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둑의 [영원한 기성] 오청원 이야기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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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둑의 [영원한 기성] 오청원 이야기

안녕하세요 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오늘은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아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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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식으로 제 머리에 지식수준을 향상하여주시는 @wherever 님의 요청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키보드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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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에 출생해서 2014년에 돌아가신 오청원 프로기사는
바둑역사의 첫 포스팅 바둑의 기원을 설명할 때도
오청원 선생님에 바둑 탄생설이 당당하게 탑 3안에 자리하고 있지요.

https://steemkr.com/kr/@mooyeobpark/3cpmun - 바둑의 기원

7살부터 바둑을 시작하여 14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해 세고에 겐사쿠의 제자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일본 유학 전 그의 스승 고수 여가 본래 이름이었던 오천(呉泉)에서 오청원(吳淸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됩니다.
그의 스승은 북경에 한 기원에서 오천의 바둑을 구경하게 되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스승은
오청원과 5점에 연습 바둑을 두고 그를 제자로 거두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으로 출퇴근을 시키며 바둑을 가르치게 되고 바둑을 배운 지 2~3년 만에 중국에 여러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 하여 바둑계를 휩쓸게 되고 중국 바둑에 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오청원이 12살에 일본 프로기사 이와모토와 코스기가 중국에 방문했는데 오청원과의
지도 기를 두게 되고 이와모토 8단과의 3점 치수로 두 판을 연달아 승리, 코스기 4단과 2점 치수로 연달아 이기는 등 이 대국의 결과로 그의 이름은 일본 전역에 까지 알려집니다.

그다음 해에는 이노우에 고헤이 5단과의 대국에서 정선으로 3판을 두어 1승 1 무 1패를 기록합니다.

당시 압도적인 세계 최강국인 일본 프로기사를 고작 13살 소년이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이긴 것은 일본 바둑계에서 놀랄만한 일이었지요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세고에 겐사쿠가 자신의 제자인 하시모토 우타로 4단을 중국에 보내 시험을 하게 하고 그와의 정선 대국에서 4집, 6집승을 거두는 대이변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그의 기재에 감탄한 세고에 겐사쿠는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때가 그의 나이 14살이었답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오천의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어 달라는 요청에

“샘물은 맑지(泉水是淸的)."라고 말한 그의 형에 말과 자신이 말한
“샘물은 아득한 곳에서 솟아 멀리까지 흐르지(泉水是源遠流長的).”

라고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오청원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우리가 아는 오청원으로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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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건너온 오청원은 정식 단위 인정시험을 보게 되고 일본 프로기사들에게 모두 승리하면서 정식 3단으로 인정됩니다.

1930년부터는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1930 ~1932년까지 승단대회에서만 44승 4패의 성적을 내면서 5단으로 승단하였고 1932년에 시사 신보에서 주최한 대회의 룰(이기면 계속 두는 연승 방식)에서 18연승을 기록 1928년부터 1932년까지 4년 동안 그가 대국하여 기록한 승률이 90% 가 나오면서 최강의 기사임을 입증합니다.
(우리의 국수 김인 사범님은 1년간 90이었는데.. 더 엄청나시군요)

그 후에 20대에 시작한 고수들과의 10번기를 두면서 모든 기사를 압도적으로 이기며
일본 바둑계에 일인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덤이 있는 현재의 대국 이전 일본에서는 10번 기 대국을 통해 여러 차례 이기게 되면 치수를 선상선, 정선으로 고치는데 정산선은 3국 중 1,3국을 흑으로 시작, 정선은 모두 흑을 쥐고 시작합니다.
덤이 아닌 치수 고치기 대국이라고 할 수 있지요.

즉 여기서 치수를 고치게 되면 본인의 가오..(자존심)이 무너지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떵떵거리는 절대고수가 새파랗게 어린 기사에게 정선을 깔고 두니..

그는 가리가네 준이치를 제외한 기타니미노루, 후지사와 쿠라노스케, 하시모토 우타로, 이와모토 카오루, 후지사와 쿠라노스케 등 당시 일본에서 정상급 기사들을 17년 동안 11번의 10번기에 전승으로 수많은 일본 기사들을 일본기원에서 탈퇴시키거나 휴직시키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가라가네 준이치 또한 그에게 이긴 게 아니라 일본기원에서 일본 바둑계의 원로인 그의 명예를 위해 대국을 중지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10번기중 기타니 미노루와의 대국 중 기타니 미노루가 우칭위안과 함께 포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고 1933년에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와 함께 신포석(新布石)을 만들어 현대 바둑의 창시자라고 불리게 됩니다.

신포석은 흉내 바둑, 3 · 3, 화점, 천원 착점 등 400여 년 동안 통용됐던 전통적 일본 실리 포석에서 과감하게 중앙으로의 진출을 꾀하면서 바둑판 전체의 조회를 이루어낸 그의 바둑은 그동안 낡은 사고의 틀에서 유지되어오던 바둑의 틀을 완전히 깨버립니다.

이때 쓴 책인 ‘신포석 법’은 연일 바둑인들 사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오고 모든 서점에 책이 동나는 연일 매진사태를 기록하게 되며 현대바둑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런 성적을 내는 외국 용병이 일본에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겠지요?
또한 신포석법인 새로운 스타일에 포석 또한 원로일본프로눈에는 예의없는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첫수를 천원에 두는 행동은 마치 상대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그의 스승 세고에도 일본기원과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에 타이틀기전에서 제외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현대의 프로기전인 타이틀전이 모습을 들어 났을 무렵 안타깝게도 1961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이후로 실력 또한 하향세로 접어들어 그 후 1984년에 은퇴하게 된 ‘무관의 제왕’으로도 불리웁니다.
(교통사고로 뇌손상이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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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싸움이나 승부가 아닌 조화입니다.

