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_ 4. 내가 수포자는 아닌데(2)

in #kr6 years ago (edited)

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시험을 못 쳤다고 생각했는데
점수를 매겨보니
진짜 큰일 났다.

점수가......


4.
내가 수포자는 아닌데(2)

24점.........이었다.
시험지를 아무리 돌려봐도
......24점.

'동그라미가 이게 다야?'
'선생님이 시험 잘보라고 했었는데...'
'선생님이 내 볼을 딱 잡고 시험 잘 보라고 했는데...'

2학기 기말고사가 아니었다면
A반이 아니라
B반 여자 수학선생님께도 수업을 못 들을 뻔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수학 점수가 24점이면 안 되는데?

시험 마지막 날
1교시가 시험이면 2교시는 자율학습을 했고
3교시 시험을 보고
4교시는 자율학습이었다.
그때 A반 수학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들어왔다.
원래 A반 수업하는 교실이 우리 반이라서
선생님이 우리반에 자율학습 감독으로 들어왔다.

'아, 내가 1반이니까 A반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오는 구나!'
교실로 들어오는 선생님을 보면서
엄청 놀랐다가 좋았다가

기분이 엄청 좋지 않았다.

선생님과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나는 수학 점수가
24점이니까.
아직 선생님은 모를테지만
나중에 결과 나오면 실망하실지도 모르니까.

창피해서 선생님을 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시험 잘치라고 했었는데.'
'근데 선생님이 보고 싶은데 어쩌지?'
'선생님이 내 쪽을 안 쳐다볼 때 봐야지.'
'아T^T 수학 시험만 잘 쳤어도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에휴.'

5교시에 시험칠 체육 과목을 훑어보다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날 쳐다보고 있을까?'

한참 먼 산을 보다가
한숨도 몇 번이나 쉬었다.

'선생님이 들었을까?'

그렇게 4교시가 마칠 때까지
선생님이랑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다.

마음은
종치자마자 선생님보다
뒷문으로 먼저 나가서
앞문으로 나오는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러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내가 하던 대로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평소와 다르게 왜 그러는지
궁금하겠지?
혹시 내 표정이랑 행동이
시험치기 전에 봤을 때랑 달라서
앞문으로 나갔다가
다시 뒷문으로 들어와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서
다정한 목소리로
"왜그래? 무슨 일 있어? 평소랑 다른걸?"
하고 물어보러 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문으로 나간 선생님은
뒷문을 지나쳐갔다.

다음 날
아침에 교무실 청소를 하러갔다가
선생님과 마주쳤다.
교무실 뒷문 계단을 쓸고 있었는데
뒷문으로 갑자기 나온 선생님이
엄청 반가워서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엉^^" 대답하는 선생님.

'아...아는 척 안 하기로 했는데...
어제도 내가 창피해서 아는 척 안하려고 애를 썼는데...'

선생님이랑 마주보고 있다가

"어...어... 말걸면 안되는데..."
라고 말했다.
기왕 인사를 해버렸으니
어제 못한 만큼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가시려는 선생님을
잡으려고 던진 말이었다.

"왜?"

"저 샘 포기 할 거에요."

"포기하는 거랑 말 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어... 친한 척하면 안돼요."

"참 ㅋㅋ"
그러고 또 가시려고 하길래

고개를 푹 숙이며
"시험...
수학 시험 잘 못 쳤어요.." 라고 말했다.
"선생님을 사랑할 자격이 없어요."
라고 보탰다.

선생님은 앞에 이야기할 때보다
훨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ㅋㅋㅋㅋㅋ"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학을 못하니까..."라고.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어제도 돌아보고 앉아 있었냐?"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콩닥.콩닥.콩닥.콩닥

심장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뭐...무슨 일이 있겠어요?^^"

"청소 너만 왔어?"

