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DAY 31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등산객은 걸음을 빨리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이면 집 뒷산을 등산을 했던 그로서는 걷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발걸음이 서두르는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답답할 뿐이었다. 그는 아예 가볍게 뛰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 있어요?”

허겁지겁 뛰어내려오는 그를 보고, 올라가던 등산객들이 의아해서 물었다. 산에서 바쁘게 뛰는 사람을 보는 것이 흔하지 않는 법이어서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산 위에서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으로 지레짐작해서 사람들은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아뇨. 개인적으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는 십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은 지리산을 등반했고, 또 오고가다 만나 눈인사라도 나눈 처지의 사람들이라 그냥 무시할 수 없어 대충 얼버무렸다. 그는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다시피 걸었다. 거추장스러운 등산모자는 벗어서 손에 든 지 오래였다.

‘맞아! 틀림없어. 외계인이야. 말로만 듣던 외계인을 직접 내가 만나다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외계인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어. 외계인은 분명 있어.’

그는 걷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그동안 자신이 떠벌였던 많은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자신도 혼란에 빠질 정도였다. 그는 산만해지는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오! 하느님!”

아이들이 외계인이며 유에프오에 대해 떠벌일 때, 그는 매번 콧방귀를 뀌었던 것이다. 지금껏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아온 그에게 외계인이나 UFO 따위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는 아예 그런 종류의 드라마나 영화도 기피했었다.

“이 놈들아! 할 일 없으면 공부나 해라. 외계인이 어디 있어? 하느님도 없는 판국에. 비싼 밥 먹고 헤헤거리지 말고 공부나 해. 나중에 쪽박 차지 말고.”

그는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뿐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등산객은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뛰듯이 걸었다. 어찌나 긴장을 하고 힘을 줬던지 발뒤꿈치와 종아리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질 듯이 아팠다.

겨우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신의 차에 다다른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에서 겨우 열쇠를 꺼냈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자, 그는 다소 안정을 찾았다. 키를 꽂아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맨 등산객은 자신의 몰골이 어떤지 보려고 룸미러를 자기 쪽으로 조금 비틀었다.

“헉!”

그는 숨이 탁 막혀오는 것 같았다. 룸미러에 조금 전에 산에서 만났던 백인 사내의 얼굴이 언뜻 비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려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뒷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휴!”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너무 긴장한 탓에 노이로제에 걸린 거야.’

등산객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돌리던 그는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으악!”

등산객은 운전대를 두드리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두 명의 백인 사내가 창백한 모습 그대로 차의 보닛 위에 올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백인들은 앞 유리를 통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매의 눈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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