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공존을 가르쳐주는 동물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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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5분 거리에 처가가 있다. 아이들의 외갓집은 골목 안에 있는 주택이다. 그 골목엔 몇 마리의 길고양이가 서식한다. 무척 더운 요즘, 우리가 유모차를 끌고 처가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양이 한 마리가 1층 처마 그늘 아래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 우리를 한 번 쳐다본다. 그러고는 귀찮은 듯 다시 반대쪽으로 머리를 누인다. 마당에 누워 있는 고양이는 일정하지 않다. 새끼일 때부터 보아온 오렌지색, 흰색, 검은색이 섞인 녀석일 때도 있고, 흰색 바탕에 오렌지색 무늬가 있는 녀석일 때도 있다.

 그 골목엔 4~5마리 정도가 오가는 것 같지만, 우리 눈에 익은 녀석들은 대략 3마리 정도다. 2층에 있는 처가에서 장모님이 생선이라도 굽는 날이면, 열어 놓은 현관문 방충망 너머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장모님은 고양이에게 호의적이셔서 먹고 남은 생선이나 음식을 현관문 밖에 내어두시곤 한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우리 딸들이 책 밖에서 가장 먼저 본 동물은 바로 이 골목에 사는 고양이들이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옹알이만 겨우 하던 아이들이 처음 고양이와 맞닥뜨렸을 때,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가리키며,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존재가 주변에 있다는 걸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엄마 아빠에게 신호를 준다. 첫 만남 이후로, 외갓집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골목 안의 친숙한 존재에 대해 아이들의 놀라움은 이내 반가움으로 바뀐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도, 아기 띠에 매달린 아이도, 골목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존재를 발견하고는 그들의 언어로 인사를 건넨다.

 첫째 딸이 제일 먼저 배운 동물의 언어도, “야옹~”이다. 이제 두 살인 둘째 딸도 ‘엄마’ 다음으로 배운 말이, ‘야옹’과 ‘멍멍’이다. 그렇다. “아빠”는 “야옹”과 “멍멍”에 밀려버렸다. 그래도 난 별로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이 골목의 고양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이 고양이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자연 속의 다른 존재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가르쳐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난 고양이를 키웠거나,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고양이를 개보다 조금 못한 동물로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속에 나오는 스산한 느낌의 고양이 이미지가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개를 키우고 싶고, 실제로 키운 적은 있어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양이는 내게 호감을 주는 동물이 아니었다. 사람을 ‘개과’와 ‘고양이과’로 나눌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개과’라는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양이는 내게 친숙한 동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가 골목의 고양이들을 만나면서 그런 마음이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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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골목에서 살아가는 방식, 투쟁적이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경의를 표하기에 충분했다. 늘 주변을 맴돌지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라붙지도 않는다. 한 번씩 존재감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귀찮은 듯 바라보지만 다른 모든 존재를 전혀 무시하지도, 경계를 풀지도 않는다. 잔인한 겨울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어디선가 동사한 고양이가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 소문과 상관없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끈질기게 붙든다.

 난 그들을 마주할 때면 아이들이 그들을 보듯이 반가움과 조심스러움으로 그들을 대한다. 처가의 대문을 열었을 때, 처마 지붕 아래나, 수돗가의 물기 위에 엎드려 있는 그들을 보면 최대한 움직임을 작게 한다. 행여나 나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까봐 조심한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의 그 눈을 바라보며, 언젠가 배운 고양이의 인사를 한다. 눈을 천천히 두세 번 깜빡이는 것이다. 그리고 웃어 보인다. 나의 눈인사와 미소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널 만나서 반가워. 난 널 해칠 생각이 없어. 그러니 안심해도 돼. 네가 있다는 것이 좋아. 네가 필요한 만큼 그 곳에서 쉬다 갔으면 좋겠어.”

 잠시 긴장했다가, 내 눈인사를 받은 고양이들은 대게 그 자리를 지키며 다시 나른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2층 처가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아이들에게 “고양이한테 인사해.” 하면,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첫째 딸은 “안녕~”이라고 하고, 둘째 딸은 “야옹~”이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첫째 딸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보통, 왜 혼자 있어? 엄마는 어딜 갔어? 여기가 집이야? 같은 질문을 한다.

