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공룡능선, 신선의 길을 걷다

in #kr7 years ago (edited)

19일 토요일, 설악산 공룡능선을 탔다. 며칠간 큰 비가 온 뒤여서 하늘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멀리 동해바다도 그 푸름을 뽐내며,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설악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때로는 그 미세한 생김새를 온전히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운무속에 그 자태를 감춰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옛 문인들이 지리는 웅장하나 아기자기함이 부족하고, 금강은 예쁘지만 웅장한 맛이 없다, 설악은 웅장하면서도 예쁘다고 한 말 그대로였다.
20180519_073140.jpg

20180519_064138.jpg

18일 금요일 밤 11시30분 서울을 떠난 산악회 버스는 토요일 밤 1시20분 설악휴게소에 도착했다.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제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3년만에 공룡능선을 다시 타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들머리를 한계령으로 할 지, 오색으로 할 지 갈등이 생겼다.
보통, 새벽 3시 한계령에서 1시간 남짓 오르면, 한계삼거리 곧 서북능선에 올라타게 된다. 거기서 중청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새벽 5시 무렵의 여명부터 일출까지 천하일경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내설악의 용아장성, 공룡능선과 수렴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점봉산의 연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는 끝청, 중청, 대청이고, 뒤로는 귀떼기청봉이 보인다. 공룡능선을 따라 시야를 계속 넓히면 마등령과 황철봉이 계속 이어진다. 감탄사를 내뱉을 수 밖에 없는 멋진 절경이다.
특히 새벽 시간대는 운무가 나타나는데,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천하일경이다. 설악의 운무는 동해바다의 습기를 머금어 더욱 진하다.
이런 풍광을 본 사람은 당연히 한계령으로 오르고 싶어 하지만, 문제는 서북능선 곳곳이 너덜지대여서 밤중에는 부상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다. 나도, 내 친구도 모두 이 구간을 밤중에 통과하다 크고 작은 부상을 겪은 경험이 있다.
금요일 오후까지 비가 계속돼 바위들이 미끄러울 거라고 생각하니, 일단 안전하게 오색에서 올라가기로 했다. 서북능선은 다음으로 미룬다.

20180519_060110.jpg

20180519_055103.jpg

오색에서 정확히 3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대장이 일출이 5시10분 정도라고 했다. 두어해 전에는 오색에서 대청까지 2시간 10-15분만에 오를 수 있었다. 빠른 것은 아니지만, 뒤지는 수준은 아니다. 늘 쉬지않고 한번에 열심히 올라갔다. 일출을 보려고. 대청에 오르면, 해가 약간 떠오르는 상태였다.
오늘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금 체력이 그때와는 비교가 안된다. 대청에 올라가니 5시40분. 해는 완전히 떠올라 있었는데, 기대 이상의 정말 멋진 뷰가 펼쳐졌다.
오색과 점봉산 방향으로 운해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고, 멀리 동해바다와 속초시내가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공룡과 용아가 구름속에 잠겼다 나타났다 요술을 부리고 있었는데, 환상적이었다.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다.

20180519_064140.jpg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바람이 부니까, 매우 춥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 뒤라 처음에는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금새 추위를 느꼈다. 여름에서 갑자기 겨울로 간 듯하다.
대청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우와~ 멋지다”고 했다가, 잠시뒤, “으~, 추워”로 감탄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방팔방이 탁 트인 그 멋진 풍광을 눈에 더 담고 싶지만, 너무 추워서 얼른 중청대피소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길래, 다가가보니 얼음꽃을 찍고 있었다. 나는 뭔지 모르겠는데, 여성 등산객들이 “야아~ 진짜 보기 힘든 털진달래 얼음꽃”이라며 사진에 담기 바쁘다. 남들따라, 나도 그냥 찍어봤다.

20180519_060846.jpg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중청대피소이지만, 오늘은 밖에 아무도 없다. 너무 추워서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먹으려는 등산객들로 가득차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김밥과 커피를 마셨다.

