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2002년 어느 겨울밤
어디서부터 치열함이 무뎌져버린 걸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잊고 있던 2002년 겨울의 어떤 밤이 떠올랐다.
스물네 살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밤, 난 고향에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시의 한 만화방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대학교 정문 근처에서 겨우 찾아낸 장소였다. 다음 날은 교대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땐 이미 8시가 넘어가는 밤이었다. 눈이 내린 날이었다. 도로는 녹기 시작한 눈으로 번들거렸고, 어두운 거리의 가로등 빛은 번들거리는 도로에 오렌지 빛 무늬를 만들었다. 추운 날이어서 거리는 한산했으나, 지나는 사람들은 칼바람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결의를 내보이면서 옷깃을 여미며 지나갔다.
지난 날
IMF 경제 위기의 한파가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기 전인 1997년도 이전엔 특별한 사명이 없는 한, 남자는 대부분 공대 입학을 권유받았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남자 고등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이과생들이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전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능 성적에 맞추어, 학과나 대학교의 차이만 정해질 뿐이었다. 우리 학교 정문엔, 수능이 끝나면 자랑스러운 졸업생의 이름이 플랜카드에 걸렸는데, ‘○○대 ○○공대, 누구누구’ 이런 식이었다. 마치 공대는 변하지 않는 상수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교 1학년 말에 문과와 이과를 지망할 때, 부모님에게 문과를 희망한다는 의중을 내비치자, ‘잘못하면 굶어죽는다’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 그런 말이었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해 설에 친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나의 미래 전공을 좌우하게 될 문이과 선택이 화제로 떠올랐다. 거기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경제 위기가 오기 전인 1997년 이전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제조업의 산업 역군, 즉 공돌이가 되는 것이 가장 무난한 남자의 길이었다. 어떤 친척은 이런 말로 내 선택에 쐐기를 박았다. “집 생각도 해야지.”
문과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그 길로 가서 딱히 뭘 해야겠다는 로드맵이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생은 주변의 기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납득시킬 근거도 없었고, 열망도 충분하지 않았었다.
남들이 다 가는 그 길을 따라, 나도 공대에 입학했다. 꽤나 인기가 있었던 컴퓨터 공학과였다. 어떤 전공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즐기는 사람을 쫓아가지 못한다. 난 즐기지도 못했을 뿐더러,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매주 컴퓨터 언어를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짜 가야 하는 전공 강의를 펑크 내지 않기 위해, 과제물 제출일 전날에 누가 짜다 버린 소스 하나를 건지려고 컴퓨터실 앞을 기웃거렸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만한 뻔뻔함도 없어서, 그저 기웃거리고 있으면 친한 여사친이, 잠깐만 있어봐, 하고 컴퓨터 도사급 동급생에게 가서 짜다 실패한 소스를 구해주기도 했다. 스스로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재미도 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2학년 1학기 때까지 겉돌면서 대학 생활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서관에 틀어박혀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몇몇 친한 친구들과 공강 시간에 농구를 하고, 당구를 치면서 학교에 갈 최소한의 구실을 만드는 것 정도였다.
군복무를 하면서 내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즐겁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야 하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난 복무를 마치고 스물 세 살의 나이에 다시 수능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선 내게 우려와 격려를 동시에 보내주었다. 내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대단한’ 도전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들의 생각하는 대단함이란, 어느 정도 안정이 보장된 길을 뛰쳐나와서 새롭게 그 ‘골치 아픈’ 수능을 본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 그들의 격려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이대로 내가 즐겁지도 않은 일을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이, 내겐 더 큰 도전이야.”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이번엔 고1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이번엔 나름의 로드맵이 있었다. ‘그러다가 굶어 죽는다.’ 같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데 큰 설득력을 가진 그 명제에 버금가는 명제여야 했다. 나의 명제는 이것이었다.
“차라리 굶어 죽겠다.”
군 복무 후 수능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내 목적지는, 국어국문학과였다. 서울에 올라가서 배우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까지 글쓰기로 얻은 주변의 칭찬과 찬사에 도취된 탓일 수도 있고, 앞뒤 분간 못하는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어찌해서 대학에 합격한다고 해도, 우리 집은 내 서울 생활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난 서울에 작은 골방을 얻어서 죽을 때까지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난 내 계획을 떠올릴 때마다, 구한말 골방에서 폐병으로 각혈을 하던 작가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미래는 이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졌다.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안에는 이상한 확신이 자리했다. 그 길만이 내 유일한 선택지였다.
수능 공부를 하던 시립도서관에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다시 공부를 하던 고교 동창을 만났다. 그는 화학공학과를 다녔으나 음악을 하고 싶어서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리 교육대학에 가자. 거기서 넌 문학을, 난 음악을 할 수 있어. 여러 개의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 된다고 했던가. 그의 제안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한 두 개의 우연이 겹쳐서 교육대학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버지와 작은 식당에서 된장 뚝배기를 사이에 두고 ‘다시 수능을 보겠다.’고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진 내 의중을 되물으시곤, 이내 화를 내셨다. 아들은 일 년 반 동안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화는 아들의 훗날을 걱정하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그 반응에는, 어쩌면 아들의 내년을 책임져주지 못할 거라는 아버지로서의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감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맘대로 할 것 같으면, 네가 알아서 가라.”
