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 jjy의샘이 깊은 물

in #kr7 years ago

대문.png

덩어리 @jjy

비 내리는 새벽에 나서려니 긴 바지가 불편할 것 같아 서랍을 뒤지는데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방에서 손대중으로 더듬어 찾다보니 마땅한 옷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대충 잡히는 대로 입고 벽에 걸어 놓았던 옷을 걸치고 나서는데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손을 넣어 보니 무언가 단단한 덩어리가 손에 잡힌다. 집히는 생각이 있어 얼른 꺼내보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받았던 호박엿이 나온다.

대녀로부터 늘 바쁜 나를 생각해 맛이나 보라며 신랑편에 전한 것을 건네받은 일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보다 지능도 떨어지고 커다란 덩치답게 먹성이 좋아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먹는 일밖에 없다며 핀잔도 많이 받는다. 시집살이도 호되게 하고 살았는데 시부모가 갑작스럽게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남편과 둘이 아옹다옹하다 토닥거리다 하며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나중에 울타리가 되어줄 자식도 못 낳았으니 다투지 말고 서로 아끼고 살라고 타이르기는 하지만 다툴망정 둘이 붙어 다니며 사는 모습이 그래도 대견하다.

난전에서 파는 싸구려 반지나 팔찌 같은 잡살뱅이를 사도 자랑을 하고 매니큐어만 새로 발라도 보여주러 오는 대녀를 신랑이 연달아 핀잔을 준다. 하도 뚱뚱해서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리통이 웬만한 허리만 하다느니 얼굴이 수박덩어리만 하며 퉁퉁거려도 알고 보면 신랑이 사준 것으로 밝혀진다. 얼굴이야 수박덩어리면 어떻고 보름달이면 어떠랴, 그렇게 사이좋게 살면 예쁘다고 하면 얼굴은 어느새 함박꽃이 된다.

우리 집안 동생 중에 어릴 적 오빠들에게 덩어리라고 놀림을 받고 자란 아이가 있었다. 오빠 셋에 막내로 여동생 하나면 금이야 옥이야 했을 법도 한데 귀염은커녕 오빠들에겐 미운오리새끼였다. 오빠들은 이름대신 덩어리라고 불렀다. 이유를 들어보니 뚱뚱하다고 비개덩어리, 말 안 듣고 대든다고 골칫덩어리, 쓸 만한 짓 하나 못 한다고 똥덩어리라며 날이면 날마다 놀림의 연속이었다. 오직 엄마만 오빠들을 나무라고 딸을 감싸고 들었지만 쥐구멍에 볕이 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아이는 풀이 죽어 침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장했다. 어느 집에서나 가장의 변고는 가족의 삶을 흔들었다. 대 가족으로 살던 큰 아들네를 분가를 하게 되고 미혼인 둘째 아들은 직장 가까운 곳에 친구와 방을 구해 살게 되고 아직 학생이던 막내아들과 딸을 데리고 서울 근교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낯선 동네 그것도 시골 생활은 처음부터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만큼 어려웠다. 설상가상 진료비와 생활비는 큰 아들이 지원을 한다고 해도 받아쓰는 입장은 늘 갈증에 시달렸다. 엄마는 아버지의 시중을 들어야 했고 그 갈증을 해결하는 역할은 고스란히 딸에게로 돌아갔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가까운 마트에서 일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건설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오래지 않아 그만 둔 자리를 꾸준히 일을 했다. 점차 사무실 분위기에도 적응하고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능력이 하나 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칭찬을 하고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결국 아들들도 못하는 역할을 하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눈빛이 따뜻해지고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회사의 대표가 아들과 다리를 놓아 마침내 축복 속에 결혼까지 했다. 물론 지금도 시댁에서도 한 번씩 새아가라는 호칭대신 덩어리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 복덩어리, 넝쿨째 데려온 우리 복덩어리라고...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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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day

우리 복덩어리

우리 복덩어리
이 이상의 응원이 또 있겠어요
이 참에 인사를 복덩어리로 하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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