공룡능선을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희운각으로 내려가는데, 너무 멋져 사진을 찍기 위해 자꾸만 멈추게 된다. 나도 갑자기 사진을 배우고 싶어졌다. 이런 멋진 장면을 그냥 핸드폰으로 찍기는 너무 아까웠다.
소청에서 희운각까지 가파른 내리막이다. 오래전 스키 타다가 다친 무릎이 갑자기 심하게 아파온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니 좀 낫다. 슬슬 걱정이 된다. 공룡능선은 무릎엔 엄청 무리가 간다. 매우 가파른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한다. 3년전에도 무릎이 아파서 무척 고생했다.

희운각에서 간식을 조금 더 먹고 공룡능선에 진입했다. 희운각-마등령 구간 4.5키로 공룡능선을 타기 전에 자신의 몸상태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공룡능선은 일단 시작하면, 탈출로가 없다. 양쪽이 절벽이다. 끝나는 지점인 마등령까지 무조건 가야 한다. 아니면 희운각으로 되돌아 오던지. 헬기가 착륙할 곳도 없기 때문에, 부상을 당하면 심각해진다.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능선이 어디냐 물으면, 압도적인 비율로 설악 공룡능선을 꼽는다. 공룡능선은 공룡의 등처럼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힘들지만, 쇠줄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체력만 된다면, 위험한 곳은 없다. (사진은 절벽을 오르고 있는 모습, 사람을 찾아보세요)

20180519_094642.jpg

공룡능선은 시작하자마자 유격코스다. 쇠줄을 붙잡고 올라간 뒤 가파른 오르막을 헐떡거리며 조금더 올라가니 신선대다. 우와~ 멋지다! 말이 필요없다. 가봐라. 얼마나 멋진지.
맞은편 용아장성의 기묘한 봉우리들과, 앞으로 진행할 공룡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은 운무까지 나타나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백이 노래한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그대로다.
20180519_064157.jpg

20180519_084139.jpg

20180519_101045.jpg

20180519_095422.jpg

20180519_094312.jpg

공룡능선은 4.5키로로 짧지만, 유격코스 대여섯 군데를 오르락내리락 해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다. 다리힘 뿐 아니라 팔힘도 필요한데도, 여성 등산객들도 많이 온다. 공룡능선에서는 대청, 중청, 소청과 서북능선의 봉우리들, 용아장성 그리고 천불동 계곡 넘어 화채능선, 그 너머 동해바다 까지 모두 한눈에 보면서 등산을 할 수 있어, 힘든 만큼 충분히 눈을 호강할 수 있다. 다만 무릎에 상당한 부담이 간다.
공룡능선이 끝나는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 설악산공원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갈 수도 있다. 나는 백담사로 방향을 잡는다.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로 악명높은 곳이다. 무릎이 아픈 나같은 등산객에게는 고통스런 코스이다.

20180519_125147.jpg

20분 정도 내려가니, 오세암이 나온다. 오세암은 다섯 살 된 꼬마가 성불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암자다. 이 전설로 <엄마를 만나는 곳 오세암>이라는 동화가 쓰여졌고, 이 동화를 토대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는데, 국제 애니메이션대회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엄마들은 눈물바다가 되고, 아저씨들도 먹먹해 진다. 꼬마들이 있다면 함께 볼 만한 애니메이션이다.

오세암에서 백담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백담사가 나온다. 며칠간 비가 온 뒤여서 수량이 무척 많다. 물은 말그대로 명경지수였다.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 더 이상 사진을 담지 못해 아쉽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오색-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삼거리-오세암-백담사 19.4키로 12시간 걸었다.

