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의 결혼식에 다녀오다 (내가 꿈꾸는 결혼식에 대하여...)

in #kr7 years ago (edited)



어제는 3년 전부터 알게 된 선생님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 친구들 중 결혼한 친구는 단 한 명이다. 나에게 결혼은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 같다.
3년 전 어학원에서 잠시 일을 했을 때, 나보다 8살이 많은 동료 선생님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가끔 만나며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일을 하지 않아 말을 놓을 법도 한데, 나에게 말 한 번 놓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신다. 그리고 연애나 인생 상담도 종종 해 주시고, 언제나 만나면 즐거운 그런 언니다.


그런 선생님이 저번 달에 만났을 때 갑자기 청첩장을 주셨다.
청첩장의 표지에는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이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결혼식에서 실제로 신랑 분을 뵈니 정말 나무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고 했던가.
8년 전 단 한번 스쳐간 인연이 연인이 되고,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이른 봄날에 결혼까지 하게 되다니..
진짜 인연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늦은 오후, 5시 40분의 결혼식



성인이 되고나서 이제껏 사촌 언니들, 친구, 지인을 포함해 6번 정도 결혼식에 갔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껏 봐온 예식 중에서 가장 특별하게 느껴졌다.
보통 주말 점심에 예식을 하기 마련인데, 이번 결혼식은 늦은 오후인 5시 40분에 식이 시작되었다. 식을 보고 저녁을 먹는 것도 좋았다. 예식을 준비하려면 신부는 이른 아침부터 화장하랴, 드레스 피팅하랴 정말 바삐 움직여야 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평소 오후에 출근하셔서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나는 패턴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을 배려해 신랑 분과 늦은 오후에 식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주례는 신랑 집안에서 존경하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관례였고,
신랑의 은사나 신랑 아버지의 친구 중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혼 당사자와의 친소 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부모가 사회 저명인사와의 친분을 하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허례허식을 줄여 요즘에는 주례사가 짧아지거나 아예 없어지고, 신랑 신부의 혼인서약서 및 부모님의 덕담 정도로 끝난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은 이번에 처음 보았던 터라 많이 신선하기도 했고, 혼인서약서를 낭독할 때 서로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인상깊었던 축가



오프닝으로 선생님의 친구 분께서 냇 킹 콜의 L.O.V.E를 R&B 버전으로 불러주셨다. 굉장히 세련되면서도 외국과 인연이 깊은 선생님과 잘 어울리는 그런 축가였다.
그런데 두 번째 축가로 국악단에 속해 있는 신랑 친구 분께서 자신의 국악 단원들을 데려와 연주를 해 주시고,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불러 주셨는데, 정말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역시 우리 음악의 곡조와 선율은 심금을 울리는 그런 멋이 있다.
동서양의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축가를 감상하며, 나도 나중에 결혼할 때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넓은 웨딩홀이 꽉차 보이는 그런 풍성한 결혼식이었다.

내가 꿈꾸는 결혼식에 대하여..



요즘 스몰 웨딩을 하는 커플도 많이 생기고 있다지만, 기획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니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그런 소박한 결혼식을 꿈꾼다.
나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평소 의문을 많이 품고 있는데, 첫 번째로 축의금 문화다.
내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에게 축의금을 받고 싶지 않다. 비싼 드레스도, 웨딩홀도 필요 없다.
외국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결혼할 사람과 준비해 온 불편하지 않은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과 식을 진행해 주는 사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주는 사람, 그리고 나의 결혼식을 보러 와 준 지인들이 있고, 바닷가 근처를 지나가다 처음 보게 된 그 사람들이 하객이 되는 그런 결혼식 말이다..

