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두서없이 미뤄두었던 생각을 적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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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원숭이 엉덩이를 다르게 보았다면 저 노래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애초에 결말은 없을지도 모르며 달리 보아도 끝은 없을 것이다. 같은 것을 두고도 다르게 보는 것, 그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가 아닐까. 원숭이 기관장이 끄는 열차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빨갛게 볼 것인가, 탐스럽게 볼 것인가, 하트로 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끊은 티켓과 일치하지 않아 탑승하지 않을 것인가. 평소 즐겨 찾던 열차에 요즘에는 객차들이 얼마 없는 것 같다. 기관차가 객차들을 움직일 힘은 그대로인데 뒤로 붙은 객차는 얼마 없으니 속도는 한없이 올라가 길을 벗어날지도 모를 불안함이 보인다. 나는 그 열차에 많이 올라탔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또한 내 열차에도 많이 탔다. 기다려도 내가 서있는 이 역에 다시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지럽다. 하지만 다시 오리라 믿는다. 끝없이 기다림이 이어지는 플랫폼에서 나는 나만의 열차를 다시 이끌어야겠다. 그것이 이곳이 돌아가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기관장이 될 수도 있으며, 승객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끄는 열차의 엉덩이는 어떻게 보일까. 여러분들이 끊은 티켓과 일치하나요? 아니면 어떻습니까. 다음 여행에서 만나면 되지요.

이황과 기대승

유튜브를 통해 학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강사의 강의 내용 한 토막을 보았다. 물론 예전에 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떠올린 때가 있었다. 이황과 기대승에 얽힌 일화와 함께 한 소설가의 일화를 덧붙이고 나서 끝에는 이러한 말로 끝을 맺는다. '학문은 지위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로 하는 것도 아니란다.'

두 가지 일화는 이렇다.
선조에게 사부뻘 되는 이황에게 기대승이라는 촌구석의 새파랗게 젊은 선비가 이황에게 그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위치와 명성에 걸맞게 무시하면 그만인 것을 이황은 기대승에게 자신의 입장과 더불어 그의 비판에 다시 비판을 덧붙여 회신을 보낸다, 아주 정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그리고 그 논쟁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황의 위치와 명성에 어느 것이 더 걸맞은 것일까. 사소하고 하찮게 여겨 무시하는 것이 답이었을까, 아니면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논쟁을 주고 받는 것이었을까. 이황도 대단하지만 기대승도 대단하다.
또 다른 일화는 이렇다. 자신의 학교 선배되는 인기작가의 이야기다. 자신이 대학에 가기전 그의 책을 밤을 세워가며 감탄하며 읽었다고 한다. 글 하나는 정말 잘 쓴다, 하지만 점점 자신을 실망시킨다고 말한다. 그 인기작가에게도 젊은 평론가가 그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작가의 반응은 이황과 달랐다. 너 같은 새파란 것이 나를 비판해서 뜨려고 하는 것이냐, 너 같은 것과 논쟁하지 않는다.

무시 없는 명성, 예의를 갖춘 호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소유할 것인가, 사용할 것인가.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이름을 들어봄직 한 건축가가 있다. 한국 건축사에서 세대로 구분한다면 그는 2세대쯤 될 것이다. 그만큼 그는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깊다. 어느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그에게 묻는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서울의 동네는 어디인가 하고.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온다. 지금은 사라지고, 사라지고 있는 달동네라고. 모여사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반대로 부촌들을 예를 들며 그들은 모여사는 것이 아니라 붙어살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건축에 대해서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것이라 말한다. 내 돈으로 지었는데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건축주에게는 사용권만 있을 뿐이지 소유권은 사회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보는 이들에게는 건축을 단지 부동산의 가치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향유하고 공유되어야 하는 문화로 봐야 한다 말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기차놀이를 해야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어뷰징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기관장이 끄는 객차에 몸을 실어 그 의견에 동조할 것인지도 아니다. 내가 끊은 티켓의 기차를 끄는 기관장은 나에게 어떠한 여행을 선사해줄 것인지, 어떠한 감상을 남길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승객의 자격만 갖춘 것은 아니니 같은 의미로 어떠한 테마를 가진 열차를 운행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아직은 우리가 여행할 수 있는, 놓여진 철길이 많지 않다. 어떠한 노선으로 철길을 놓을지 생각을 터놓고 토론해야 하는데 어떠한 연장으로 길을 낼 것인지 싸우는 것과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기관장과 승객의 자격을 갖추었으니 우리앞에 놓여질 철길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풍부한 감상을 느낄 수 있는, 느끼게 해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

눈살이 찌뿌려지는 비판도 있으며, 어줍짢은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껍질을 까보면 알멩이가 있는 비판도 있다. 껍질도 까보지 않은 채 버리기만 한다면 두리안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쪽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은 열어둔다면 올바른 소통이 될까.

