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흔들의자

in #kr6 years ago

흔들의자@jjy

오십이 넘은 신부에게도 웨딩드레스는 더 없이 아름다웠다.
순백의 꽃길을 지나 회색빛 나락으로 접어드는 길은 결코
멀지 않았다.

남편은 재혼이었지만 여자에겐 초혼이었기에 신혼에 대한 꿈도
있었다. 햇살 좋은 날 흔들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기도 하고 가끔 영화를 보며 남편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상상을 했다.

가부장적이고 살갑지 못한 남편은 처음부터 아내의
마음 같은 건 전혀 알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기도에 의지했다.

아버지는 부모 앞에서 일찍이 상처를 했다.
다행으로 재혼한 아내는 신앙심도 깊고 인자한 성품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정성껏 봉양을 했고 집안 살림도 정갈하게
했으며 전실 자녀들도 잘 보살피며 결혼을 시켰다.

나이가 들도록 도시에서 혼자 자유롭게 살다 시집을 온 여자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낯선 환경과 연로하신
시부모와 힘든 농사일에 돈 보고 나이 많은 영감을 얻어 왔다는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사는 일은 힘에 겨웠다.

그래도 남의 눈이나 입방아는 그렇다 해도 살아도 큰 며느리의
텃세 아닌 텃세는 가슴을 치게 했다. 남모르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멀리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버스를
타고 떠나고 싶었다.

시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막내아들까지 결혼을 시키고 나니 남편이
퇴직을 했다. 이제 한 시름 놓게 되나 했는데 큰 며느리가 가출을
하면서 아이들을 맡아 기르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한 푼이 아쉬워 남의 아기를 돌보며 살림에 보태고 아이들이
크면서 큰 아들이 데리고 가자 아기 돌보는 일을 그만두고 근처
입시학원에 취업을 해서 몇 해를 다녔다.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편이 회관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중이라고 했다. 응급실로 찾아간 남편은
의식이 없었고 부인의 애를 태우고 며칠 만에 깨어났으나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성을 다해 남편 수발을 들어 가까운 곳까지 혼자 걷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날도 산책에서 돌아와 거실 유리창
옆 흔들의자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큰 손자가 난폭운전 차량에 목숨을 잃는
사고를 알려왔다.

영안실 밖에서 비명처럼 날카로운 음성이 들리고 소식 한 번
없던 큰며느리가 미처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으며 나타났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재수 없는 여자가 들어와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 아들 목숨 값 당장 내놔!!!

아버지가 세 자녀를 불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궁금증을 부추기고 상상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으로 갔다.

겨우 몸을 기대고 앉은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아들딸들을 앉혀놓고 재산 분배를 선언했다. 지금의 아내에게
살고 있는 집과 집에 딸린 논과 조금 떨어진 산비탈에 있는
포도밭과 연금을 주기로 했다. 두 아들과 딸에게도 땅을 나누어
주면서 조건을 달았다.

매월 생활비로 이백 만원씩 송금할 것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절대 팔지 못한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자기 몫이 적다며 부루퉁해서
새 엄마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보이며 돌아갔다.

남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의 편을 들어 준 다음 날부터
아침 해가 흔들의자에 혼자 앉아 졸다 갔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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