스몰웨딩.PNG
이런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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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행복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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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코사무이 섬 같아♥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 두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나는 신랑과 신부가 오로지 주인공인 그런 결혼을 하고 싶다. 물론 결혼 후에 남편의 가족들에게 잘 해 드리며 잘 지낼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제껏 이것이 가능할만 한 사람과 연애를 해 왔다.
나에게 결혼은 반드시 이래야한다는 틀이 없다. 그리고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결혼을 하기 위해 집을 사는 것이다. 월세든 전세든 상관 없다.
20대 초반에나 꿈꾸는 그런 결혼같은가? 결혼은 현실이고, 사랑만으로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모두 마음먹기 달렸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가까운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세상엔 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
결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돈이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나만 괜찮다면 난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다면 그것이 내일이든 아니면 10년 후가 되었든 그 때가 바로 결혼적령기가 아닐까..

축의금과 선물



우스갯소리로 보통 축의금을 내기 전에 이 사람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고민해 본다고 한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친하면 10만원(5만원), 아니면 5만원(3만원). 우리나라는 이것이 상식처럼 정해져 있다.
외국에서는 친한 사이에 돈을 선물하면 그 사람이 삐진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없다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접 만든 초콜릿 몇 개와 엽서를 보내는 것처럼 정성어린 선물이 어딨는가? 하지만 한국인들은 7만원짜리 홍삼 한 박스는 보내야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얼마나 그 사람을 생각하기 귀찮았으면 돈으로 해결하려고 할까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에 고민을 했다. 축의금만 내기보다는 선물을 꼭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소정의 축의금과 함께 두 분이 함께 쓸 만한 의미가 있는 선물을 포장하고, 편지를 한 통 써서 따로 드렸다. 결혼식 날에 선물을 따로 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결혼은 일생일대의 참 중요한 사건이고,
결혼식은 인생에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몇 달 전부터 결혼 준비를 한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그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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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대기실에서 함께..!


결혼식8.jpg


쌤이 진심으로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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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감사합니다!! :)

청첩장의 글귀가 가장 마음에 드네요. 꽃같은 그대, 나무같은 나... 저는 결혼을 너무 대충한 것 같아요. 워낙 연예를 오래해서 결혼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뭐 프로포즈도ㅜ 아무것도 없이ㅜ 부모님들이 하시는대로 후다닥 ㅜ 그래서 지금 가장 후회가 돼요. 좀 알아보고 좀 기획하고 해서 할걸... 그분의 결혼식은 정말 감동적이었겠다 싶어요. 주례없이 음악으로 식이 진행되고... 신부님은 정말 ‘꽃’같으시네요~^^

bookkeeper님 기혼자셨군요..! 리마인드 웨딩이란 것도 있잖아요~ :) 직접 기획해서 작게 추억을 남길 겸 해도 좋은 것 같아요 ㅎㅎ 근데 스몰웨딩이란게.. 원래는 소규모 초호화 웨딩인데..ㅋㅋㅋ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성비웨딩이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셔요 :)

결혼식은 부모님 사업, 장례식은 자식의 사업이라고들 하죠..
명망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네요 ㅠ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해당 선생님처럼 가볍고 의미있는 결혼식이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야외결혼식...(ㅋㅋㅋ)저도 한 때 꿈 꿨으나 미세먼지랑 혹시 모를 비소식 때문에 맘 접었습니다. 뭐 결혼까지 한창 남았기도 하지만요.ㅋㅋㅋ

맞아요.. 부모님들이 회수를 하시는 타이밍이죠ㅋㅋ야외결혼식은 그게 걸리긴하지만.. 혹시 생길지 모르는 해프닝도 모두 추억이 될 거 같네요ㅋㅋㅋ

바야흐로 날도 풀리고 결혼의 계절이 다가오네요. 얼른 잠수타야지 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대지의 양기가 올라오고 있씁니다

청첩장의 글귀는 이수동님의 "동행"이라는 글에 나오는 시 입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글귀라 반가운 마음에 리플답니다. 참고로 해당 글귀가 나온 책은 토닥토닥 그림편지-1 라는 책입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187306

전문은 아래와 같아요.

동행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열 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오오 감사합니다 :) 네, 결혼식장에서는 <동행> 전문을 읊어주셨어요..
참 멋진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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