나는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내게 힘이고, 용기였다. 그때는 익숙한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앞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난 수능을 몰래 치고, 새벽 인력시장에 다녔다. 공사장 잡부 노릇을 해서 번 돈으로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교대 면접을 갈 때에도 응당, 편하게 누워서 자는 숙소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지새우는 일은, 학교 근처의 PC방이나 만화방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난 면접 전날, 잠자기 위해 만화방에 있었다.
눈 내린 캠퍼스
만화방을 찾아 놓고는, 어둡고 눈 쌓인 학교로 들어가서 곳곳을 밟으며 걸었다. 가로등에 하얀 눈이 빛을 내고 있었다. 나의 소망과 바람이, 녹아버릴 눈이 아니라, 길에 무엇이 있든 매일 밤 그것을 비추는 가로등이 되길 바랐다. 내일 이 길에 눈은 사라지고 없을지 몰라도 가로등불은 계속 될 것이다. 내 길에 무엇이 있든, 선한 것을 비추자. 글을 통해 삶을, 세상을, 어두운 것을, 밝은 것을, 광장을, 골목길을 비추자.
난 소복이 쌓인 눈밭을 걸어 만화방으로 되돌아왔고, 죽음을 앞둔 어떤 이의 일기를 읽다가 긴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치열하고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절망하진 않았다. 난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보장된 것 없었지만 기묘한 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면, 기약 없이 또 다른 것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무엇이라도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빈손이었지만, 모든 것이 충만하던 시절이었다. 기묘한 확신은 현실이 되었고, 내 삶은 새로운 길을 찾았다. 교대에서 아름답고 정다운 사람들을 만났고, 가슴 설레는 시간들을 보냈다. 가르치는 기쁨도 알았다. 모든 것이 감사했고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에 수시로 놀랐다.
십수 년이 지나고, 내 손은 많은 것들로 채워지는 대신 내 마음은 점점 비어가는 상황을 반추하다가 문득 그 겨울밤이 생각났다. 페이스북에서 한 달에 두 세 개의 글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에 만족하며, ‘죽어도 좋다.’ 고 비장하게 각오하던 치열함을 잃어가던 중에 스티밋을 만났다. 이곳은 내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를 다시금 알게 해주었다.
내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단지 그 겨울밤을 말하고 싶었다. 차갑고, 쓸쓸한 거리와 눈 내린 캠퍼스를. 그 날 그 가로등이 무엇을 비추고 있었고, 봄이 온 후엔 또 무엇을 비추었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뜻은 없다.
우선 확고한 결의로 원하시던 길을 선택하신 용기가 감동적이었어요. 그 겨울밤 어두운 한켠에 비치는 가로등을 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맞이할지 생각하니 제가 더 떨리고 여운이 남네요.
네 그때는 뭔가에 홀린 듯이 확신에 가득찬 결정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선택하지 않으면 더 힘들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좋은 거 비추면서 살아요^^
그 겨울 눈 내린 겨울 캠퍼스가 연상이 되네요.
긴 글이었지만 잔잔하게 느껴졌습니다.
네 겨울 눈 내린 캠퍼스가 연상되었다면 나쁘지 않은 글이네요.ㅎ 감사합니다!
역시 문학가적인 글귀입니다~~
그 겨울밤이 저까지도 그리워지네요~~~
누구나 그리운 어느 겨울밤이 있지요.^^
이웃의 글에서 솔메이트님을 추천하시는 내용을 보고 팔로잉을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일들에 치어 바로 들어와보지 못하고 있다가, 스팀잇에도 조금 전에야 들어와 보았습니다. 피드에 뜬 글을 보고 반가와서 클릭을 했는데 물론 제가 처음 온것 같지는 않지만 그리고 제가 댓글 다는 사이에 또 여러분들이 다녀가실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없고 발자욱도 하나 없는 눈내린, 솔메이트님이 걸으셨을 겨울의 그 캠퍼스를 걷는듣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부친의 권유(?)로 제가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 했는데, 겁이 많았던 것이었을까요, 그 길을 떠나지 못하고 졸업을 했고 아직도 그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솔메이트님 처럼 강렬히 원하는 분야가 있었다면 어땟을까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조용한 시간에 조용히 잘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가끔 놀러와도 되겠지요? 반가웠습니다 :)
반갑습니다, thinky님! 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군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원하지 않는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thinky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겁니다. 시간이 없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요.
thinky님이 제가 걸었던 그 눈길을 함께 걸어주셨군요! ㅎ 동행이 있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놀러오세요. 자주 뵈어요. ^^
동행이라 말씀해주시니 어쩐지 눈덮인 상상속의 길들이 따뜻해 집니다 :)
아마 저도 솔메이트님 처럼 이렇게 훌륭한 능력이 있었더라면 반항을 해 봤을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이제와서 생각할때 후회는 않지만, 그저 걸어가 보지 못한 다른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건 확실한거 같아요.
