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잔치를 하자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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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하자 @jjy

한참이나 거울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신 모습을 비춰보신 끝에 외출차비를 끝내신 어머니께 부조금을 담은 봉투를 드렸다. 어머니보다 연배는 훨씬 아래지만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칠순을 맞아 부부가 합동으로 고희연을 하게 되어 나들이 삼아 다녀오시라고 했다. 다행이 날씨는 조금 시원해 진듯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예전 같으면 복중에는 너무 더워 손님 치루기 힘들다고 해서 잔치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계절도 없이 청첩장이 날아온다.

오후가 되어 어머니께서 흡족하신 얼굴로 돌아오셨다. 자식이 많으면 기르기는 힘들어도 큰 일 때는 좋다고 하시며 딸이 다섯이나 되어 외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까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니 꽃밭처럼 호화롭다고 칭찬이 이어진다. 떠나실 때는 동행이 없어 삼복에는 잔치를 한다고 불평을 하시더니 친한 분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이 되신 것 같아 언제 그러셨나 싶을 정도다. 요즘은 칠순이라고 해도 너무 젊은데다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면 잔치를 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물론 듣기에 따라서는 일리가 있어 보이나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즐거워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 드리는 게 그나마 효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환갑이나 칠순이면 강산이 변하기를 몇 차례나 하고도 남을 세월이니 모처럼 식사라도 하며 뜸 했던 소식도 들으면 그 나름의 기쁨도 있다. 남모르는 눈물과 상처를 덮고 살았을 덧없다할 세월을 격려와 축복의 눈으로 바라보는 치유의 시간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반드시 칠순이나 팔순이 아니어도 회갑이나 생일잔치도 할 수 있으면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생일날 가족들끼리 자식들을 위해 정작 당신은 뒷전이셨던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면 받으시는 쪽보다 드릴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인쇄된 청첩장을 돌리고 부조금을 받으며 밴드나 국악인이 주도하는 잔치가 아니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잔치를 벌여보자. 반드시 거창하게 차리고 사람이 많이 모여야 잔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게 바로 잔치다.

동창회 같은 친구들 모임도 햇빛 바른 마당에서 어린 시절에 했던 수건돌리기나 보물찾기 또는 기차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있다.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눈싸움도 해 보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었다. 하긴 이런 케케묵어 싫증이 난 놀이가 어떨지 모르지만 그건 걱정거리도 안 된다. 몇몇이 모이면 그 안에 오락반장은 반드시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시절 교복도 입고 우리를 가르치신 은사님께서 계시다면 더 좋은 하루가 되고 여의치 않다면 그 시절을 회상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돈도 시간도 문제라고 하겠지만 장수시대라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는 무언가 시도할 필요가 있다.

옥수수가 익으면 다 같이 모여 하모니카를 불고 햇고구마를 캐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먹어도 좋다. 애호박을 따 만두를 빚어 만두보다 더 통통한 아이의 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날, 추수가 끝난 논배미에 방죽물을 빼고 누렇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던 날 떠들썩하던 웃음소리와 동네에서 제일 연세 높으시던 어른이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시고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온 날 동네사람들이 막걸리 동이를 놓고 어울리던 멍석마당의 기억처럼 잔치는 이어져야 한다. 늦은 밤 김치를 깔고 고등어 통조림을 넣어 뭉근히 끓이며 소주병을 비우다 누군가 불빛을 보고 찾아오면 라면 하나 더 넣어도 그 밤은 추억이 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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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있어야 하죠. 경사는 삶의 달력에서 빈번할수록 좋고요.
옛현인들은 절기마다 그냥 넘기질 말고 맛난걸 먹으며 축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따사로운 잔치의 의미를 구축해주시니 참 좋으네요.^^

명절 빼고도 이름가진 날은 왜 그렇게 많은지
숨만 돌리고 나면 또 무슨 날이라고 음식장만 해야하는 일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온전히 엄마 몫이었습니다.
힘들게 일만하시는 엄마가 이해가 안 가고
꾸역꾸역 모여들어 실컷 먹고 싸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얄밉고 싫었지요.
보다 못해 투덜거리면
이렇게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는 엄마한테
나는 이다음에 아무도 못 오게
아주아주 좁은 집에 살거라고 하던 생각이납니다.
그게 얼마나 좋은 줄도 모르고

지금은 JJY님이 싸주시죠? ㅎ

죄송!!!
그런거 안 한지 오래 됐습니다.

좋은글 또 한번 잘 읽고 갑니다 ^_^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동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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