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인터뷰#17-2] 마도로스 김 (악착같은 미련)

in #kr7 years ago (edited)

저녁은 아니지만, 비 구름으로 이미 어둑해진 낯선 거리를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배 안에 있어봐야 딱히 할 것도 없던터라,
배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크지 않은 번화가 까지 왔다.

반겨주는 이도, 말을 걸어주는 이도 없었다.
승선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
다시 돌아가서, 교대근무를 해야했기에, 더더욱 쫓기는 듯한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알차게 써야하지만, 고민한다고 딱히 뭔가 떠오를 것
같지도 않았다.

맛있는 거라도 먹어볼까 싶어 동내를 몇 바퀴나 돌고 돌아 들어간 식당.
호텔급의 일류 식당은 아니었지만, 묘한 분위기와 시끄럽지 않는 듯한
느낌, 그리고 밖이 보이는 창가 자리가 좋아보이는 그런 식당이었다.

살다보면 몇 번 놀라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 날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왜…여기에 네가…? 왜….?”

식당 안, 그 특유의 독특한 냄새와 주문 전 나온 이름 모를 차 향기,
장시간 배를 타고 난 후의 피로와 어둑한 창밖 풍경에서 뿜어나오는 듯한
높은 습도…. 꿈을 꾸는 듯한 조금은 몽롱한 느낌의 이국적 분위기….

“이게 꿈이 아니라면, 왜 이 곳에 네가 있는거야?”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분명히 그 사람인듯 했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테이블을 떠난 후, 식당안을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시선을 꽂아 두고, 연신 그럴리가 없다며 혼자 웅얼거리고 있었다.

“꿈이라면 이대로 깨기 아깝다. 더 가까이 보고 싶다.
아니, 만져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다.”

가까이 보기 위해, 그녀가 그의 테이블 쪽으로 가까이 왔을 때,
손을 들어 그녀를 불렀다.

“맥주 하나 주세요” 웃는 모습까지 어쩜 저렇게…

주문을 받고 그녀가 그를 향해 날려보낸 미소에 그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뭔가 서툴렀지만, 그 마음만큼은 순수했던 사춘기 시절.
방학 때 대형학원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어렵게 말을 걸어,
결국 사귀게 되었고, 숫기 없는 그를 조금은 무뚝뚝하고, 재미없게 여겼을
진 몰라도,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며, 그는 그렇게 첫사랑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 겨울 방학 어느날, 학원에서 더 이상 그도 그녀도
보이지 않았다.

“야! 학원 안 오고 뭐하냐? 둘이서 밀월 여행이라도 간거냐?”

"나 학원 안 가… 그리고 나 집에 없을거니까 전화하지 말고...."

“뭔 소리야…?”

그날 밤, 집으로 찾아간 나와 다른 친구…

“이민간데…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이유를 그도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녀에게 들은 내용으로는,
그녀의 부친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친지분이 정착 해 있는 캐나다에서 새롭게 출발 한다고 했다고 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알기엔 아직도 어린 나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린 아이처럼
때를 쓰고 울고 불며 가기 싫다고 매달릴 수도 없는 나이였다.

그렇게 이별을 앞두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붇잡아보고 싶은 그는,
추운 겨울 내내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다, 먼 발치에서 집에 들어가는
그녀를 훔쳐보곤, 공중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기를 매일같이 했었다.
두어 달의 겨울방학을 학교 보충수업도, 학원도 가지 않으며,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는 날…그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섰었다. 정신줄을 놓고 공부와 담을 쌓을 것 같은 우리들의 걱정과는
달리, 그는 뭔가에 홀린 듯이 책을 잡고 미친듯이 공부를 했고, 그 이유가,
졸업 후 캐나다를 가기 위함이었다는 걸, 머지않아 우리들은 알게 되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얼마의 돈은 모았지만, 충분하지 않아, 입학 후 돈을 더 모을 요량으로,
그렇게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갇혀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에서, 감당 되지 않을 정도의 자유를 한꺼번에
부여 받고 시작된 대학 생활… 악착같이 공부 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봄 날의 캠퍼스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그녀의 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10대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속에 그대로 박제한 채 살아가던
그가 보게 된, 베트남 어느 식당에서의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한 여인…
정말 꿈만 같을 수 밖에….
(보여준 사진을 봤는데, 도플갱어인 줄 알았다. 정말 닮은 그녀)

규정상 술을 마시면 안되지만, 맥주를 한 병 시켰고, 한 마디라도 더
걸어보려,천천히 혼자 식사를 하며, 그녀를 쫓는 시선으로 그는
두리번거렸다.