사람이 잘하는 것과 하고싶은것, 해야하는것의 사이에서의 갈등이란게 늘 존재하는데 그걸 통합하며 극복하신 방법이 참 멋지셨던것 같습니다. 여기 스팀잇에서 많은 분들과 교류 하면서 지내다보면, 제 본업을 바꾸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길을 경험하게 될것 같아 그것은 살짝 기대하고 있답니다. 물론 노력이 동반되야 하겠지만요!!
반갑게 맞아주셔 감사드립니다 :)
네 '본업을 바꾸지 않더라도 또다른 길을' 경험하는 것, 이곳의 마력 포인트 중 하나죠^^ 확신이 없어서 걸어가보지 못했던 길을 걸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함께 걸어갑시다ㅎㅎ
손 내밀어 주셔 감사합니다 :) 따뜻한 동행이 될것 같습니다.
빈손이라도 충만할 수 있었던 쏠메이트님,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과 소설속에 등장할 인물들을 비출거예요. 응원합니다^^
복을 빌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이들과 소설 속 인물들을 비추기 위해서 더 채우고 애써야겠습니다.ㅎ
누구보다 뜨거웠던 겨울밤을 보내셨군요. 쏘울님의 글 닥분에 지금 무뎌지고 차가워진 저도 뜨거웠던 시절의 일기를 꺼내 읽어봅니다.
뜨거웠던 시절의 일기, 궁금해집니다.^^ 리얼린님의 일기는 리얼한 드라마였을 듯요.ㅎ
죽을때까지 선한것을 비추며 쓰겠다. 더할나위없이 멋집니다. 그 질곡의다짐을 맞이했던 순간들을 견디어내셨으니, 이곳의 하루 한순간, 키보드와 만나는 그 찰나까지도 행복하실것같습니다. ^^ 화이팅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질곡은 늘 계속되고 매번 제대로 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려고 애씁니다. ^^
구한말 폐병으로 각혈를 하던 작가들을 생각하며 솔메님의 미래는 이것이라고 굶어 죽어도 좋다 라고 하신 그 사랑과 열정에 감동합니다. ㅠㅠ
여기에서는 소오름~ ㅠㅠ 너무 멋지십니다.
그 오래전 어느 날에 제가 품었던 생각들도 떠 올려 지고...
스팀잇애서 솔메님이 품으신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요.
감사합니다. 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타인이 이처럼 간절히 빌어주니 감동합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해피써클님 같은 이웃덕에 굶어도 좋다,는 순수한 열망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굶지도 멈추지도 않고 나아간다!는 모토로요ㅎㅎ
차갑고 쓸쓸한 그 겨울밤 가로등은 쏠메이트님의 마음을 비추고 있었네요. 선하고 원대한 꿈이 담긴 그 마음 말이에요.
마음이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 떠오른 그 겨울밤은 지금의 마음을 비춰줄 가로등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그 가로등은 지금의 어떤 마음을 비춰줄까요?
왠지 글에서 쓸쓸함이 느껴져 헤아려보게 됐어요. 따스한 봄이 어서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그 봄에는 쏠메이트님의 어떤 마음이 비춰졌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제 스팀잇 즐거움의 시작이자 고향은 쏠메이트님이니까 지치지 않고 편히 오래 뵙고 싶어요!^^
그 가로등 아래서 순수한 열망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가 비추고자 했던 것들을 제대로 실현했는가 하는 물음에 자신이 없어서 그 날 밤을 떠올린 것 같아요.
추웠지만 뜨거웠던 그 날 밤처럼 다시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숟가락 갯수도 안다는 저의 옆집 이웃 류이님을 오래 뵙고자 하는 건 저의 소망이기도 해요^^
쏠메이트님의 글에서 전해지는 선한 마음은 제 안의 세계를 밝혀서 이만큼이나마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은 확실히 드릴 수 있어요. 잠시 구름이 드리워진 것 뿐이지 곧 밝게 비춰져 뜨거운 심장 찾으실거에요^^
ㅎㅎ 류이님은 '그래도' 제가 뭔가를 했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시는 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류이님 안에 있는 문장들은 언제 나와도 터져 나왔을 거 같아요ㅎ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취업이 잘되는 과에 가서 공부를 해라.. 결국 전 그 학과에 진학을 하고 졸업까지 했지만 결국 튕겨져나왔죠.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없어요. 그래도 후회가 되진 않더라구요. 그때 취업을 위해 다른 회사에 들어갈걸 하고.. 지금 조금 배고프고 힘들지만 후회없이 살고 있어요. 그걸로 만족해요. 물론 잘 벌면 조금 더 좋겠지만요. ㅎㅎ
네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는 개인 선택의 문제겠지만,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돈과 내 신념은 반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만족하시다면 참 멋지고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