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놓은 커피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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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커피 한잔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커피는 처음에는 기호, 그 다음에는 습관, 그리고 지금은 뇌에 대한 의무다. 특별히 더 피곤한 날에는 그만큼 더 많은 커피를 마시는데,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정신이 깨어나질 않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고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시는 사람과 비슷한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하루를 커피와 함께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커피를 마셔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는 않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더니 커피가 상했다.

하루에도 2번씩 잠은 좀 잤는지 몸은 아프지 않은지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가 있다. 커피 이야기를 했더니 잘 했다고, 안 그래도 수면부족으로 컨디션이 안 좋은데 커피까지 마시면 더 힘들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오늘은 내 목소리에서 기운이 느껴진다고, 잠을 좀 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평소에도 최대한 기운차게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간 목소리만 들어도 피곤함이 묻어난 모양이다. 걱정을 끼쳐서 참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아무튼 오늘은 컨디션이 좀 좋다고, 며칠만 더 제대로 쉬면 다시 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커피를 내렸다. 오랜만에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어제 상한 커피를 버리며 커피향을 맡아서 그랬을 것이다. 가까스로 조금이나마 나아진 컨디션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의 커피를 내리며, 잠깐 생각이 잠겼다.

나는 원두를 꼭 갈아온다. 원두째로 보관하는게 낫다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우선 원두를 그대로 보관하면 훨씬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단순히 상하느냐, 상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향과 맛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 커피도 볶은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향과 맛이 날아간다. 그리고 갈아서 보관하면 그것이 앞당겨진다. 핸드밀로 원두를 갈며 느낄 수 있는 흥취도 포기해야 한다. 나 혼자 마실 분량의 원두를 가는게 그리 수고로운 일도 아니고, 아침에 밥을 안쳐놓고 드르륵 드르륵하는 소리와 독특한 촉감, 그리고 커피의 향을 즐기며 잠시 시간을 보내면 금새 잘 갈리진 않았어도 내가 마시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커피 가루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꼭 커피를 갈아서 가지고 온다. 앞으로도 그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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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도 커피를 하루에 한잔 마시지 않으면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ㅠㅠ

커피 한잔은 건강에 좋다니 과하게 드시지만 않으면 괜찮을거에요.

커피가 상하기도 하는군요. 첨 알았네요. 원두를 갈 때의 향과 드르륵하는 진동이 저도 참 좋아요. 글에서 커피향이 나요. 오감을 자극하네요. ㅎ

저도 처음이었어요. 평소에는 그냥 맛이 덜하고 말았는데... 이번처럼 오래 커피를 안 마시고 방치한건 처음이라서 그랬나봐요.

제가 느끼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이상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 가즈앗!!! ㅋ

어떤 부분에서 이상의 느낌을 받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즈앗!

커피가
커피가
상하기도 하군요.... 하긴
콩은 콩이니까...

근데 여직껏 그런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네요ㅋㅋ

커피도 상할 수 있다니..! 최근 카페인이 엄청나게 들어가있다는 스누피 커피우유를 먹었었는데, 200ml정도만 마셨는데도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더라고요 ㅠㅠ 아메리카노도 좋아하긴하지만, 먹으면 속이 아픈 걸 보면 카페인 체질은 아닌가봅니다.... 번거로우실텐데도 원두를 가신다니...! +_+ 멋지십니다.

스누피 커피우유에 카페인이 엄청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속이 안 좋으면 샷을 줄여달라고 해서 연하게 드시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왜 갈아서 오는지가 나오리라 엄청나게 기대하면서 읽다 뒤통수가 빡!

그게... 저도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목소리만 듣고도 몸상태를 알아차리고 계속 물어봐주는 친구... 정말 소중한 관계입니다. 아이들이 생기고 부부간에도 서로 안부를 묻지 않은지 오래인데 말이죠ㅋ 저는 커피를 너무 좋아하지만 해이즐넛 향이 싫다는것, 신맛나는 커피가 싫다는 것 말고는 아는게 없어서, 제가 아는 지인처럼 어느집 어느집 커피가 맛있고 어므집 커피가 맛없고... 요런 생각도 없답니다. 원두로 보관하는게 오래 간다는 것도 이제 알았네요. 매일 두세잔씩 마시다가 요새는 한 잔만 마시기오 스스로 절제 중이랍니다.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거의 매일 두세잔을 마시지만 , 안 먹어도 일은 아무 문제 없으니 중독은 아닌가봅니다.
그래도 해외여행 갈 때 짐을 단출하게 싸는 편인데도 커피가루와 드립퍼를 가져갈 정도죠 ㅎㅎㅎ
저는 사무실에 머신을 하나 놨어요 첨에 한달정도 동료들에게 내려드리면 대부분 함께 커피를 사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거의 3주정도까지는 먹을만 하더라고요^^ 좋은 하루되세요

진정한 커피드링커 이시군요
저는 중독자여서 뇌를 위해 마셔요
마치 수액같이 ㅜㅜ

7년만의 다녀오신 여행의 후유증이신가요.

원두를 갈아 마시는 느낌보다 원두를 갈아서 가지고 오기 위해 나서는 길이 더 즐거우셔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향과 맛이 날아가니 많이 나서실 수 있을테니까요...ㅎㅎㅎ

그렇다고 더 자주 나가서 원두를 사오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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