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거다

in #kr7 years ago (edited)

부러우면 지는거다.jpg

몇년 전 홍콩에서 에스티로더 화장품 유튜브 광고의 한국어 통역사로 알바 고용된 적이 있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던 홍콩 학생이 일본어 학원 원장인데
그녀가 그 광고의 일본어 통역사를 맡게 되면서 나를 한국어 통역사로 추천했던 것이다.

광고 내용인즉슨,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일반인(모두 전문모델) 여성이 자기네 화장품을 한달동안 테스트 해본 결과 며칠 후 이렇게 변하고 한달 후 결국 이렇게 피부가 좋아졌다 라는 컨셉이었는데
(모델들은 원래 피부가 좋았고 한국 모델은 나에게 이거 절대 쓰지 말라며 쓰고 나서 오히려 트러블이 생겼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열시간동안 그 광고 통역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광고 통역사로 참여하게 되다니.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들어간 촬영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고 사람은 참 북적거렸다. 긴장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쾌활한 사람인 척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들어갔는데 마침 그 한국 모델은 얼굴신을 촬영 중이었고 나는 그 사이 광고 기획자와 딱히 유용하게 들리지 않는 쓸데없는 대화를 나눴다.

한국 모델과 인사를 나눴는데 모델답게 키는 175는 넘어보였고 갸름한 얼굴형에 당연히 피부는 꿀피부인데다 몸매도 아주 마르지도 않은 우아한 스타일의 미인형이었다.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일본어 통역을 맡은 내 학생이 이 한국 모델이 굉장히 까다로우며 그래서 전에 다른 한국어 통역사하고도 싸워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있다며 미리 나에게 주의를 주었기에 나는 그 모델의 말을 곧이곧대로 홍콩 광고 기획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나름 아름답게 미화시켜 전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광고 들어가기 전 사전 인터뷰 중:

기획자 왈: 평소에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시나요?

한국모델 왈: 맨날 술 먹고 집에 가면 라면 먹고 그러는데 뭐라고 대답하죠?

통역: 촬영이 없을 때는 주로 요가와 명상을 하곤 합니다^^

사전 인터뷰가 끝나고 스태프들은 본격적으로 촬영 준비를 하고 모델들은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한껏 단장을 하고 있는데 까다로운 그녀답게 스타일리스트가 건네준 옷이 맘에 들지 않는다, 다른 모델에 비해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로 단정하게 묶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90년대 SES 바다 스타일로 하나로 묶은 후 어설프게 양 옆에 머리를 남겨두었다)

나는 다들 분주하게 촬영을 준비할 때 미리 오후 촬영을 마친 중국 모델과도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웨이브 진 긴머리의 그녀는 너무나 말라 내가 보기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으나 중국 나름 유명한 연극영화과 출신인지 자신의 동기 중에 누구 누구는 어떤 드라마에 나갔고 하지만 드라마의 촬영 여건이 열악하고 대우도 좋지 않아 자신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본인이 관심이 없는건지 그쪽에서 관심을 안 두는건지 모르겠다)

촬영 시작 전 모든 스태프와 모델과 나는 엄청나게 많이 배달된 초라한 면음식을 하나씩 꺼내 허기를 채웠는데 나는 좀 더 먹고 싶었으나 왠지 눈치가 보여 그저 하나로 만족한 채 주린 배를 채웠다. (모델은 좀 더 좋은 걸 먹여(?) 줄 줄 알았으나 모델도 같은 변변찮은 대접이었다)

한국 모델은 면음식을 먹고 나서 무언가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입에 털어넣었는데 그게 뭐냐고 물으니 다이어트 약이라고 했다.. (왜 그걸 너가 먹냐. 나를 주라..)

본격적으로 촬영 시작.

