도 죽고 부모도 죽고

형제도 죽고 인간은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는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자주 또 깊이 생각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너무나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내가 반대로 행복을 줄 수 있는 시간이 그 중 누구가에게는

허락 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걸 알 수가 없었기에 나는 너무 초초했던 것이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답이 안 나와서 도서관에서

죽음에대하여 라은 책과 죽음 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몇권 빌려 읽었다.

책에도 역시 답은 없었다. 하지만 고대에서부터 지역을 막론하고 인간의 문화에서

죽음에 대한 관심과 풍습은 대체로 비슷했고 그 어떤 인간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죽음 이란것은 너무 심오 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가

발번역을 한것인지 왠만 하면 책을

피면 끝까지 읽는 나인데 문자들이 눈 앞에서 자꾸 날아 다니고

머리속으로 들어 오지 못해서 끝까지 읽지 못 했다.

확실한건 가족보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 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요리를 해서 음식을 장만해 먹는것도 하나의 즐거움 이었다.

그렇게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갔다. 나는 지난 날들을 회상하면서

나는 점차 도박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이전과 같이 돈만 생기면 도박에 이기겠다고 기를 쓰고 덤벼들지 않게 되었다.

너무 고생을 했는지 야망도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별다른 의욕도 없다.

나는 그냥 이렇게 잔잔바리 하빠리 인생이 내 현실이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글펐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할 열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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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팅 꾹 누르구 가용~^^

가즈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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