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ssay] 이것은 수준 높은 애정 행각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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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수의 노래를 듣고 좋다 싶으면 그 가수의 노래를 다 찾아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다른 노래들을 찾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노래보다 못한 노래들이 줄줄이 나와 고막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크리스마스에 받곤 하던 과자 세트가 생각난다. 커다란 상자에 인기 있는 과자 한두 개를 내세우고, 나머지 공간엔 배고픈 아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과자들로 채워 넣은 과자 세트 말이다.

 반대로, 한 곡에 이끌려 그 뮤지션의 노래를 찾아봤는데 처음 들었던 노래만큼 좋은 곡들이 계속 나온다면, 지나가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옷의 폭탄 세일 팜플랫을 밟은 것처럼 반갑다. 머잖아 내 스마트폰은 그 뮤지션의 노래로 가득 차게 된다. 차에서건 설거지를 하면서건, 몇 달 동안이고 지겹도록 돌려 듣는다.

 동네 앞 마트를 갈 때도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 노래를 들으며 아이 먹을 요구르트를 산다. 요구르트를 사면서도 그 음악 덕분에 내 일상은 뮤직 비디오가 된다. 난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이 되어, 뭘 입고 마실을 나서도 멋스러운 셀럽이 된다. (물론 음악에 취해서 그 순간 내가 느끼는 내 모습과, 다른 이들이 보는 내 모습 사이엔 바다만큼의 괴리가 있으리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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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엔, 평범한 내 안에 히어로 같은 대단한 존재감을 감추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래 보여도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자의식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운전할 때 음악을 들으면, 거대한 타임머신을 운전해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현실을 부드럽게 만드는 환상 내지 비현실적인 도피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런 도피라도 있어야 최소한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말랑말랑한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기도 하고, 희열의 순간을 기억하기도 한다. 때론 아주 쓸쓸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 기억 속의 나를 보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쨌든, 난 그 쓸쓸함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므로 안심한다.

 사실 작년부터 몇 달 전까지 내 스마트폰을 점령하여 일상의 틈을 메워주던 한 뮤지션을 소개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예전에 연애를 할 때 즐거운 행동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녀에게 소개하고 함께 듣는 일이었다. 때론 반대로 내가 소개받아 함께 듣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는 것은, 취향과 감성을 공유하는 수준 높은 애정 행각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웃들과 그 애정 행각을 벌이려고 한다.

 들어가는 말만 A4 한 장 다 되어 간다. 이쯤에서 채널 돌아가도 할 말이 없다. 이제 바로 소개하겠다. 그 뮤지션은 <어쿠스틱 콜라보>라는 인디 그룹이다. 말이 그룹이지, 노래하는 안다은, 기타 치는 우디킴, 이렇게 두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많은 뮤지션 팀이 그렇듯, 이 팀 역시도 보컬을 담당하는 여성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기타 치는 뮤지션들 이름이 샘킴, 에디킴, 우디킴. 유난히 무슨 킴이 많은 건 유행인지, 우연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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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곡이 한 다스쯤 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을 먼저 소개하겠다. 난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라인이 돋보이는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라떼’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광인 와이프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목이 타지 않을 땐 절대 마시지 않는다. 내 귀도 그것과 비슷하다. 설탕 듬뿍 넣은 발라드 감성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재즈풍의 음악은 곧잘 듣는 편이다. 재즈는 엉기고 엇나가는 멜로디라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아직 첫 곡을 소개하지 않았다. 주저리주저리 서설이 길다. 채널 돌아가도 할 말이 없다. 바로 소개하겠다. 첫 곡은 <너와 함께 한 두 번째 크리스마스>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가, 크리스마스에 기대하는 로맨스 그 자체다. 서정적으로 시작해서 애절함으로 점점 고조되어 가는데, 그 애절함이 질척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고 상큼하기까지 하다. 이 곡은 보컬 안다은이 ‘네이브로’라는 남성 보컬 그룹과 함께 부른 곡이다. 뮤직 비디오를 링크하지만, 영상을 안 보고 듣는 편이 훨씬 더 큰 감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남녀의 화음이 어우러지는 후렴구쯤 가면 내 가슴도 폭발할 거 같다. 한 여름에도 털모자, 털옷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가 크리스마스를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곡은 2015년에 나온 앨범에 실린 <그리운 이름>이라는 곡이다. 경쾌한 멜로디로 시작하지만, 이내 보컬의 애절함이 그 경쾌함을 짓누르며 쌉싸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So far away, 너 떠나간 후에.” 라는 가사가 나올 땐 내 심장도 내 가슴에서 So far away~ 되어 멀리 떠나가 버린다.



 이 노래를 들으면, 떠나간 이름들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너 떠나간 후에, 난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역시나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는 일은, 애정행각이다. 이웃들이 이 노래들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일 좋아하는 두 곡을 소개했지만, 꽤 많이 알려진 노래들은 따로 있다. 정유미 주연의 드라마 <연애의 발견> OST로 부른 ‘너무 보고 싶어’, ‘묘해, 너와’, 유이 주연의 드라마 <상류 사회> OST인 ‘그러지 마요’ 같은 곡들이다. 이 노래들도 보컬 특유의 질척이지 않는 애절함이 잘 묻어난다. 자기는 한껏 애절한데, 듣는 이는 담담하게 느껴지는 그런 색의 톤 말이다.

