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바둑을 태동시킨 위대한 스승 세고에 겐사쿠
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즐거운 주말들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이것저것 바뻐서 포스팅이 조금 늦었네요 ^^;
오늘은 일본편의 번외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오늘 소개할 인물은 조훈현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세고에겐사쿠 입니다.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1889~1972))
1889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나 5살부터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여 뛰어난 실력 향상으로 천재라고 불리웁니다.
그의 할아버지 또한 16대 혼인보 슈겐으로부터 정식 초단을 인허받은 강자였는데 이미 중학교 무렵부터 할아버지를 능가하여 홀로 독학을 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대학을 진학시켜 학자로 키우고싶어으나 사업에 실패해서 여력이 안되었고 이때 지방에 대의원인 보게쯔가 나서서 겐사쿠를 프로기사로 시키자고 설득하고 1908년 겐사쿠는 현역 기사 3단과 대국에서 불계승을 거두어 명성을 알리고 호엔샤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에는 혼인보 슈사이가 이끄는 혼인보가와 호엔샤2개의 세력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보게쯔 의원이 타도 혼인보를 위해 호엔샤로 가는 걸 제안하게 되어 겐사쿠는 호엔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후 승승장구를 하여 8단까지 인허받게 되고 제1인자 혼인보 슈사이에게 명인에 도전하여 11연승이라는 기록을 쌓는 등 월등한 기력을 자랑하며 1인자로 우뚝서게 됩니다.
그가 들어갔던 호엔샤는 이전에 포스팅했던 혼인보 슈호 (https://steemit.com/kr/@mooyeobpark/47hiec)
주도하에 생겨났던 일본기원의 전신이 되는 단체입니다.
마지막 혼인보 슈사이는 혼인보를 일본기원에 내놓게 되고 그 이후 실질적인 최고의 실력자는 세고에가 되지요
1924년 일본기원이 창립될 때 동참하여 1946년 일본기원이 법인을 발전하면서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이후에 후진을 양성하고 세계바둑보급에 힘쓰게 됩니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일본에 정상급 기사로 군림하였으며 세계에 일본에 바둑을 보급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55년 은퇴하면서 그의 실력과 업적을 기리게 되어 명예 9단을 받게 됩니다.
세고에의 바둑은 모양을 중요시하는 바둑으로써 다른 기풍류와 다르게 평화롭게 바둑을 두었습니다. 높은 승률을 자랑했지만 크게 이기지 않고 덤 5집 안에서 승패를 가리곤 했습니다.
(마치 이창호를 보는듯한..)
자신 스스로를 조절하는, 스스로를 다잡는 힘이 있었고 바둑을 예술로써 즐기는 아름다운 바둑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그 사람의 그릇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항상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인격, 성품, 인성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조훈현의 자서전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바둑을 가르치는적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의 업적 중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숙한 부분은 그 생애 단 3명의 제자를 받았는데 그 제자들은 세계바둑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첫 번째 제자는 하시모토 우타로입니다.
하시모토 9단은 일본기원 독주에 관서기원을 설립하고 오랫동안 총수로 있으며 일본 바둑의 한축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또한 원폭 대국으로도 유명합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당시 본인방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하시모토 우타로와 도전자 이와모토 6단의 본인방 전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혼인보보다는 본인방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혼인보전을 주관하던 세고에 겐사쿠는 이날 세고에의 아들과 조카도 사망하고 많은 관계자들 또한 사망합니다.
세고에 겐사쿠 본인 또한 실명위기에 처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됩니다.
두 번째는 오청원입니다.
새로운 바둑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일본에 내로라하는 고수들과의 10번기에서 치수를 다 바꾸어서 수많은 노기사들을 은퇴하게 만든 최고의 실력자입니다.
포스팅에서도 자세한 내용이 있지요.
(https://steemit.com/kr/@mooyeobpark/76uxhh)
세 번째는 조훈현입니다.
가장 아끼던 제자인 조훈현은 성장 후 조훈현의 병역 연기를 위해 병무청에 탄원편지를 쓰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72년 병역문제로 조훈현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친한벗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명인이라는 소설을쓴 노벨상 수상작가)가 죽고 4달 후 자살하게 됩니다.
친한벗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아끼는 제자 조훈현의 부재는 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준 모양입니다.
(조훈현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으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흠흠)
세명의 제자는 일본, 중국, 한국에 최고의 기재를 가진 인물들로 맹활약했고 이는 곧 세계바둑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을 통해 현대바둑을 태동시킨 위대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지요.
세고에 선생님은 왜 3명의 제자만 받았을까요? 그가 말한 내용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바둑에 이류는 너무 서럽기에 이길로 가기에는 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 불쌍한다.
불쌍한 인생을 만들기 싫어 오직 일류가 될 사람만 뽑아 받았다.
위대한 업적으로 현재 일본기원 명예에 전당에 등록되었고 그를 통해 바둑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simtole 님께서 일본 바둑이야기를 요청하셔서 적기 시작한 게 꽤 오래되었군요.
세고에 선생님을 제일 처음으로 적으려고 하였는데 쓰다 보니 제일 마지막이 되었네요
앞으로 바둑이야기는 일본 편을 벗어나 조금 더 다채로운 내용으로 적어보도록 해야겠어요
항상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나니 다시 바둑이 두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자주 놀러와주세요~
바둑을 태동시킨 위대한 스승이 어떤분인지 잘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닷 ^^
그리고 조훈현 국수는 이창호 국수를 키웠지요^^ 이창호 기사님 전성기에 알파고와 대국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고는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팔로하고 미미한 풀봇과 리스팀합니다.^^
저도 그 생각은 해보았어요 ㅎㅎ 이창호전성기때와 알파고의 대국은 또 다른 결과를 주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이렇게 뛰어난 분에게 배웠으니 제자 분들도 뛰어난 인물이 되었던거네요.
제자들은 다들 정점을 찍었고 제자들의 제자들또한 정점을 찍었지요 ^^
조훈현님이 잠시 언급 되었군요 ㅎㅎ
기대합니다~
아..조훈현...아...ㅋㅋ
원폭에, 야스나리의 절친에, 자살이라니..정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거 같네요.
일류가 될 사람만 뽑아서 3명만 가르쳤다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구요.
예술적인 바둑을 추구할 만큼 뭔가 예술적인 감성이 있으니 야스나리와 친하게 지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도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바둑삼국지라는 만화에 세고에선생님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말씀하신대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가신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살은 좀 안타깝네요 ㅠㅠ
조훈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세고에 9단 이야기군요.
한중일 3국의 천재들을 모두 가르치겠다며 조훈현 9단을 맡았던 일화는 워낙 유명하죠.
잘봤습니다.
조훈현덕분에 많은분들이 알고 계신거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
조훈현기사의 스승이라, 아시아권 바둑계의 최고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바둑에서
최고의기사를 꼽는건 쉽지 않지만 최고의스승이라면 세고에선생님이 많이 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고애 센세! 정말 다이아몬드를 세분 키워내셨죠. 기다니센세처럼 수많은 고수를 키워내는 도장도 잇지만 전 세고에구단이 더 위대하게 느껴진적도 많답니다. 좋은 포스팅에 감회가 새로워 지네요.
감사드립니다. 기타니도장도 알고 계시다니 ㅎㅎ
기타니 도장에서는 조남철, 김인등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사들을 키워냈지요
오랜만에 들러주셔서 영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