"네ㅋㅋ 아무도 안 오네요. 이것이, 다 죽었어!"
기분이 좋아서
목소리도 엄청 크고
평소에 안 하는 말도 나오고
과도한 자세와
표정이 나왔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살짝 미소짓고 다시 교무실로 갔다.

빗자루로 계단을 쓸면서
선생님이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도 돌아보고 앉아 있었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역시, 어제 날 보고 있었던게로군!! 한숨 쉰 것도! 아.. 좀 오번가? 무튼, 아무튼 이건! 이건! 이건! 이건 ㅋㅋㅋ 어제 보고있었구나> <
근데 다 죽었어! 라는 말은 좀 이상했나...
난처한 표정이셨지 아까?
아무튼 좋아.^^'

기말 고사가 끝난 뒤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교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공부에 집중을 놓치 않는 애들도 있는 반면
시험이 끝난 마당에
영화나 보고싶은 애들도 있고
전교생이 모여 대청소도 하고
그러는 사이
선생님과 마주칠 기회가 더 많아졌다.

급식소에 친구와 저녁 먹으러
끝무렵에 갔었다.
선생님이 저벅저벅 혼자서 식사하러
오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이 다른 친구랑 인사하길래
그 쪽으러 가서 드실 줄 알았는데
식판을 가지고 오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쌤 왜 혼자 계세요, 이리오세요^^"
"또 킴쑤가 오라면 보러와야죠."

밥 먹으면서 친구랑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급식소에서 제일 늦게 나왔다.

방학을 앞두고 야자를 하지 않는데
원래 정해진 야자 감독 선생님이어서
자리를 지키고 그 시간동안 남아 있으셔야 한다고 했다.
"뭐하지? 진학부장님이랑 단 둘이 있어야해.ㅠㅠ"
나는
"답장 써주세요. 제가 편지 써줬잖아요."
라고 했다.
"아...그럴까?"
"진짜 쓰셔야 되요~~"
"네~"
하고 교무실로 들어가셨다.

다음날
교무실 청소하러 가서
선생님에게 손을 내밀며
"샘 편지!"라고 얘기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답장써주세요."
"내가 써줄까...하고 생각을 했는데... 글씨가 너무 안 예뻐서."
"판서는 잘 쓰시더니만."
"숫자는 잘 쓰는데..."
"(흥)아니예요. 바쁘시니까..기대도 안 했어요.(거짓말)"
"그래 -_- 기대하지 마라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답장 써주셔야 돼요."
답장을 써주시지 않는 이유를 들으니
더욱 답장을 써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글씨가 이상해서 편지를 못 쓰겠다는 건
편지가 쓰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오후에 전교생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삐죽거렸다.
"편지도 안 주구. 치, 어제 쓰기로 했으면서 왜 안 쓰셨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다른 말은 안하고
웃으면서 내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삐진 척을 하면서
선생님을 째려봤더니
또 볼을 꼬집으셨다.

"내가 하고 있는데 하라고 닦달 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 내가 그래서 공부를 못 했잖아."

나는 계속 틱틱거렸다.
"기대도 안 했어요!"

선생님은
"뭐? ㅋㅋ 내 맘도 몰라주고."
라고 하셨다.
귀여운 우리 선생님.

행사가 마치고 나서
담당선생님이 정리하는데 도와달라셔서
마지막에 나가게 됐다.
그 때 재돌샘이랑 마주쳤는데
안 가시고 계셨던 건지
나를 기다리신건지 모르겠지만
딱 마주쳤다.

그리고 양복 속 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더니
쪽지 모양으로 접은 큰 편지였다.
그리고 손에 딱 쥐어주시며
"자"하시고는 갔다.
등 뒤에 대고 "고맙습니다"하고 외쳤다.

'꺄! 답장이다!"

안 열어봐도 A4용지를 쪽지모양으로 접은 걸
알 수 있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뛰니까 손도 떨리고
너무 궁금해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써서 주기만 했지 답장 받아 본 적은 없어서
혼자 화장실에서 열어보는 묘미를 알았다.
심지어 2장이었다!