백담사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용대리로 내려와 황태정식과 막걸리로 요기를 했다. 오후 4시50분 산악회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텅 빈 느낌이다. 31명이 타고 왔는데, 12명이 시간안에 하산을 못했다. 산행대장이 이렇게 많이 펑크난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아마 오늘 풍광이 너무 좋아, 그 정취를 즐기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도끼자루는 썩었지만, 신선놀음이었다. 멋진 하루였다.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DCLICK: An Incentivized Ad platform by Proof of Click - 스팀 기반 애드센스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스티미언 여러분. 오늘 여러분께 스팀 블록체인 기반 광고 플랫폼 DCLICK을 소개...

logo

이 글은 스팀 기반 광고 플랫폼
dclick 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Sort:  

와 사진 정말 멋지네요... 역시 높은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게 제일 멋진거 같아용

네. 등산 자주 다니지만, 저렇게 멋진 날 사실 드물어요. 운이 좋았어요. ^^

minhan님도 날 좋을 때 높은 산 한번 가보세요.

경치가 끝내주네요^^

한번 가보세요~

축하드립니다. 멋진풍경을 가슴과 레즈에 담아오셨네요.
멋진풍경 사진을 추가로 올릴예정입니다. 두번다시 보기힘든 풍경입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와 운무가 진짜 끝내주네요, 매주 등산을 하시는군요,, 체력이,

운무를 보려면 새벽에 가셔야 돼요.

캬~~~체력없이 아무나 쓸수없는 사진과 글ㅋㅋ @gopaxkr 이런글에 보팅을 해야지?ㅋㅋㅋ
너무멋있네요 얼음꽃과 운무 사진으로나마 보니 좋네요
마무리는 막걸리죠ㅋ

그렇죠, 막걸리 없으면 산행인구가 절반으로 줄걸요 ^^

와우 신선체험하시고 오셨군요
산에나오는 기운이 사진으로도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

자전거도 타시고, 등산도 같이 하세요. 자전거만 타시면 내려가는 근육이 말라서 나중에 등산 내리막길이 힘들어질수도 있겠더라구요.

멋지네요~
15년전에 회사 입시동기와 1박2일로 해돋이 보러 설악산 다녀온 후 론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설악산 공룡능선
꼭 한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곤했는데요

사진보니 조만간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네요

잘보고 갑니다
홧팅입니다

나이 더 드시기 전에 얼른 다녀오세요. 공릉은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한살이라도 젊을 때...^^

강원도는 구름이 바위산에 걸려있을때가 진짜 장관인 것 같아요.
군대 훈련때 바위산 꼭대기에 텐트 치고 새벽에 구름이 발아래 깔려있고 일출을 볼 때 진짜 환상이였는데 그 추억이 떠오르네요

팬타스틱!! 정말 멋졌을거 같네요. 근데 군대 한번 더 가라고 하면...^^

완전 군장매고 저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끔직했어요.
강원도는 다시는 안감! ^^
완전 군장에 통신 장비는 목에 이고 갔는데 밧데리 합쳐서 통신장비만15kg 이상 되었나 거기다 완전 군장은 몇십키로에다가 무기는 소총라서 그나마 나았죠
경치는 좋은데 올라갈 때 끔직해서 다시 가라고 한다면 안감! ^^

ㅋㅋㅋ 저도 p77 메고 행군했어요 ㅋㅋㅋ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라서 삭제합니다.

이야, 그건 너무했다. p77메면 군장은 차에 실어줬는데...진짜 힘들었겠네요...ㅜㅜ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비경을 어디가서 볼까요?
설악산은 이제 차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젠 산도 저를 거부하네요.
그냥 바라만 보라고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코스가 다양하니까, 체력에 맞는 코스를 가시면 됩니다. 등산이 익숙하지 않으시면 백담사까지는 마을버스로 가셨다가, 백담사부터 영시암, 오세암 정도를 다녀오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거의 평지입니다. 그 암자 정도까지는 쉽게 가실 수 있어요. 다만 부처님오신날은 피해야 합니다. 사람이 산보다 더 많아집니다 ^^ 물론 사진과 같은 경치를 보시려면, 꼭대기까지 오르셔야 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22
JST 0.039
BTC 95635.37
ETH 3607.66
SBD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