 인지도에서 떨어질지 몰라도, 난 앞에 소개한 두 곡이 훨씬 더 좋다. 숨겨진 명곡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이름난 명인보다, 숨겨진 실력자에 더 끌리는 내 기호 때문은 아니다. 그 노래들이 멜로디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그토록 좋은 것이다.


P.S.

 이웃들이 이 노래들을 듣고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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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i-li님의 평론가들의 도서리뷰 # 56 (181031)

... himapan 2 kyslmate/td> 4 kyunga 6 ...

들으려면 핸폰의 이어폰을 가져와야 하는데...
내일 들어야겠네요. ㅎ

꼭 듣고 느낌 알려주세요. 궁금해요.ㅎㅎ

음.... 여자분이 노래를 잘하네요.
세대차가 나서 인디밴드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계속 좋아하세요. ㅎㅎ

ㅋㅋ 감상평 감사합니다!^^

스팀잇을 로맨스로 물들여봅시다. ㅋㅋ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것만큼 설레고 즐거운 순간도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헤어지고 나서도 그 노래가 생각나는 단점이 있지만요.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노래가 들리면 문득 멈춰서 잠시 떠올리게 되는 각자의 주제곡이있는 것 같아요.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지만 각자의 ost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저도 어쿠스틱콜라보 좋아해요 아직도 모르는 노래가 있네요. 너와 함께 두번째 크리스마스는 처음들어봤는데 겨울과 참 잘 어울려요. 그리움과 애절함이 느껴져요. 그런데 묘하게 따뜻하기도 하고 특별히 좋은 크리스마스 캐럴로 기억할게요! +_+

각자의 ost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요고요고 핵심을 꿰뚫는 표현이네요. 이 노래들이 한동안 저의 ost였군요.ㅋㅋ 이 나이에 조금 민망할 수 있는 ost..zz

어쿠스틱 콜라보를 아셨군요. 이 크리스마스 주제의 곡을 모르셨다니, 뭔가 보람이 느껴지네요. 그 그리움과 애절함 속에 누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즐거운 자신만의 이야기가 떠오르면 좋겠네요. 올해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 곡입니다~~ㅎㅎ

솔메님의 플레이리스트를 알게되니 더욱 가까워지는것 같은 착각이 드네요.^^ 이름따라 가는 취향이 아니라 숨겨진 실력자를 찾는 모습에 진정 음악을 즐기시는 느낌이 묻어납니다.

굿이너프 곡들엔 부드럽고 찐한 감성이 많이 녹아있죠. 오랜만에 가요를 들어서 그런지 한국 생각이 나네요. 듣고 난 느낌으로는... 이번 크리스마스때 뭐하지? (씁쓸) 입니다. ㅎㅎ

전 이미 가깝다고 느꼈는데요ㅋㅋ
숨겨진 실력자 레일라님의 노래도 많이 많이 듣고 싶어요. 한 곡은 플레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거 아시죠?^^

본의아니게 제가 씁쓸함을 안겨드렸군요. 조만간 올릴 글이 씁쓸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거예요ㅎ 미리 위로가 되었음 합니다ㅋ;; 근데 레일라님에게 크리스마스 뭐하지?는 괜한 걱정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거 같은. ㅎ

목소리가 달달하네요. 전혀 연관성은 없는데 괜히 대학시절이 떠올라요. :)

괜히 어느 시절이 떠오르는 힘이 있죠. 음악은ㅎㅎ

모닝 커피 한잔 하면서 듣고 있습니다. 아우 완전 달달해서 감성당뇨걸리겠네요.

설탕 듬뿍~~ㅎㅎ 백종원표 노래라고 할 수 있겠네요ㅋ

저도 좋아하는 그룹이예요~
한 여름 밤의 꿈도 좋더라구요~

좋아하시는 그룹이군요^^
좋은 노래가 많습니다ㅎ

노래 좋습니다~ 웬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런 음악같아요 ㅋ 댓글 속에 반가운 이웃들이 넘치네요~!! ^^

추억을 소환하는 아련한 감성이 담겨 있지요ㅎ 조선생님의 추억은 무엇인지ㅋ

전 두번째 노래가 더 좋긴 한데...
모르던 그룹이라서 그런지..첫 번째 노래에서 안다은씨의 목소리가 처음 나올 때가 인상적이네요..ㅎㅎ 와 이 분 참 목소리 좋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성 보컬 목소리에요.ㅎㅎ
어쿠스틱 콜라보 노래도 찾아서 들어봐야겠습니다. 좋은 노래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애정행각 맞습니다!!! ㅎㅎ

네 두 번째 노래를 듣고 계속 듣다가 첫 번째 노랠 만났어요. 두 노래 다 감성을 마구 자극하지요^^
음악 감상 전문 리뷰어 미동님의 음악 감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뿌듯합니다ㅎㅎ
미동님이 쭉 해오신 애정행각에 비하면 수위가 약하죠ㅋ

그룹의 이름도, 곡의 제목조차도 처음보지만, 쏠메이트님의 도장이 꽝 찍힌 앨범표지를 뜯어 카세트에 넣는 느낌으로 들어보니 참 괜찮네요. 예전에는 이런 앨범 표지엔 장동건이나 이미연의 사진이 붙어있었죠.

예전엔 자의적으로 분류한 노래들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길거리에서 팔곤 했죠.ㅎ 해적 큐레이팅은 음악 CD를 구워 선물하는 걸로 이어졌어요. 예전부터 음악 큐레이팅은 즐거운 행위였나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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