나는 작은 마이크 같은 것을 건네받고 그 모델과 소통하며 그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아름답게 미화된 거짓말(?)을 전하고 있는데 그때 든 생각이 '그들 서로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싶었다. 모델은 내가 홍콩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 하고 홍콩 사람들은 한국모델의 말을 알아듣지 못 한다. 그저 나는 그 상황에 맞게 그들의 말을 알아서 편집해서 내 멋대로 웃으며 전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역시 유명한 모델과 그냥 일반 모델은 차이가 있는 법인지 내가 광고 속에서 본 화장품 모델들은 다들 연기가 자연스럽던데 이 까다로운 모델은 예쁜 외모에 비해 연기는 왜 이리 오그라드는 건지.. (전에 있던 통역사는 직설적인 성격인지 왜 이리 연기를 어색하게 하냐고 대놓고 말해 니가 직접 연기해보라며 그 모델과 싸웠다고 한다.. 그 통역사 말 한번 참 잘 했다..)

암튼 연신 어색한 포즈와 어색한 얼굴 표정, 어색한 손동작
(예를 들면, “이렇게 탄력이 생겼어요!” 하며 두 손가락으로 얼굴을 튕겨대는 동작 등이다) 등등으로 나까지 어색해지려 하고 촬영 감독도 그녀의 어색한 연기에 좀처럼 맘에 드는 신을 찾지 못 했고 전 스태프들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예민해져만 갔다..

갑자기 잡지를 펼쳐 읽는 척 하라고 하질 않나 여유롭게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사실은 모델) 여성을 컨셉으로 잡은 모양인데 내겐 전혀 여유로워 보이질 않았다..

암튼 나는 평소 어떠한 유형의 사람들에게나 잘 맞추는 성격으로 그 까다로운 모델과 홍콩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미화된 거짓말을 하며 그런대로 통역을 순조롭게 마쳤다.

자신도 원치 않는 오그라드는 여유로운(?) 연기를 펼쳤던 그녀와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이 직업이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이겠지만 사람들한테 맞추려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고 생활도 불규칙해 자기는 그 스트레스를 푸느라 집에 가면 라면을 한냄비 가득 끓여 먹고 포만감을 느껴야 잠이 든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가던 지친 모습의 훤칠한 그녀.

나는 집으로 돌아가던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내 팔자가 상팔자구나…’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많은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나중에 내 일본어 통역사 학생으로부터 완성된 유튜브 광고 동영상을 보았는데 역시나 편집의 기술은 위대하다.
어색하고 어색한 그녀의 발연기도 몇초만 딱 떼어놓으니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2017년 내가 소중한 지인에게 들은 가장 심오한 말이 하나 있다.

“나 이외에 다른 것은 보여지는 것만을 보고 사는데
나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느끼고 사니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나 빼놓고 세상 모두가 행복해 보일 때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는 '괴리'가 있다고.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세상,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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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페이스북을 할 때,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사진을 올리면 부럽다, 팔자좋다, 니 마음대로 살아 좋겠다.. 등등의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기분이 하나 좋지 않더라고요. 외국에 있으니 사진이 이국적인 것 뿐이고.. 나에게도 힘들고 어두운 구석이 있는데. 그래서 홧김에(?) 제가 얼마나 초라하게(?) 살고 있는지를 페이스북에 낱낱이 적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을 올렸으니 그들은 더욱이 보여지는 것만 보았을 뿐인데..
세상 부러움 다 받고 사는 부잣집 친구 하나도 저에게는 매일 힘들고 괴로운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속모르는 다른 친구들은 그녀에게 돈많아서 좋겠다는 말만 하고..이런저런 일들로 언제부턴가 저는 누구도 함부로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누구에게나 각자가 짊어진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megaspore 님 글읽고 저를 돌아보네요. 감사해요 :-)

ㅎㅎㅎㅎㅎㅎㅎ

<홧김에> 내가 얼마나 초라하게 살고 있는지 적었다는게 너무 재밌어요 ㅎㅎㅎㅎ

각자가 짊어진 십자가가 있다...

너무나 공감되는 한마디입니다..