 난, 고양이가 아이의 질문들을 알아듣는다면, 마음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질문의 답들은, 고양이에겐 아픈 과거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고양이에게 직접 그것들을 묻는다면 이런 대화가 오갈지도 모르겠다.

딸: 왜 혼자 있니?
고양이: 처음부터 혼자였어. 여럿이 있을 이유가 있니.
딸: 엄마는 어딜 갔어?
고양이: 어느 날, 먹이를 구하러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것뿐이야.
딸: 여기가 집이야?
고양이: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누군가가 우릴 반겨준다면 우린 그곳을 집으로 여겨. 하지만 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냐.

 난 그 골목의 고양이들이 오래 살아서, 내 딸들이 던지는 질문에 직접 대답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고양이들이 아픔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나이까지 살아남기를. 딸들이 고양이를 통해, 강인해 보이는 겉모습 이면에 묻어 있는 슬픔을 헤아리는 법을 알게 되기를. 무엇보다 약한 것,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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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냥이들이 저에게 빼앗아간 것도 없는데 도둑 고양이라고 불렀었죠. 그냥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도둑 고양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제 마음을 빼앗아 버렸어요 ㅎㅎㅎㅎㅎ

"자기야 부모님은 절도범이야."
"왜?"
"하늘의 별을 훔쳐 당신 눈에 넣어두었으니까."

하던 예전 유머가 생각나네요ㅋㅋ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잔뜩 훔쳐놓고 있는 도둑이군요ㅎㅎ

애묘인은 아니지만 고양이는 특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또 어찌나 매력있는지^^

네 다른 동물은 주지 못하는 신비함과 매력 때문에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하지요^^

첫 사진이 장모님댁에 오는 고양이들인가요?
그 동네 길고양이는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

그 사진은 다른 데서 받은 거지만, 길고양이들이 예쁘게 생긴 건 맞아요. ^^
담번에 가면 찍어서 올려봐야겠네요.ㅎ

생명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잔잔히 퍼지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고양이과 보다는 개과이기는 합니다만...ㅎ

개과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개과..이고 싶은..ㅎㅎ

요즘 자꾸만 고양이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무심해 보이는 태도에 오히려 끌리게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존재들에게 눈이 가게 마련이죠.ㅎ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는 것만 빼고 다 부지런한... 초보 스티미어 입니다.
자주 와서 보고, 자극받아 저도 부지런히 매일 일해보겠습니다-
(아래는 하루키 에세이에서 본건데 엄청 와 닿는 문구라 올려봅니다
첫인사와 안 어울리나요;;;)
CA2EAE29-0CAA-452A-B1E2-A119B0FC199F.jpeg

저도 하루키 에세이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문구네요.ㅎ 반갑습니다.
초보 스티미언님, 앞으로 부지런한 활약 기대할게요!

ㅋㅋㅋ 요즘 스팀잇하다보면 고양이가 대세인거같아요..ㅋㅋ
강쥐ㅡ한물갔고요..ㅋㅋ

아이가 배운말이 엄마 다음 야옹 ㅋㅋㅋㅋ
아빠 서운하시겠는데요..

ㅋㅋ 대세 고양이. 네. 그런 거 같네요~~ㅎ
예리하십니다.
야옹~ 서운하진 않아요.
아직은 고양이보다 아빠를 더 안으려고 하거든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도 길고양이를 이뻐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서 길고양이가 수난을 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수난 당하는 고양이를 보거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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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고양이에 대한 시선이 너-무 아름다와요 :)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그 생명을 무척 사랑해서 늘 곁에 두고 싶어합니다ㅎㅎㅎㅎ 언젠가는 제 인생에 고양이를 맞이할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이동이 잦아, '정착' 비슷한 걸 하고난 후에요 :)) 그들이 자신을 치열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곁에 두고 보고 싶어요, 위로 받고 싶고. :-))

아름답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고양이는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동물인 것 같습니다. 채린님의 삶에 어여쁜 고양이 한 마리가 쏙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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