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했어.

in #kr3 years ago

대학 후배가 있었다.

학교 임원 여행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장례식이라는 곳에 처음 가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후배들과 동기들, 선배들이 순간 반가웠다.

술잔을 기울였고 나는 오랜만에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듯한 느낌에 술잔을 부딪히려 했고 한 후배가 술잔은 부딪히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사실 많이 민망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자리가 비록 나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앞뒤자리에 자주 앉아 수업을 듣던 후배의 장례식이라는걸 잊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의 풋풋한 시절을 떠올렸고 그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나는 그의 죽음을 순간 잊었다.

그런데 이 자리가 후배의 장례식이 아니라,

내 엄마, 혹은 내 남편, 혹은 내 아이의 장례식이었다면,

나는 순간적으로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잔인했다.

후배가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 나보다 어렸던, 나보다 먼저 간,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너를 잊었어.

그래놓고 타인의 슬픔은 내 슬픔이다 운운하고 앉아있지.

그래도 부끄러움 털어놓고 너에게 좋은 곳에 가있길 바라는 마음.

나는 너보다 오래 살았으니 운 좋은 사람.

이왕 사는거 사랑하며 살고

앞으로 최소한 너의 장례식장에서 너를 잊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 잔인함이 고의는 아니었음을,

타인의 나를 향한 잔인함도 어쩌면 고의는 아닐 것임을,

기억한다면, 좀 덜 상처 받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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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먼저 가신분께 인사드린 후에는
아주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썩하게 보내드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입니다.

가시는 분도 그렇게 보내주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후배분도 무척 즐거워 하셨을 겁니다.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소천하시다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은 고의로 잔인함을 일삼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많은 이들로 인해서 고통받는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이 더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

진짜 남의 일이라고 순간적으로나마 정말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잊었어요....... 마음 속으로 참 부끄럽고 민망하더라구요... 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앞뒤로 앉던 사이였는데....

그 후배를 보고 운명이라는게 있나?! 싶은 생각도 했어요.. 왜 그 후배를 뽑아줬을까 내 한표가 없었어도 그는 임원이 됐었겠지..... 란 생각도 하고...

그 후배에 비해 전 참 오래 산거 같아요 그것만 생각해도 참 오늘에 감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벅찬 기쁨도 누려보고... 내 책도 내보고..(아직 안 나왔지만..) 사랑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고... 놀기도 놀아보고...

요호님 포스팅 보고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책을 읽고 있어요..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무심함....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내 삶이 평범치 않았다 생각했는데 난 참 지극히 평범했구나... 란 생각에 또 남의 불행을 보고 내 자신은 이만하면 괜찮아.. 하며 비겁한 안도를 하구요...

세월호 단식투쟁 하는 사람 옆에서 했다던 누군가의 피자 폭식투쟁.... 음...... 왜 사람은 사람에게 고의로 잔인하게 행동하고 싶어지는 걸까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인간들은 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잊고살지만
인간은 동물입니다.
원숭이나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육받고, 깨닫고, 성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동물로 되돌아갈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ㅠㅠ

건배를 한다고 그 마음이 퇴색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kmlee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뵈니 너무 반갑네요~~^^

에고.... 나의 무심함에 참 죄스럽더라구요.....

이래서 사람들이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 주는 건가 싶고.............

그 친구가 떠난 것에 대한 생각보단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즐거움이 컸으니........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아야 추모인 게 아니니까요. 정말 무심하셨다면 후에 뉘우침도 없었겠지요.

제 자신이 참 부끄럽더라구요... 후배에게 미안하고.........

그런 감정이 있으니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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