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in #kr5 years ago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면

내가 자주 느꼈던 감정은 ‘울컥’하는 감정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뭘 해도 울컥했던 것 같다.

나에게 작은 어떤 무심한 표정만 보여도 맘 속으로 울컥하고

어떤 나를 위한 건의나 충고라도 할라치면 나는 또 울컥했다.

역시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어.

내가 그렇지 뭐.

사람들이 그날 자기 기분이 나빠서 그랬었는지, 정말 나를 향한 공격이었는지

제대로 따져볼 여력이 나한테는 없었다. 어릴 때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내 마음의 화살이,

커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물론 가까스로 태어나고 (아빠는 나를 지우길 강요했고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면 첫째 딸을 안 줄 것 같아서 둘째인 나를 기어이 낳으셨다고 했다.) 내가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어릴 때 반 남자아이에게 연필로 손바닥을 찍혔던 적이 있고,

커서는 느끼한 사장님 친구(엄마친구아들도 아니고)한테 있지도 않은 가슴을 만져진 적이 있고 (여기까지 쓰고 나니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머지는 어쩌면 사소한 일들..)

지옥철에 타면 나의 엉덩이를 심하게 주물럭 대는 사람(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해본 적이 없으니 남자로 단언하진 않겠다)이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하기도 무서웠다.

물론 과거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 현재의 남편(예전의 남친)이 나에게 접근해올 때는 ‘저것이 나한테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러나, 날 어떻게 이용해먹으려고 그러나’ 란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경계를 놓치지 않았다.

자책하고 또 분노했었다. (분노면 분노지 왜 꼭 분노 끝에 자책이 오는건지 모르겠다. 성추행 당한 것도 결국 내 탓 같고 괴롭힘 당한 것도 내 탓 같고 욕 먹은 것도 내 탓 같다. 가끔은 남탓으로 돌릴 줄 아는 것도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커다란 지혜다)

난 나에게 어떤 일이 다가와도 울컥 했고 그것은 나의 습관적 반응이 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현실이 무고하고 힘없는 나에게 가한 폭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내가 그것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불행해 했던 것은 나의 책임이다.

문요한 정신과 의사의 ‘천 개의 문제 한 개의 해답’에서 보면 “치유란 상처를 재경험하고 공감받는 환경에서 핵심적인 감정이 수용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내가 계속 과거를 곱씹으며 오래도록 불행해 했던 것은 어쩌면 공감받는 환경을 만나지 못 해서, 상처 받았던 당시의 핵심적인 나의 감정이 수용된 적이 없어서 라고 스스로 변호해 볼 수도 있겠다.

상처를 털어놓으면 내가 더 약해보일까 무리에서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에 상처를 재경험하고 수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우리의 상처를 털어놓고 위로 받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모든 이가 내 맘 같은 것은 아니다.

공감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잘 선택하고 내가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환경에서 나의 묵은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고 소외되었던 나의 슬프고 분노했던 감정들을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털어내고 나아가야 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래, 나 그런 과거가 있었어. 그래서 뭐?”

당신과 같은 감춰져 있는 많은 이들이 일어서고자 하는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당신의 용기는 바로 우리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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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없는 삶이 있으랴만,
나... 그래서 뭐?

과거로부터 배우면 우리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메가스포님은 모든 능력을 가지게 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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