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과 나의 언어

in #kr3 years ago (edited)

내 언어는 상스럽다

나는 글에서 최대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것은 내가 가진 저속성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 글에 대해 지인들이 반감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 또한 이것인데,

왜 '내가 알고 있는 너'가 아닌 상반된 모습을 글에서 보이려고 하느냐?

이런 의문이 있었기에 그들은 내가 '현실 속 나'를 숨기고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고 판단했다.

내 글쓰기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틀리지 않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부연 설명 없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직함'을 가지지 못했고(그 때나 지금이나 그런 종류의 단어가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 하지 않지만)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글이 필요했다. 면대면에서 장광설을 늘어 놓을만큼 눈치나 유머가 없는 사람이 아니고 심지어 사람들 웃기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녔기에, 웃기는 소재를 탐색하기 위하여 디씨 야갤 쯤은 기본으로 하고 있을 거라는 오해까지 사면서 나는 B급 유머를 즐겼다. 그런데 글에서는 고상한 척을 하고 있으니 그들의 지적이 어찌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술자리에서의 드립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의 전부일 수는 없으니 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적었다. 지인들이 봤던 나를 숨기고 그 것과 다른 이미지를 글에서 보였으니 그들의 주장은 일부 맞다.

사실 나는 정제된 것이 좋다

그렇지만 자주 보이는 모습이라고 하여, 또는 그들의 판단이 그렇다고 하여 내 취향을 반대로 고백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B급 유머를 즐기는 것 뿐,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즐기는 이유는 일찍이, 샤르트르가 <말>(les Mots, 1964)에서 고백한 것과 같고 데리다의 텍스트 이론과 궤를 같이 한다. 간단히 말해서,

텍스트의 주체는 필자가 아니라 오히려 독자일 수 있다.

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내면에 존재하는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친하지 않을수록 듣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 듣든 듣지 않든 서로 즐겁지 않다. 그래서 나는 꺼낼 텍스트를 선택하려는 고민에서부터 그 주체를 내가 아닌, 청자나 독자로 정한다. 그들이 좋아할만하고 나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선에서 발화의 소재와 주제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B급 유머나 독설의 왕'이 되었을 뿐, 내가 온전히 주체일 수 있는 텍스트에서 나는 정제된 언어를 원한다. 복잡하지만 하나 하나 나열해 가면서 설명하기를 즐기고 왕 오브 노잼, 선비 오브 씹선비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샤르트르의 <말>(les Mots, 1964)

샤르트르 말.PNG

샤르트르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다음 해에 죽었다. 그는 외가에서 성장하며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좋은 측면은 할아버지의 지식과 양서들로 인해 샤르트르의 교양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측면은 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글을 쓰거나 말을 했다는 점이다.

유년기의 샤르트르에게 말은 '자기 표현의 수단이기보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의 표출'이었다.

나는 이러한 그의 유년기와 나의 일생이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술자리에서의 발화'나 '정제된 언어로 쓰는 글' 모두가 진정한 자기 표현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고 둘 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을 때 말이나 글은 더 이상 내 것이기보다 타인들의 것처럼 느껴진다. 맥락도 의미도 의도도 고려하지 않고 내뱉는 샤워실에서의 콧노래 정도가 온전히 내 언어일까?

언어는 나에게 최선이자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언어가 관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면서 '추상조차도 그 기반은 언어'라는 생각도 한다. 결국 언어를 도구 삼아 사고를 진행하면서(모든 종류의 사고와 관념이 언어로'만' 구성된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 사고의 정확한 표현이 언어로 되지 않는 불가해의 상황에 내가 놓여 있다. 결국 표현의 모범답안이 없거나 모범답안을 보일 능력이 없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 요는 선택이다. 어떤 기준에 의해 단어들을 선택해 내 언어를 완성할 것인가? 그 기준이 '타인의 시선'이다.

독자나 청자의 인정과 찬사, 그들의 즐거움이나 유익을 위하여 내 언어가 선택된다.

