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저울질

in #kr6 years ago (edited)

저울질 @jjy

날은 흐릿하고 간간이 바람이 불었다.
광명동굴을 가면서 입장료 육천 원은 비싼 기분이 들었다. 단체할인을
받으면 좋겠지만 인원이 부족했다. 20명 이상 단체할인이 적용되는데
결원이 있는 우리는 박박 긁어야 16명이었다.

제값 다 주고 들어가기는 아깝고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기는 모양 빠지는
일이라 어떻게 해서라도 할인을 받고 싶었다. 굳을 대로 굳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그 결과 겨우 짜낸 생각이 인원이 많지 않은 다른
관람객을 끼어 넣고 할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가족 단위나 소규모 인원이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라 그런지 가족이나 친구 두어 명이 온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말
붙일만한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관람객 대부분이 연로하신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단체들로 보였다. 그렇다고 이 마당에 어르신들을 꾸어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를 끼어 달라고 할 처지도 아니었다. 아무리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고 주판알을 튕기며 답을 구한다.

먼저 동굴 입구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회원들을 다시 부른다.
우선 지체장애인과 고령자를 세어보니 여섯 명이었다. 그들이 면제를
받고 나머지 열 명은 일반 티켓을 끊는 것으로 저울질은 끝났다. 열 명
육 만원 티켓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가뜩이나 새가슴이 깨알만해질 뻔 했던 순간이다.
처음부터 모자라는 계산이었다. 회비 이 만원으로는 자동차 렌탈료도
모자란다. 입구에서 안전모 쓰고 동굴 풍경에 감탄하고 와인 시음도
하고 조형물을 감상하며 사진도 찍으며 웃고 떠드는 동안 저울질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밖으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온다.
모자 달린 옷을 입었다 다시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온 걸 후회하며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빨간 영산홍이
머리에 꽂힌다. 동막골 코스프레를 연출하며 오늘도 해피엔딩이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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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게 회비를 운용하시느라 고심하신 흔적이 역력하네요...
덕분에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되었을 겁니다
jjy님 너무 수고많으셨어요!!

잼있게 잘 다녀오셨나요?ㅎㅎ
여독 잘 푸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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