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순례의 서막 #2

in kr •  7 months ago




순례의 서막 #2



원점인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까.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할까? 거듭나려고 말이야. 그냥 죽어도 되는데..

 
조금 넋이 나간 채로.. 며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안쓰러웠는지 읽어보라고 건네준 신문기사.. 그 개새끼와 소년에 관한 이야기 (“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라”_ 문화일보), 멀린은 깨닫습니다.

 


그래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겠구나. 한없이 방치해 둔 [멀린’s 100]의 글들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개새끼 소년>을 책으로 낼 때가 되었다. 그렇게 묵혀 놓았던 글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다듬기 시작했어.

 
멀린은 1차 동쪽 여행을 하며 100편의 글을 썼습니다. 그걸 묶어 책으로 만들겠다 하고는 여태껏 아무 작업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직관이 말한 제목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새끼 소년>.. 이런 제목을 쓴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미뤄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건네준 기사에서 ‘존 버거’를 만나고 게다가 ‘박열’이라는 혁명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쓴 적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도망갈 수 없게 된 겁니다. 작업을 다시 시작할 만큼의 에너지들을 그들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글 정리 작업을 시작한 멀린은 놀라운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1차로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시애틀-밴쿠버-토론토-뉴욕 이런 순으로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북미 대륙을 횡단하는 셈인데, 2차로 런던-암스테르담(스칸디나비아3국)-베를린-스페인-그리스-터키 정도까지 돌아볼 계획입니다. 내년 봄쯤 되겠네요.
 
마르코 폴로는 서양인의 입장에서 위의 나라들을 여행하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동방견문록>을 남겼다는데, 저는 동양인의 시각에서, 아니 한국인 미래학도의 시각에서 서양을, 아니 우리를 기준으로 ‘동방’을 디벼 볼 생각입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순차적으로 이어질 본 여행은 일종의 순례여행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절반쯤 산 청춘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남자사람이 이 별에서 더 살아 볼 가치가 있는지, 이 별은 내게 무엇을 전해주려는지, 이 별은 내게 무얼 원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 훌쩍, 이 별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 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남은 삶이 알아지리라 기대합니다. 어디서 무얼 하고, 무얼 남길지.. 그때에는 지난 40년의 삶처럼, 타의에 의한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더욱 당당하고 뚜렷하게 '나'를 살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나'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_ M.멀린 <개새끼 소년 Ridiculous boy> 中

 
멀린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내년 봄쯤 되겠네요..’ 그 내년 봄에, 멀린은 무슨 이유에서 였는지 여정을 멈춰버렸고, 괴생명체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요? 멀린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나의 선택과 타인의 선택이 운명의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삶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멀린의 선택은 그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누구의 선택이든, 그것은 온 인류와 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강력한 선택인 것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오른쪽을 향할 것인가, 왼쪽을 향할 것인가, 위로 치솟아 오를 것인가,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인가에 따라 우주의 역사가 매우 크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선택을 매번 무의식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깨어서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홍수에 떠밀려 가는 돼지들처럼 무력하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앗! 그랬구나. 2차 여행, 이걸 갔어야 했던 거구나. 잊고 있었어. 처음에는 지쳐서 개무시하다가 아예 망각의 늪 속에 처박아 둬버린 거야. 이걸 갔어야 했었어. 그랬더라면 지난 시간들, 지난 고생들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겪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혼이 났구나. 내가 제대로 혼이 났구나. 그리고 2017년, 2017년이 온 거야.. 100편의 글을 쓰며 그렇게 강조하던 2017년이 온 거야. 그럼 나는 어쩌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직관은 단호했지. 떠나라, 서쪽으로!

 
2017년. 멀린은 100편의 글을 쓰며 계속 2017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멀린 자신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멸망할지, 인류가 사라질지, 외계인이 침공할지, 전쟁이 일어날지, 아니면 복권에 당첨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개새끼 소년 Ridiculous boy>를 써 내려가던 3년 전 그때에, 직관은 멀린에게 2017년이라고, 2017년이라고.. 거듭 말했을 뿐입니다.

전쟁이 나려나.. 2017년의 봄, 한국은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벌어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까지.. 연일 역사적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고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과 중국의 사드보복까지..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멀린이 글을 써 내려가던 3년 전의 상황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2017년의 한반도에 마구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관이 말한 2017년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결론이 나고 마는 역사의 귀결歸結일 뿐입니다. 젊은 마법사가 어찌 할 수 없는.. 이미 벌어진.. 거대한 선택의 결론일 뿐입니다. 그리고 멀린은 2015년의 봄, 이 여정을 계속했어야 했습니다. 멈춰진 것은 2015년의 봄입니다. 그리고 기한은 2017년까지였습니다.

 


그때 불현듯, 떠올랐어. 2017년까지 열린다던 스타게이트 말이야.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순례의 서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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