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번필승 시대를 초월한 고수 혼인보 슈사쿠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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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원장입니다.
오랜만에 바둑이야기로 찾아왔네요 일이 워낙많다보니..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 다시한번 죄송한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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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바둑왕에 주인공중 하나인 ‘사이’를 아시나요?
사이는 주인공에게 빙의되기 전에 빙의되었던 인물이 혼인보 슈사쿠였습니다.
일본의 바둑역사상 기성의 칭호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총 세명이 있는데
첫 번째는 포석 창시자 혼인보 도사쿠
두 번째가 바로 혼인보 슈사쿠입니다. (세 번째는 오청원)
일본의 바둑팬들에게 시대를 구별하지 않고 최강의 기사를 꼽으라고 말하면 관철동 시대에 기사들을 대부분 꼽으나(조치훈 등..) 항상 들어가는 기사가 슈사쿠와 도사쿠입니다.
(도사쿠 포스팅 - https://steemit.com/kr/@mooyeobpark/5y7pwx)

바둑의 수나 기법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때문에 옛 바둑을 아무리 잘 둔다고 해도 현대의 고수보다는 약할 거라는 게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실력으로도 그 오래된 두 기성을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슈사쿠는 명인도 아니고 혼인보에도 오르지 못하였으며 단또한 고작 7단의 수준이었음에도 왜 이렇게 인정을 받고 있을까요?

당시 일본 바둑 부흥에 가장 일조했던 어전 시합(왕앞에서 두는 시합)에서 19전 전승의 기록을 남겼고, 특히 흑을 잡고 둘 때에는 무조건 이긴다고 하여 흑번필승이라고 불렸습니다.
어전 시합을 두고 나온 슈사쿠에게 결과를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흑으로 두었습니다.’라고 하였을 정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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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슈사쿠에 일생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슈사쿠가 혼인보가에 입문한 이후 당시 혼인보가의 가주였던 조와는 그의 바둑을 보고
‘이것이야 말로 150년 만에 나타난 천재이다. 우리 가문은 슈사쿠로 인해 다시 한번 발전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50년 전에는 혼인보 도사쿠 전성기입니다.)
슈사쿠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함에 있어서 주변에 도움도 컸습니다.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마을에 상인 기치 베에가 미하 라성의 성주에게 이야기하였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성주는 고작 6세 아기인 슈사쿠에게 봉록을 주며 호센지의 호신 스님에게 아이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습니다.
당시에 호신 스님은 3단의 실력으로 당시 일본 전역에 유단자는 200명 중반 수준이기에 3단이면 상당히 강한 기력으로 추측됩니다.

기초가 가장 중요한 바둑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기연을 얻게 된 것이지요.
바둑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한학(윤리도덕적 학문으로 오경을 중심으로 한 중국학), 정신적 지도를 통한 멘탈 관리 등 지금으로 따지면 작은 지역에서 슈사쿠에게 전문적인 영재교육을 시켜준 셈입니다.

그의 실력이 알려지며 고향을 떠나 에도에 혼인보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슈사쿠는 혼인보가로 들어간 후에도 자신의 고향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1837년 만 8세에 혼인보가로 가서 2년 뒤 초단을 받았고 혼인보가의 당주인 조 사쿠의 권유로 그의 이름 한글자를 얻어 슈사쿠로 개명 후 2단으로 승단, 42년 3단, 43년 4단으로 초고속 승단을 합니다. 나이 14세에 이룬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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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단부터는 바둑 두는 사람들은 들어봤다는 슈사쿠 류 포석을 사용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기보에서 보이는9번 흑수는 당시에는 잘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행마가 너무 느리고 실속이 없다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슈사쿠는 흑백덤이 없다는것을 이용하여 느리지만 튼튼한 행마를 통해 바둑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자신만의 입구자 행마를 사용한것이지요

당시에는 교통이나 통신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사수행처럼 바둑기사들도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슈사쿠 또한 에도에서 고향을 자주 왕래하며 목적지를 가는 도중 각 지역에 바둑고수들을 찾아서 대국하면서 실력을 연마하게 되지요.
(옛날 만화들 중 각지를 여행하면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그런 만화가 생각나지 않나요? ^^;)

이때 유명한 바둑이야기 중 하나인 이적의 수(이적 지수)가 나옵니다.
이적의수는 - 상대의 귀가 붉어질 정도로 충격을 주는 날카로운 수를 일컫는 말로 슈사쿠에 바둑에 그 기원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18세에 어린 나이에 바둑 4 대가 문중 이노우에가의 최고 실력자인 겐낭인세키와 바둑을 두게 되었습니다.

젊은 기사인 슈사쿠와 최고 실력자인 겐낭인세키와의 대국은 두 점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100수를 조금 넘었을 무렵 인세키가 웃으며 슈사쿠의 실력을 인정하고는 다음날 선 바둑으로 치수를 고쳐 두기로 하게 됩니다.

당시 8단이었던 인세키와 4단의 슈사쿠의 대국에서 치수를 물리면서 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당시에는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 다시 대국이 진행되고 첫날 89수까지 진행이 되었고 인세키가 연구해두었던 비장의 수들로 슈사쿠가 크게 고전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봉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인세 키의 주도하에 계속 바둑이 진행되었고 그 바둑을 검토하던
이노 우에가의 제자들 또한 스승님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역사적인 대국에 혹시나 있을 의료사고를 대비하여 ‘소안’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계속 관전을 하자 인세키의 제자들이 ‘선생님이 이긴 것 같지요?’
라고 묻자 대답합니다.

