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다듬기

in #kr2 years ago

2월105.jpg

<파도 다듬기>

---이 서 빈---

4kg의 바다를 사들고 왔다.
400g을 덜어내니
바다 한 귀퉁이가 우묵하다.
마른 파도를 다듬기 위해 앞치마 입고 신문질 펼친다.

팔딱거리는 물결 한 자락 떼어내고
뛰어오르다 굳은 파도 꼬리를 자른다.
머리 떼어내고 손톱으로 배 가르니
뒤틀리고 마른 비린내가 거실을 헤엄쳐 다닌다.

살기 위해 뭉쳐 다닌 물 속
뭉쳐 다녀서 쉽게 그물에 걸렸다.
얼마나 쫓겨 다녔는지 까맣게 탄 내장
질서의 뼈들에 반짝,
별빛이 박힌다.

거실에 펼쳐진 은빛물결들
끓는 열을 통과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은빛
고추장에 꾹꾹 찍히고
프라이팬에 볶여도 웅크리기만 하는
세상의 밑반찬들.

잘 손질한 멸치 한 접시
빳빳하게 굳어버린 수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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