눈을 감고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건축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것을 보지않고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돈을 투자해 짓겠다는데 어떻게 짓든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앞서 말한 건축가의 말처럼 폭력적이다. 그 앞을 지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하는 것도 폭력적이다. 앞에 놓인 그 길은 과연 건축주의 것인가?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공공의 영역인 것이다. 공공의 질서 없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건축물들의 집합은 도시를 어지럽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기관장이 될 수 있고 승객이 될 수도 있듯이, 건축주가 될 수도 있고 그 건물을 이용 할 사용자가 될 수도 있다. 스팀파워의 양에 비례해 건축물의 크기가 또 그 앞에 놓인 도로가 커지고 넓혀진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좁은 골목보다 넓은 대로에 지어진 건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건물의 크고 작고에 비례해 가치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좁은 골목에 문을 연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상점은 그 골목의 가치를 동반 상승시키기도 하며, 넓은 대로변에 무의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는 거대한 건물은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해 오히려 그 길을 걷지 않게 하는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대로에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 도시는 황폐해질 것이다.

우리의 앞날에는 어떠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철길이 놓여지지 않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눈앞에 보이지 않은 그곳을 바라보지는 못하고 눈앞에 놓인 연장만 가지고 싸우기만 할 것인가.

앞서 말한 건축가의 스승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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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끔씩 이렇게 심금을 울리시는거지요? 자주 오시면 더욱 좋을텐데 말이죠!!! 글 잘 읽었어요. 두서없지 않고요,,, 기차놀이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 ㅎㅎㅎㅎ

에빵님이 에너지를 빵빵하게 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은 매일 쓰지 않아도 매일 접속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정성어린 글 잘읽고 갑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기차 호그와츠 갑니까.

김작가님 눈에는 비밀의 문이 보이나요? 같이 가요 그 기차 서는 플렛폼으로!

정말 멋진 글 감사합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매번 좋은 여행을 선사해주셔서 또 고맙습니다.

아 너무 좋은 글이며 공감을 표해요-
큰 건물 앞길과 큰길에서는
풍경의 변화를 적게느끼며 무의식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는것 같네요 -
글쎄요 기억에 남는것도 별로 없고 ㅎㅎ
비유 너무 좋습니다

민트빌라님의 공감해주시니 무엇보다 기쁘네요!
덕분에 커피 맛있게 마시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기차역 플랫폼과 건축에 대한 비유를 알아주시니 오랜만에 글을 쓴 보람이 느껴집니다.

댓글이 본문의 메시지를 해칠까 싶어 감상만 남기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떻게 읽혀질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빨간 게 사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ㅎ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축에 관한 시선에 동감합니다. 도로에는 결국 걸어가는/지나가는 사람과 사물이 있어서, 도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종종 파편화된 구역/지역을 느낍니다. 그리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종종 분화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도시의 외연을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외연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쓴 것보다 더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네요. 필지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같은 경우는 필지가 도로에 접하는 면이 좁아 다양한 표정들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건축을 스팀잇에 빗대어 표현해보았는데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생각엔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사실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길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건축들 -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겠지요. 길의 본질, 길이 나누는 공간의 본질을 생각하는 밤입니다. :)

멋진글에 감명받고 갑니다.
건축가 이야기, 기차이야기, 다 멋진 말들이네요.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라나님의 좋은 그림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요근래 어긋나는 기찻길이 참 많아지는 것 같아요. 슬슬 서로가 서로를 뮤트하고 그걸 확인하는 모습도 보이게되고...안타깝습니다. 스팀잇은 기존 SNS와 많이 다르길 빌었는데..ㅜㅜ 뭐 그래도 어쩔수 없지요 그것이 성장의 과정이니까요.

기존의 SNS와 달라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들어와서 두번의 전쟁같은 상황을 보았는데 과연 성장했는지 의문이 드네요. ㅠㅠ

공감합니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와 닿네요..

공감하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로모로 좋은 글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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