600팔로워를 달성한 기분좋은 아침입니다^^
맨날 술 먹고 집에 가면 라면 먹고 그러는데 뭐라고 대답하죠? 에서 빵터젔네요!
보여지는게 전부가 아니긴 하죠 정말....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그녀에게도 그런 고충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만족하고 작은것부터 성취하는 삶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행복전도사님의 600팔로워 달성을 축하합니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많은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저 또한 많은이들의 부러움과 시기, 질투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한 평생 "돈"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며
친구끼리 만나면 밥을 사라합니다.
그 밥이 얼마한다고, 제 주변엔 같이 나눠 낼 친구가 없습니다
돈 때문에 친구를 잃었고
돈 때문에 열정도 잃었지만
그들 눈에는 제가 부러운가 봅니다.
사람마다, 괴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제 꿈과 돈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steemit.com/kr/@touchtheheart/5
읽어만 주시고, 댓글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천(보팅)은 안해주셔도 됩니다 ^^;

안녕하세요 megaspore 님, 정말 보이는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은 늘 한번씩 드는 생각이네요. 보기에는 행복할 것 같고 남부럽지 않다 생각을 해도 이상하게 잘 못 되어 가는 것을 볼 때 마다 화려함뒤에 숨은 진실은 자신만이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런 부분은 있겠지요.. 공감가는 글 잘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성민님~^^

맞아요! 자신만이 안다는 말.. 정말 그러네요.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많은 오류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행복한 건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실은 괜찮은 사람인데 못났다고 생각하는 마음..

우리가 과연 우리 자신을 또 타인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번씩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좋을거같아요^^

네 ㅎㅎ 정말 사는게 복잡하고 당야한 것 같아요^^ 어떨때는 단순하게 사시는 분들이 참 부럽다
생각했는데요..그 또한 제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도 있는 것이겠지요.. 어렵습니다^^ 그래도 긍정긍정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겠어요~~ 웃는 하루 되세요 ^--------^

사람들이 저보고 단순하게 살아서 참 속편하게 산다 행복하게 산다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글을 오랫동안 보셨으니 아셨겠지만 단순하지만은 않은데....

우리는 겉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는 것 같습니다..

네 ㅎㅎ 맞습니다. 저도 그런 오류를 이제부터라도 범하지 않토록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사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항상 겉을 먼저 보는게 사실입니다.
그건 사람이 가장 처음 5감 중에서 느끼는게 시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같이 겪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까지 알게 되죠. 첫 인상과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상당히 있더라고요. 세상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다 이말 정말 공감되네요^^

jaytop님~

우리가 처음엔 타인의 속을 알 길이 없으니 겉만 보고 그사람의 속까지 평가하기 마련인데 지나고보면 타인을 내 선입견에 의해 잘못 평가한 경우도 많은거같아요~~~

우리에게는 '괴리'가 있다고.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참 와닿는 말이네요 ^^ 누구가는 우릴 부러워하겠죠 우리는 우리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하듯이 ....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늘 감동입니다 ^^

주사위의 눈 6뒤에는 반드시 1이있죠. 모든 것엔 양면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대게 보이는 면만 보며 자신과 비교하는 것 같아요. 그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걸 알면서도요. :)

팔로우하고 갈게요.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보러 오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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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살다보면 나 이외에 다른 것은 보고 살다보면 괴리감에 빠질때가
있는거 같아요..저도 결혼전에 방송국에서 일할때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을
볼때 저도 살짝 괴리감에 빠진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 일하다보니 알았죠 화려한 겉보습뒤에 알지못한
그들만의 힘겨움이있다는거 알고 평범함이 좋구나 느낀적이 있어요^^
메가님 말씀처럼 정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닌거 같아요..
혹시 그들도 평범한 제가 부러워 보이지 않았을까요~?^^
라는 저만에 생각을 해보네요 ~
오늘도 좋은 글 아~주 잘보고 갈께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카페모카님! 예전에 방송국에서 일하셨군요!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화려해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그렇게 화려하기에 그들이 더 쉽게 우울에 빠지고 그래서 가끔 들려오는 연예인 자살 공황장애 등 그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 언니도 아주 잠깐동안이지만 태사자(태사자 인 더 하우스~)라는 그룹의 코디네이터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너무나 빡센 생활에 혀를 내두르고 부러워하지 않더라구요..

살다보니 정말 소소한게 진정 행복이다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단면만 보고 부러워하는일은 참 많은거같아요.
결혼한 친구들끼리 만나면 누구네는 참 좋겠다~
뭐 이런거 있잖아요 ㅎㅎ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면 다 속사정들이 있더라구요
보여지는것만 다가 아닌다라는걸 나이가 한살한살 들어가면서
절실히 느껴지더라구요
megaspore님 오늘도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시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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