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별을 쫓는 해바라기 18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가게 일이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밖에서 전화를 걸고 들어오니, 강 형사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나흘째야. 들어가자마자 무전을 친다더니 나흘이나 지났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네."

"걱정되기야 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있어야죠. 무턱대고 들이닥칠 수도 없고..."

"안 되겠어. 내일까지 기다려 보고 연락이 없으면 일단 우리가 안으로 쳐들어가자고.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강 형사는 어제 마시다 밀쳐놓았던 술상을 다시 끌어당겼다. 이렇게 모텔 방에서 술이나 마시며 기다리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강 형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여자들을 험한 곳에 보내놓고, 남자들은 따뜻한 방에서 이렇게 술이나 처먹고 있으니..."

강 형사의 그 말이 마치 나를 향한 질책인 듯이 느껴져, 나는 꼭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자네는 애초부터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 아마 미워했을지도 모르고."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강 형사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강 형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홀쭉한 볼따구니와 주름진 얼굴, 고집스럽게 보이는 꽉 다문 입술, 그리고 작고 매서운 눈, 내가 아버지 때문에 처음 강 형사를 보았을 때보다 무척 늙어 있었다.

"강 형사님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매일매일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는 아버지를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나 저에게 한 것이라고는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 밖에는 없으니까요."

"내가 형사생활을 한 지도 삼십여 년이 넘었지만,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어. 가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모두 다 같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 한 사람의 범죄자 때문에 양쪽 집안이 풍파를 겪는 것을 보면 그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었어. 한 사람의 범법자가 세상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말 안 해도 알 거야."

"지치득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남의 똥구멍을 핥아주고 수레를 얻는다는 뜻이랍니다. 더러운 짓을 해서 얻는 이득이 뭐 그리 좋을까요? 왜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그런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차 삼차 같은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걸까요?"

"글쎄. 학자들에 따라서는 유전이다, 범죄형이다, 후천적 환경에 의해서다 등등 학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그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자살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사람의 환경이나 성격, 경제적인 문제, 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를 자살로 이끄는 거지. 그런 것처럼 단순히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범죄자가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

"정말 문제네요.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관찰할 수도 없고 말이죠."

나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술을 비웠다. 요 며칠 동안의 과음 때문인지 한 잔을 마시고 나니,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느끼한 속을 겨우 진정시키며 말라비틀어진 노가리를 씹었다.

"자네 아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자네 아버지가 사기꾼이었다고 생각하나? 아니지. 처음에는 자네 아버지도 사기꾼의 꼬임에 빠져 사기를 당한 선량한 피해자였지. 몇 달을 쫓아다녀 잡은 사기꾼이 돈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지. 물론 이미 돈도 없고. 놈들은 돈을 찾아주겠다고 자네 아버지를 꾀어 자기 패거리로 만든 거야. 그렇게 몇 번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고, 아차, 하고 정신이 들 때면 이미 때는 늦고..."

"그만 두십시오. 이제 와서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자 달라질 게 뭐 있겠어요? 이제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흘러간 유행가처럼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애써 잊어버리려 다시 술잔을 들었다. 두 잔째는 별 거부감 없이 목을 타고 물 흐르듯 내려갔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자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 그리고 어떤 대규모 사기단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내게 귀띔해 주고는 그 사기단을 혼자서 파헤치기 시작했어. 위험하다고 나와 같이 하자고 해도 확실한 단서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혼자서 파헤치다가 결국 피살된 거야. 자네 아버지가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철저한 사기꾼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 또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유언처럼 자네 식구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말도 했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내가 윤도가 하는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야.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끌려다는 인간..."

그래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스스로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사기를 당한 사람이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형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형이 예전에 행한 파렴치한 행위가 모두 없었던 것으로 될 수 있단 말인가! 형이 내 발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죽은 준석과 아직도 정신이 이상한 준희가 처음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난숙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가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어쨌든 아버지와 형은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왔고, 그랬던 것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나는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모질게 억누르며 냉정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로는 나와 강 형사는 입을 닫은 채 술잔만 열심히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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