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계춘할망 - 빚은 빛이 되어 돌아왔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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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전체관람가'감독들의 영화 엿보기 6탄.(창 감독)

나는 할머니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날짜를 새면 채 일 년이 되지 않을 시간일 것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군에 가기전 마지막으로 손주를 배웅하던 그 모습. 시골마을 어귀에서 양쪽으로 논을 낀 긴 길을 걸어가는 손주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고 계셨겠지. 그리고 첫 정기휴가에서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계셨다. 열흘의 시간 동안 고작 몇 시간을 함께하고 복귀했다. 한 달 뒤 불길했던 행정반의 호출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나에게도 있었다. 영원한 내편.

홍계춘은 해녀이다.

음력3월을 달리 이르는 말. 계춘할망은 제주사는 해녀이다. 조카부부와 부모가 사라진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손녀가 원하는 것이면 바다에서 건진 그 무엇도 바꿔줄 수 있는 손녀밖에 모르는 할망.

그런 손녀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린 기분. 바다속에 비추던 빛이 이제는 더 이상 비추지 않는 것 같다.
그로부터 12년 후. 할망은 아직도 손녀를 찾고 있다. 어느새 많이 늙어버린 할망은 물질도 밭일도 쉽지 않다. 혹시나 돌아올 손녀를 생각해 집도 팔지 않는다.

근해에서 쉽게 손에 잡히던 전복과 미역과는 다르게 손녀는 먼 바다로 밀려버린 듯 쉽게 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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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의 끝에서 처음으로

할머니의 손을 놓친 혜지는 그 동안 길거리를 전전했다. 휘말리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자연스럽게도 혜지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갈 곳을 잃어 버린 혜지가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인 듯 보인다. 그렇게 쉽게 찾아갈 것이라면 더 일찍 찾아갔어야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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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손녀 혜지가 돌아왔다. 12년만의 공백은 혜지에게는 어색함으로 다가왔지만 할망에게는 그 공백을 채우고 있던 빚을 갚는 듯이 그 이전보다 손녀에게 각별하다. 기억의 공백의 끝에서 처음으로 다시 찾아가는 혜지의 손길에는 장어와 맞바꾼 크래파스가 있고 추억들이 담긴 그림들이 아직도 벽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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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혜지의 행동이 수상하다. 돌아온 혜지에게 12년동안 무얼하고 다녔는지 할망은 묻지 않는다.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도 할망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건망증 탓으로 돌려 버린다. 의심으 모든 시선은 혜지에게로 향하지만 할망은 그런 혜지를 다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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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지야 바다가 넓으냐 하늘이 넓으냐"
"당연히 하늘이 넓죠"
"인자, 니가 다 큰 모냥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편 하나만 있으면 사라지는게 인생이라. 나가 느편해줄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할망이 모든 것 다 해줄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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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다시 학교로 돌아온 혜지. 치기어린 반항에도 선생은 혜지의 숨어있던 그림 실력을 이끌어 낸다. 그런 제자에게 선생은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라 말해준다. 자신의 인생에서 빛을 찾을 수 없던 그녀는 그림안에서 자신의 빛을 찾고 있다. 그런 선생에게 제자는 묻는다. 선생님 그림으로도 고백할 수 있어요?

그러던 중 제자의 그림이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은 서울에서 열리는 그림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한다.

대회에 참가한 혜지는 다 그려진 그림과 함께 쪽지를 두고 사라진다. 그녀는 누구에게 무엇을 고백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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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은 그 동안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한 순간에 의문으로 변하고 다시, 답이 되어 돌아온다.

"삼촌 하늘이 넓어요. 바다가 넓어요?"
"에이, 당연히 하늘이 넓지 않어?"
"에이, 바다가 더 넓죠. 바다가 하늘을 품고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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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혜지는 또 다른 사건에 휘말려 떠나게 되고 그런 혜지를 할망은 다시 찾고 있다. 혜지는 할망에게 어떠한 빚을 지었기에 떠났으며 다시 할망에게 돌아왔을까. 혜지는 바다속에서 할망과 함께 바다가 품은 하늘의 빛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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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과 물감

각각의 물건은 할망과 혜지 서로에게 빚이 빛으로 바뀌게 끔 했다.

빛과 같던 혜지가 사라지던 그날부터 할망의 피부는 빛으로 많이 상해 있다. 그런 할망에게 손녀는 선크림으로 자신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한다.

빛이 없던 혜지의 인생에 할망은 손녀에게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손녀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통해 할망에게 진 빚을 빛으로 다시 돌려준다.


전체관람가 감독들의 영화 여섯번째 중 가장 좋았다. 단순히 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고른 영화가 큰 울림을 전해준다. 자칫 뻔하게 흘러갈 전개를 배우들이 잘 이끌어 나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전 감독들의 필모그래피가 적어 영화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왓챠플레이에 이 영화가 없어 넷플릭스를 가입했다. 비교가 많이 될 듯 하다.

숲 속의 아이

주제는 혼밥.

계춘할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심신이 미약한 분들은 삼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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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드디어 기다리던 불금이죠 ^^
오늘 하루도 수고많으셨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네 항상 고맙습니다.
날이 춥네요. 마음 따뜻한 주말 되시기를.

마음을 울리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 시험 끝나고 봐야겠어요.

후회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춘할망.. 은은한 울림을 주는 영화인 것 같네요!

전에도 느꼈지만 글솜씨가 참 좋으시네요~~~

제가 좀 난독증이라 글 이해를 단박에 못 하는데 짜임새가 좋아서 이해가 아주 잘 됐습니다^^

숲속의 아이 주제는 혼밥?
약간 공포 스릴러 분위기인가요?
저는 심신이 미약하지만 항상 혼밥인데 ㅋㅋ

안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ㅎㅎㅎ계춘할망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지 단편에서는 실망이...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전체관람가 프로(메이킹 영상)을 안보고 봐서 그런 듯 합니다. 다른 단편 한번 찾아보세요!

앞으로 단편 소개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정말 어쩜 글이 이리 짜임새가 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지요..(⁎⁍̴̛ᴗ⁍̴̛⁎)
근데 별담수첩이라는 뜻은 무슨 뜻인가요?
첨엔 별밤으로 잘못 본... (별이 빛나는 밤에)

글쎄요 잊어버린듯 합니다. 별이야기 아닌 그런 의미였던거 같아요.
영화보면서 수첩에 느낀 점을 적어서 보느라고 별담수첩이 된 것 같습니다.ㅎㅎㅎ
스팀잇을 시작하면서 수첩을 옆에 끼고 보게 되었네요.

별담수첩이라는 이름이 너무 예쁩니다(⁎⁍̴̛ᴗ⁍̴̛⁎)

어쩜이리 내용정리를 잘하시는지..
영화 관계자인줄 알았네유

eternalight님 내용 정리 진짜 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영화 관계자라고 해도 믿겠어요~~~

고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계춘할망 나름 잼있게 봤네요.
숲속의 아이는 방송에서 잠깐 봤는데 구미호...영상만 봤는데 내용 궁금하더라구요^^

저는 방송을 못보고 봐서 그런지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구요^^
계춘할망 배우들의 연기가 빠짐없이 좋더라구요.

저도 병원에 갔다가 짧막하게 그 여배우가 이상한 의식 같은거 하는...
요즘 티비는 지막처럼 짤들이 들어가 대충 이해만했어요.
단편독립영화라더니..음..짧은시간 다 담기 어려웠나봅니다

아 검진받으셨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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