수를 계속 써서 이기기만 한다는 것보다 조화로움을 통해 진정으로 승리하고 멋지게 이기는 법을 알려주시고

묘수를 세 번 내면 진다.

라는 말을 통해 변칙보다는 원칙과 정석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답니다.

조치훈 린하이펑 다케미야 마사키, 가토 마사오 등 쟁쟁한 일류 프로기사들은
‘오청원은 바둑 역사상 최강자’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그의 사제인 조훈현 9단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바둑은 일단 천재가 나와야 한다. 그다음, 그 천재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 이세돌은 천재가 아니라 독특한 기풍을 가진 ‘천재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형 우칭위안(吳淸源·1914∼2014)은 천재이면서도 엄청난 노력가였다. 어린 시절 얼마나 바둑책을 한 손에 들고 많이 보았으면, 왼손 손가락이 기형으로 굽었겠는가. 한 번은 세고에 선생님이 우칭위안을 머리 좀 식히라며 야구장에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우칭위안은 야구장에서 야구는 보지 않고, 고개를 젖혀 하늘만 보더라고 했다. 하늘을 바둑판 삼아 바둑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분은 올해 우리 나이로 백한 살이지만, 지금도 검토실에서 ‘이렇게 둬야지’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고 한다. 바둑은 천재가 아니면 아무리 키워봤자 소용없다. 죽어라 공부해도 안 되는 게 바둑이다.”

입신의 경지를 이룩한 오청원 우리나라의 인물은 아니지만 충분히 멋지고 존경받아 마땅할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포스팅 거리를 주신 @wherever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steemkr.com/kr/@mooyeobpark/3jdtr9
영원한 나라의손 國手 김인
https://steemkr.com/kr/@mooyeobpark/3mmzff
바둑근현대사 이야기 조남철편
https://steemkr.com/kr/@mooyeobpark/5xep3k
차민수 프로에 이야기
https://steemkr.com/kr/@mooyeobpark/300
바둑역사 1~13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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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바둑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수많은 명인들이 수천년 걸쳐 개발하고 다듬어온 바둑이 알파고에게 패하다니,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많은 바둑인들이 놀랐지요;
시대를 바꾼 국수들인 오청원, 조훈현, 이창호등에 이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이는 사람이 아닌 '알파고'였네요;;

바둑은 싸움이나 승부가 아닌 조화입니다
그냥 그저 대결만을 위한 종목인줄 알았는데
새롭게 배워가네요.

바둑도 스타일이 있는데 공격형 실리형 등이있답니다.
통계적으로보면 조화롭게 공수를 잘 맞추는 바둑이 승률이 높아요 ㅎㅎ

이세돌이 그냥 천재가 아니고.. 천재형이라니...
이세돌도 바둑에선 진정한 천재가 아닌가요..?

이세돌도 제가 볼때는 대단한 천재인데 조훈현이 이렇게 말하니 할말이 없군요;
오청원, 조훈현 당시에 대가들은 바둑에 패러다임 조차 완전히 뒤바꿔버릴정도에 능력자들이였거든요ㅎㅎ;;

박원장님! :)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읽다보니 더 대단한 기사였네요. 한 시대를 휩쓴 조훈현 9단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면!! 이렇게 포스팅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저야말로 좋은 소재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이렇게 가끔 포스팅을 요청해주시면 오히려 주제거리가 생겨서 좋네요!!
앞으로도 궁금하신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해주세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역시 대단하신분들은 많네요. 박원장님 아니었으면 평생가도 몰랐을 인물인것 같습니다.
오늘도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ㅎㅎ
많은 분들이 바둑역사 시리즈나 바둑인물열전들을 좋아하시는것 같군요
앞으로도 자주 포스팅 해야겠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재가 아닌 천재형이라..

감사합니다 ㅎㅎ 오청원선생님에 비하면 그저 천재형으로 표현될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

바둑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천재는 이런 거겠거니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흥미로워요.

바둑계에서 소개가 되는 천재들은 정말 심한 천재일거에요 ㅎㅎ
프로기사가되지 못한 천재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ㅠㅠ

제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 오늘도 즐겁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겨울바다에 다녀오셨던데 저도 지난주에 다녀와서 그런지 묘한 동질감이..!! ㅎㅎ

크~~ 얼핏 듣기만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무림의 절대고수 일대기 같습니다... 조화와 정수.. 너무나 멋진 말씀입니다! ^^

생애는 중국인이 바둑을 배우기 위해 어쩔수없는 일본에 유학에 삶으로 인해 친일파 논란과 일본으로 국적변경등 복잡한 삶을 사셨지만;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위대하신 인물이지요 ㅎㅎ

어머 4년동안 90% 승률을 달성하셨다니.. 대단하신 분이네요.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하향세를 달리셨지만 바둑에서의 조화를 널리 알려주신 분 같아요.

교통사고로 실력이 하향세가 된걸 보면 뇌손상이 확실한것 같아요
성격또한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
그사고가 아니였으면 어땠을지..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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