'아 예쁘다.
글씨는 역시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내가 오해했구나. 귀찮아서 안 써주시는 게 아니었어!
꺄 > < 감사해요!'
그림도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도 잘 그리고,
날친 글씨도 어쩐지 아주 예뻐보였다.

'잘 간직해야지.
그리고 또 답장써야지.'

방학하는 날.
답장 받은 거에 또 답장을 준비해서
드리려고 했다.
학교 마치고 나서
집에 가기 전에 인사하고 편지를 드리려고 했는데
편지를 드리는 사적인 이유로
교무실에 들어가기는 그렇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교무실 뒷문에서 한참을 서성였는데
그 때 마침
뒷문으로 나오신 과학선생님께
"재돌샘 좀 이쪽으로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부탁 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오셔서
편지를 전해드리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 차원에서.

그리고 선생님도
손을 잡아주셨다.
악수 차원으로.

두툼한 선생님 손을
잡아봤다.
"춥다~"
"편지 꼭 읽어 보셔야 해요."
"그래."
손이 따뜻해 질 정도로
한 30초 쯤?
잡고 있다가
다른 선생님 지나가시고 하셔서
놓고
"방학 잘 보내세요."
하면서 한 번 더 악수하고
인사하고
왔다.

방학이 여러 날 지나가고
개학이 가까워 진 날.
반 배정과 담임선생님을 확인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교직원 소개에
선생님 이름이 없었다.

.

.

.

오빠는 가끔
간단한 암산도 안되는 나를 보면서 묻는다.

"너 수능 수리영역 몇 등급 나왔어?"

"기억 안나는데?"

"주민등록번호 불러봐.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에 들어가면 성적표 다시 볼 수 있어."

"싫거든요! 헐, 그거 봐서 뭐하게."

"내가 주민등록번호만 적으면 다 볼 수 있어."

"아, 안돼. 제발."

"대학은 어떻게 간거야?"

"나? 난 수시로 갔지. 특기자 전형으로. 수학은 별로 안 중요했는데. 내신이랑 수능 3과목 이상 6등급만 넘으면 되는거였지. 아마. 오빠는? 오빠 성적부터 보여줘!"

"나는 수능 성적 전국 2프로였지. 아, 의대 갈 수 있었는데! 그러면 선생님도 안하고, 그 학교도 안 갔을거고, 너도 못 만났겠지? 그럼 내 인생이 좀 달라졌으려나."

"헐...대박...오빠 진짜 공부잘했구나. (흥칫뿡)더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 만났겠지. 뭐!"

"아니야, 니가 아마 환자로 나한테 와서 만났을지도 모르지! 미안, 사랑해."

"칫~, 나두."

_내일 봐요!

Sort:  

@kimssu님 이야기는 너무 디테일한 표현들이 좋아요! ^^
보팅하고 갈게요^^

늘 감사합니다^^

읽는 동안 달다구리가 제 뇌를 쪼아 달다구리집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달다구리라니 ㅎㅎ 너무 참신한거 아니예요?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imssu님 안녕하세요. 개대리 입니다. @zaedol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화이팅!

교직원 소개에 없었지. 그랬어...
@홍보해

내말이...

잘보고 갑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꾸벅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넵넵! 제가 짱짱맨 태그를 글 올릴때마다 습관적으로 쓰고 있네요 ㅎㅎ 1일 1회만 쓰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ㅎㅎ왠지 소설 한편을 읽고 가는거 같애요.ㅎ

그렇게 읽으셨다면 저도 너무 좋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환자 킴쑤와 의사재돌쌤의 사랑도...흥미진진했겠는데요? 손편지라니 너무 부러워요 ㅠㅠ 손편지 받아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3
JST 0.029
BTC 58720.84
ETH 3088.52
USDT 1.00
SBD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