저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인세키님이 유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둑을 모르는데 어떻게 아시지요?’
실은 방금 전에 슈사쿠가 -천 원- 근처를 두었는데 그 기세가 좋고 힘차게 두었습니다.
인세 키 님은 그수를 당하고 자세를 고치셨는데 한참 후에 양쪽 귀가 빨개졌습니다.
의학적으로 뜻밖의 일에 부딪쳐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자기도 모르게 귀가 붉어지기에 슈사쿠의 한 수에 인세 키님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진행된 이 대국에서 슈사쿠는 승리를 거두고 이 대국은 귀가 붉어졌다는 ‘이적 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적의 수를 고스트 바둑왕에서 ‘신의 한 수’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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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에서 보이는 127번수는 상변집을 지키면서 좌변백을 억제하고 하변흑4점을 돕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이적의수입니다.
추후에 인세 키는 슈사쿠에 대해서 ‘당시 슈사쿠는 이미 7단의 역량이 있었고 어디까지 강해질지는 짐작도 할 수 없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적의 수로 인세키를 이긴 슈사쿠는 에도에 도착하여 5단으로 승단하게 됩니다.
그 후 혼인보 가문을 이어받을 아토메로 책봉하고 만 19세에 6단, 이듬해에 오타 유조를 이기고 7단으로 승단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미 일본 바둑의 최고기 전인 ‘어전 시합’에서는 연전연승을 거두어 최강자 자리에 군림하게 됩니다.

일본 최고의 기전에서 13년간 19 전연승을 하는 대 기록을 세우고, 자신의 바둑길을 열어준 고향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으며, 노고수와 대국할 때는 일부러 져주기도 하며 기를 살려주는 등 실력과 인성을 갖춘 그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 슈사쿠는 젊은 나이에 콜레라에 걸리고 맙니다.
천재는 명이 짧다고 했던가요? 34살에 젊은 나이에 병으로 로 단명하게 됩니다.
혼인보 슈사쿠는 실제로 혼인보가를 계승하지는 못하였지만 워낙 출중한 실력과 망자를 기리는 뜻으로 혼인보 슈사쿠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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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바둑역사 포스팅! 한국 바둑이야기도 해주세요 ㅎㅎ

한국바둑이야기는 ....다음차례가 황제..전신이신 그분이셔서 함부러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ㅋㅋ

WAO Japanese culture I really only know the anime and the sleeves of that culture. Thank you for sharing.

Thank you for your interesting reading. ^^

슈사쿠가 혼인보는 아니었네요... 콜레라로 요절했다니 안타깝습니다.
예전 저 이적의 수가 왜 좋은 수인지 풀이해 논 책을 봤는데요,,, 범인은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엇죠...ㅋㅋ 하지만 입구자 행마는 천재적 발견같아요..ㅎ

슈사쿠가 만약 일찍 죽지 않았다면.. 일본바둑사도 꽤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입구자행마는 지금도 사용하고 교육하는 행마인데 당시에는 패러다임자체를 바꿨을지도 모르겠어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바둑을 잘 모르지만 굉장히 몰입이 되는 글이네요ㅎ

바둑을 모르는분들도 읽을수 있도록 나름 신경써서 적어보았는데, 몰입하셔서 봐주셨다니 감사드려요! ^^

Awesome post!! Keep it up and check out THIS POST as well as I have something similar.

혼인보에 얽힌 이야기는 언제봐도 흥미진진하네요
저 시절의 기보가 있을정도이니 일본이 현대바둑의 초창기 성지였던 것도 당연한 거겠죠
슈사쿠도 실리적 이득을 택할 정도였는데 왜 일본기사들이 오랫동안 모양에 집착한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ㅎ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초반에 4선에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기성인 오청원이 나타나기 전까지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빠르게 시대를 앞서나간수를 두었는지.. 참 대단한 기사입니다 ^^

오랜만에 글을 쓰고 놀러와서 글을 보는거 같네요.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환영합니다 ㅎㅎ

이적의 수라니...정말 멋진 이야기네요.
마치 활극의 한판승부 같아요.
좋은 스승을 만나 시대를 풍미한 슈사쿠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주 올리고 싶은데 시간이..ㅠㅜ
다른이야기들로 열심히 작업해서 올려보도록 할게요!

참 바둑도 얽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네요 ㅎㅎ 저는 오목밖에 두지 못해요.... 지난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바둑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 졌지요 ? 학원 경영에 도움이 좀 되셨나 모르겠습니다 : ) 재밌는 글 잘읽고 갑니다 ~

경기가 안좋아서 학원운영에는 크게....ㅠㅠ
오목에 대한 내용은 https://steemit.com/kr/@mooyeobpark/4xppgn 여기 포스팅에 있습니다.
심심하시면 한번 읽어보셔요 ^^

요즘 경기가 참 좋지는 않아요 ㅎㅎ 그래도 코인시장은 활기를 띄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합니다. 그런데 참.. 오목의 세계도 보통이 아니네요... ㄷㄷ;; 세상엔 정말로 다양한 분야의 고수가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요? 오목프로랑 오목을 둬봤는데 4수만에 끝...ㅠㅠ

헐 처참하게 당했네용 ㅜㅜ

와. 바둑도 한 역사가 있군요. 부럽기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배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요.

이전에 연재하다가 중단했지만 나중에다시 바둑배우는 포스팅을 올릴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소통하면서 지내요~! ^^

바둑 배우는 포스팅 올리시면 하나하나 따라하며 배워보겠습니다. 초보자를 위해 완전 쉽게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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