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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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날에도 조금만 아프게 @jjy

어제 빗속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며칠 전 친정 작은 엄마가 세상을 뜨셨다. 우리 나이로 88세 미수였으니 그래도 평균 수명 이상으로 장수를 하셨고 세상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다 마치셨으니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다만 이승의 마지막을 중환자실에서 마치셨다는 일이 보내드리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회생 가망도 없는 환자를 중환자실에 눕혀 놓고 이런저런 검사와 여러 가지 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모습이 내 가족일 때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작은 엄마를 꼭 빼닮은 큰 딸이 문상객들의 위로를 받으며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어도 가냘픈 큰며느리를 마음에 걸려하시던 할머니께서는 튼튼한 며느리를 부러워하셨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지 둘째 며느리는 중매쟁이의 말로 들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튼튼했다. 그렇지만 그 튼튼한 며느리는 혼례를 치르고 시부모님께 첫 인사를 올리자마자 손이 없는 숙부에게 양자를 보냈다. 내 며느리가 조카며느리가 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속이 끓었지만 집안의 결정이라 감히 여인네가 나서서 가타부타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양자를 가긴 했어도 한 동네여서 수시로 모였다. 할머니는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빼앗기긴 했지만 내 며느리라는 생각을 내심 하고 계셨던지 틈틈이 새 며느리를 살폈다. 시간이 갈수록 튼튼한 며느리가 거슬리기 시작을 하셨다. 그 시절엔 친정에서 바느질을 비롯한 음식 솜씨도 가르쳐서 웬만한 일은 척척 해야 했는데 바느질도 그렇고 음식 솜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점점 비교가 되었다. 그런 사소한 일쯤은 접어둔다 해도 무슨 일인지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 손이 없는 집에 양자를 가서 막중한 일을 알았을 터인데 한 두해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감감 무소식이니 집안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복스럽게 밥도 잘 먹는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잘 먹는 것도 흉이 되었다.

때가 이르렀음인지 그렇게 기다리던 첫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가시기 전 진자리에서 아기는 떠났다. 심정이 사나워진 양어머니는 드러내고 시집을 살렸다. 그리고 몇 해만에 낳은 아이가 줄줄이 딸이었다. 이제는 할머니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에 이르렀고 작은댁을 들였다.

무슨 조화속이라고 해야 할까? 그 횡포를 말도 못하고 겪으면서 작은댁은 아이가 없었는데 작은 엄마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해산어미가 아들을 낳고 첫국밥도 못 들고 울었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리고 작은댁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먼지가 뽀얗게 이는 신작로를 울며 걸어갔고 그 이유도 나는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런 구비를 돌아 작은엄마는 아들 둘 딸 넷 육남매를 낳아 길렀다. 그 시대의 여인이 겪는 굴곡을 하나도 빼지 않고 겪은 삶이었다.

장례식장은 육남매의 식구들과 집안사람들만 해도 북적거렸다. 다들 바쁜 생활도 연락도 못하고 지내지만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은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 반가움이 더 컸다. 모두들 사는 얘기에 애들 크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여기서도 시국은 안주가 된다. 한 번씩 집안 어른을 보내는 자리가 자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안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작은 엄마는 화장을 하신 후 작은 아버지 곁으로 가신다. 온전하실 때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다들 어려운데 두 번 일 하지 말고 화장하라고...”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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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곳으로 가셨을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지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이루세요.

연속극에서나 볼 수 있는 가슴아픈 삶을 사셨군요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그 시절에는 좋은 일이 생기면 당연히 남자의 공으로 돌리고
조금이라도 잘 못 된 일에는 반드시 여자 탓으로 돌렸는지요
참 억울하고 모진 세월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아마 그 세대의 마지막이셨다고 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은 그래서는 안 되고 실제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 부분에선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네요
편안한 밤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읽다가 몇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님 때 생각이 나네요 ㅠㅠ

할머님 세대 또한 그런 세월을 사셨겠지요.
오로지 몸과 마음을 옥죄고 살아야만 했던
감사합니다.
하늘이 환해 지네요.
이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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