쟈니: 알았으니까, 고기 좀 먹으면서 이야기 해라…고기 사달라며…

1차에서 간단히 먹고, 인근 고깃집으로 옮겨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조개는 보기엔 많아 보여도, 껍데기를 빼고 나면, 먹을게 얼마 없는…
나도 배가 여전히 고팠고, 먹다보니 나만 먹고 있었고, 그 친구는 혼자서
술을 홀짝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쟈니: 아니…뭔 말이라도 걸어서, 연락처라도 받아야지…뭔 청승을
그렇게 떨었데…암튼 예나 지금이나 숫기 없는건 여전 하구만….
그래가지고 뭔 연애를 하것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마린: 그 종업원을 불러서 친절하다며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고 하니까
알려주더군. 식당이야 뭐 어디 안 가니까, 식당 명함 하나 얻어서 그 곳
전화번호랑 주소는 쉽게 알았고…
다음날 늦은 밤에 출항이라, 오후에 시간 내서 다시 그 식당을 찾았는데,
근무시간이 안돼서 아직 출근을 안 했다고 하더군….
밖에서 기다리다가, 출근 하는 그녀를 만났고, 간단히 내 소개 하고,
다음에 또 오면 그땐 시간 내 달라며, 내 연락처를 줬어…

쟈니: 오…옛날 하곤 다른 모습….

마린: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마음이 급해지더구만….
당분간 베트남 쪽으로 보내달라고 윗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지…
오자마자 며칠 안 쉬고, 난 또 바로 베트남으로…

쟈니: 다시 만난겨?

마린: 만났지…그렇게 1년 간 오가면서 연애를 했는데, 자연스럽게
결혼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아니다 싶더구만…

외국인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한 집에서 생활해야 하고, 나는 배 타고
나가고….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그저 내 첫 사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만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결혼을 하는게
그저 내 욕심에, 내 외로움에, 내 첫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지더군….

쟈니: 얼시구…

마린: 아버지도 위중하신 때라, 당장 결혼을 올릴 상황도 아니었고,
설령 급하게 한다 해도, 배 타고 나간 나 대신, 어머니와 병원
오가면서 아버지 병간호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뭔가 무서워지더라.
결혼이 무서운 게 아니라 무책임한 가장이 되는는 게 무서웠고,
가족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배 타고
나가는 것도 너무 무책임한 듯했고…

어쩌면 그 사람을 좋아 하는게 아니라, 내 첫사랑에 대한
악착 같은 미련 붙잡고 있다는 생각…

쟈니: 절시구…

마린: 사람에게 그러면 안되잖아… 내 욕심 부리다가 누군가 인생을
자칫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거….

쟈니: 이 새끼가…그럼 그 동안 그 여자를 가지고 논거냐?

마린: 말 조심해라….내가 그런 인간으로 보이냐?

쟈니: 아니지… …당하면 당했지, 니가 누군갈 가지고 놀 사람은 아니지…
아 쫌 고기 좀 먹으라니까....
사달라고 해놓고 혼자 술만 홀짝거리고 있어…쯧!

마린: 그래서 만나서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솔직하게 다….
책임질 짓도 안 했고, 매너 좋게 데이트만 했는데, 그런 모습이
좋았던 모양인지, 많이 좋아한다고 하던데, 나이 차도 있고,
단순히 연애만 하며 지낼 수도 없어서, 더 이상 찾아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 하니까, 펑펑 울더라…

쟈니: 이…씨….확 주 차뿌까… 야~!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책임 질 일인거지…확~!

마린: 그래… 니 말 맞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그렇게 결단 내서
마무리 해야겠단 생각에 그렇게 내질렀는데, 그렇게 울 줄은 몰랐네…

쟈니: 아하….얼마 없는 연애사가 무척이나 복잡한 새끼…아..놔…

마린: 이번 생은 걸렀나 보다….(혼자 원샷)…술이나 한잔 더 줘…

쟈니: 참…진짜….에라이…

마린: 그러고 보니까,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처음이네…
오랜만이구만…

쟈니: 아이고..눼눼..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인사도 차~~암 빠르시네요..
아…안주 좀 쳐 먹어 이 새끼야…속 버려… 고기 사 달라며…

마린: 넌 결혼 생활 어때? 결혼 하면 좋아?

쟈니: 어~~~엄청 좋다. 좋아서 또 하고 싶을 지경이다.

마린: ㅋㅋㅋ 미친놈…

쟈니: 옳고 그른 건 있어도 사는데 정답 없다.
결혼이란 게, 사랑의 최종 목적지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마음 조이며 살 필요 없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까 결혼이란거에 매이지 마라.
방송 보니까, 20대와 결혼한 50대 아저씨도 있두만…

마린: 그래 뭐… 인연이 닿으면 그렇게 또 만나겠지…

쟈니: 그럼 그 베트남 여인하곤 완전히 헤어진 거가?