나는 그 활동이 유의미하여 좋으면서 내가 남의 눈치만 보는 것 같아 싫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인지, 너를 사랑하던 나의 모습을 사랑한 것인지 모르겠는 것처럼 내가 나의 표현을 좋아하는 것인지, 나의 표현을 보고 나올 누군가의 찬사를 좋아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체로 거르지 않을 용기가 없고 그 체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다.

언제나 그럴듯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진정(眞情)의 글은 잘 나오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자 항상 이 점이 고민일 것이다. 개인의 경험과 지식과 사고의 폭은 한정되어 있고 상상의 글은 거짓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제약이 없어 마음 껏 뻗어 나가며 과장일 수는 있어도 거짓은 한 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글을 원한다. 내 안에서 나오는 언어가 그 자체로 독자에게 닿아서 서로 위화감 없이 즐긴다면 좋겠다.

오감도.PNG

이상(李箱)은 독자들의 비난으로 인해, 결국 오감도(烏瞰圖)의 연재를 중단하면서 "지들이 이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않고, 어려움만 탓을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난 그의 작품이 가진 난해함을 내가 받아서 표현할 정도의 작가는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겠지만 그 말에 담긴 뜻처럼, '독자의 인정과 찬사만을 기준으로 글을 적지 않는 사람이 되보기'를 한 번 꿈 꾼다. 내 글이 앞으로 발전하거나 혹은 어떤 의미에서 퇴보하더라도 추구하는 방향이 지금 같으면 좋겠다.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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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진심이 담긴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과학 분야는 식견이 많이 부족한데, 좋은 포스팅 보러 가겠습니다 ^^

정제된 글이든 아니든, 가든님의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가끔은 이 모든 분들의 찬사에 내 답글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 싶어 저어하지만, 여전히 저는 가든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계속 이런 좋은글을 써주세요^^

누님, 요즘 제가 생각이 많아져서 댓글 활동을 잘 못 하고 있지만..언제나 누님과 솔직하게 교류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소재로 글을 쓰든 누님은 편하게 댓글 남겨 주세용! 안 남기시는 것도 누님의 자유 입니당ㅋㅋㅋ (남사친분의 결혼식 날 한국 오시는 겁니까..? ^^)

꾸며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작가와 화자는 어느정도 다를 수 밖에 없죠. 말을 그대로 기록하는게 글이 아니니까요. 반대로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고 그게 말인 것도 아니죠.

요즘 제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글을 쓰는 이는 언제나 소재를 찾아야 함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킴리님처럼 사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날을 바라봅니다. 부단히 읽고 생각해야 함을 알면서도 읽음이 부족한 것 같아 늘 저의 시간 활용 습관을 탓하게 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에 대하여..감사하는 마음이 아주 깊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제가 마음에 담았던 고래는 당연히 킴리님이십니다. 고래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저를 성장시켜 주신 분은 보팅이 되었든 심리적 지지가 되었든 무슨 의미로도 킴리님이시니 말입니다. 이런 고백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을 알고 있으나, 킴리님의 포스팅에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것보다는 제 것에 남기는 것이 나을 듯 하여, 오랜만에 적습니다! 날이 더워지는데 건강 관리 잘하시면 좋겠습니당..! ^^

좋은글 감사합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일요일되십시오

팔로우 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교류하면 좋겠습니다! ^^

포스팅을 읽다가 보면, 처음과는 상반된 생각이 교차 합니다. 전반부를 읽으면서 상소리나 욕설은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다가, 중반부에서는 중의적 표현이 상상력을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반으로 향할수록 무엇이든 이기적으로 해석하려는 해맑은 영혼들이 떠오릅니다. 상쾌한 휴일을 이루시고요. 저는 어느 시골장에 가서 곰취라도 한다발 사오려고 합니다. ... .^^.

여전히, 자연을 벗삼고 계시는 좋은 사진들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자주 이야기했듯이, 오래오래 뵙고 싶습니다. 한결같이 계셔 주셔서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댓글을 남겨 주시면 늘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주시고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곰취 나물이 먹고 싶습니다! ㅋㅋ ^^)

독자의 인정과 찬사만을 기준으로 글을 적지 않는 사람이 되보기'를 한 번 꿈 꾼다

와! 반하겠네요. 이 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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