마린: 어…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난 후에 두어 번 더 만났어…
그대로 연락 끊기에는 너무 미안해서…그 사람도 나중에는
그렇게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고 하데…자기도 결혼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배타는 남자와 국제 결혼을 한다는 게 솔직히
부담스런 마음이 없진 않았었다고…

그리고, 잠깐이긴 했지만, 한국 남자 만나서, 꿈에 그리던 그런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그야 말로 그냥
꿈이고 자기 욕심이었다고….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미안해 하고 고마워하고…
그렇게 마무리 됐지…나는 그렇게 생각 하는데, 그 사람은 또
다르게 기억 할지도 모르겠다. 남녀가 바라보는 시선이나
느끼는 감정이 다르니까…

쟈니: 오…호호호호…섬세한 놈… 여전히 신경써주는 거 보소….
아름다운 새끼…야…너 안주 안 먹으면 마지막거 내가 먹는다…


마린: 내거다. 가져와라.

쟈니: 그럼 이젠 동남아 쪽으로 배 안탐?

마린: 경력도 어느 정도 있고해서, 좀 더 멀리 가는 배 타볼까 싶다.
오가는데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노후생각해서 지금쯤 경력 더 쌓고,
나이 더 들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까운 곳 다녀야지.

쟈니: 뭘 하든 건강해야 하니까, 건강 관리 잘하고...한잔 하자...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위하여, 세상 가장 바보 같은 "위하여"를
외치며, 그날 과음을 했다. 다음 날 머리아프고 속쓰린 건,
덤으로 받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오래 묵혀있던 이야기를
오랫동안 주고 받으며, 그렇게 오랜 우정을 확인했었다.

그의 항해에 어찌 매일 날씨가 좋을수만 있을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그의 항해에도 파도가치고, 비가오며,
안개 가득한 바다를 만나게 될 것이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칡흙같은 밤에도 그는 그곳이 어디이며,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수가 있다. 그에겐 항해지도와 GPS와 레이더가 있고,
언제든 연락을 할 수있는 통신시설이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누구에게나 그러한 것들은 다 있는 듯하다.
자신만의 지도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와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그 누군가...

우리의 항해에도 파도와 비와 안개가 가득 찼을 때, 표류하지 않기를,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기를, 그것들을 꺼내보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멋진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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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결혼이 너무 좋아서 또하고싶으시다는 말씀에 웃었습니다 ㅋㅋ 친구분이 가슴하픈 사랑을 하고 계시는군요..

이 문구를 제 아내가 보면 죽이려고 하겠죠...? ㅋ "환갑 때 당신과 식을 다시 올리겠단 말이야"라는 멘트를 준비해놓고 있습니다만....^^;

얼씨구 절씨구... 적절한 짤들... 몰입해서 잘 읽었습니다.
왠지 친구분... 앞으로도 결혼은 힘드실듯... 넘 순정파십니다. ㅠㅠ

제가 맨날 그 친구를 유일하게 갈구는 항목입니다...언제까지 첫사랑에 빠져서 살거냐는...ㅋ "바부탱이 노총각아~~"(실제로는 매우 쎈 덕담?을 해줍니다만...ㅋ)라고 구박을 해댑니다만, 사람마음이란게 참...좋은 짝을 만나겠거니...하다 못해 말못하는 인어공주라도 만나겠거니 하고 있습니다..ㅎㅎ

아이 한참 몰입하고 있는데 얼시구 절시구 뭐예요 ㅋㅋㅋ

ㅋㅋㅋ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써먹은 짤이었네요....^^;

국제결혼 쉽지 않은 결정인 것 같아요. 친구분도 좋은 분 만나실 수 있길..!

언어와 문화의 차이...단순히 외모에만 치중한 국제 결혼은 반대라고 친구에게 이야기 했습니다..ㅋ 빨리 좋은 사람 만나야 할텐데 말이죠....

헉그런우연이...쟈니님이야기인줄알고놀랬어요 슬픈글이예요ㅜ

대기만성이라 믿어봅니다^^ 좋은 사람 잘 만나겠죠? ^^

두번의 사랑이 다 너무 아프네요 😢😢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가 봅니다 ㅋ.

Greetings successful friends, apakabar. Sorry I have not visited your blog for a long time, still the same good and interesting post. Thanks for sharing.

Thank you for coming to my blog always. I will try to upload better stroy. Thanks again to you and my all friend in Steemit.

현실때문에 헤어진 사람이지만 인연이 아니었으니 그랬나봅니다. 그래도 구질구질하게 헤어지지않아 슬프고도 깔끔한 이별이네요. 뱃사람은 뭐든 조금씩 제약이 있을거 같다란 생각이 드는 글이예요 ㅡㅡ;

그러게요...집을 떠나 몇 주씩 나가서 일을 하는 많은 직종의 많은 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한편의 소설 이로군요

왜 제 가슴이 다 먹먹해 지나요~~

남녀간의 사랑엔 고달픔이 끼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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