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슬기로운 의사생활. 팔행시로 풀어보는 단상.

in #kr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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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왼쪽 끄트머리에 쓰여진 최종화라는 단어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대로 끝내려고? 윤복이가 전미도 교수를 보고 울 때는 나도 같이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팔에 붙은 면티를 양쪽으로 댕겨 눈물을 닦다보니 계속 젖어들고, 덜 젖은 겨드랑이쪽으로 다가갔다. ㅋㅋ ㅠㅠ정말 서럽게 울었다. 결국에는 배때기에 붙은 면도 다 젖어버렸다.

기로웠을까. 응급실을 살면서 딱 두번 가보았다. 그것도 엄마랑. 처음에는 엄마가 꽈리꼬추를 다듬다가 머리속에 꽈리가 터져 응급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엄마가 손가락을 닮은 당귀를 짱아찌 담구다 유리에 손등을 베었다. 꽈리꼬추때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당귀때는 내 얼굴이 정말 일그러졌다. 예전에나 요 며칠전에나 결국 그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는데, 그때부터 달리 보였다. 예전에는 너무 태연하게 내일을 준비하라던 응급의학과 교수를 보고 차마 주먹이 나가지 못해 응급실 자동문을 주먹으로 때리고 밖을 나섰는데, 이번에는 응급의학과 교수를 못 봤음에도 태연했다. 꽈리가 터지고, 당귀가 찢어지고의 경중을 떠나서. 그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아니까.

억속에 좋은 것만 추억에 남았나보다. 어릴 때 엄마 병간호하며 두달, 한달을 나눠서 총 세달을 병원에서 보냈었는데, 이번에 며칠 간호를 하다 퇴원하고 동생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뜨문뜨문 그때의 기억을 못 하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일례로 10시간이 넘는 첫번째 수술이 끝나고 중환실에서 엄마는 나와 큰오빠만 알아봤는데, 눈, 안구가 쭈글쭈글했던 건 내 기억에 없었다. 병원에 제일 오래 있다 여겼는데, 내 머리속에 없는 그런 기억이 몇 있었다. 이런 게 트라우마구나. 좋은 것만 기억에 남는 게 다행이라 여겼다.

비에서 일주일만에 퇴근하시던 전공의 선생님의 둥지가 몇개는 있던 뒷통수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병원 안에서만 돈다는 인턴, 병원에서 산다는 레지던트. 그런 건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NS DRAGON, 머리카락이 항상 뒤숭숭하던 용석민 선생이 그래서 마음이 갔나보다. 전공의가 깔끔할 수가 없지. 머리 위에 둥지 하나는 있어야지. 예전에 엄마를 수술했던 교수님은 수술 후에도외래에도 몇 번 봐서 성함을 기억하지만, 전공의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회진때나 보는 교수님보다 전공의 선생님의 챙김이 더 고마웠었다. 겨울이가 보호자를 대하던 태도가 바뀐 것이,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더 보기 좋았다. 99즈보다 더 학번이 높았을 그 때 그 뒷통수의 레지던트, 전공의 선생님은 찾아보니 부산의 어떤 대학병원의 교수님이 되셨더라. 진 교수님 고맙습니다.

은 내가 들고 있나. 예전에 엄마가 쓰려졌을 때 내가 옆에 없었으면 모두 살지 못했을 거라 했다. 엄마는 손등이 찢어졌을 때도 소리도 지르지 않고 싱크대 개수대 앞에서 피가 철철나는 손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옆에 없었다면 지혈도 안 되는 손등에 휴지 뭉텅이를 덧대고 다음날 동네 병원을 찾겠다 했을 것이다. 힘줄이 끊어졌는데 말이다. 돈 부터 생각했겠지. 그럴 때는 너무 화가 난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아끼다 돈이 나중에는 더 들지도 모른다. 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데도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겠지.

학드라마중에 이렇게 이렇게 생활에 가까웠던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다. 최근에 본 <낭만닥터 김사부>는 정말 잘 만든 드라마를 본 것 같았다면, <슬의>는 말 그대로 생활을 보는 듯 했다. NS의 장면이 떠 오르는데, 전미도의 친구가 6인실에 입원했을 때 그 감정은 있을 법 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정말 많이 울었었다. 6인실의 엄마를 제외 한 다섯분은 모두 할머니들이셨다. 드라마의 할머니들의 눈길보다 보호자들의 걱정스럽고, 참 다행이야라는 눈길이 엄마에게 쏠렸다. 물론 그 때의 분위기는 드라마와 같고도 다르다. 그렇지만 충분히 공감이 됐다. 그곳에 온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영안실이 아닌 병실로 온 사람들이었다. 중환자 대기실에서 흰색 가운이 배드에 펼쳐져 나가는 장면들을 몇 보고나면, 환자들은 모르겠지만 보호자들은 알 게 모르게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었다. 그것은 기억한다.

사로운 감정에 지난 번 엄마가 입원했을 때, 예전에 엄마가 있던 NS 병동을 찾았다. 추억에 휩싸여 찾았다가, 단번에 발길을 돌렸다. 그 병동의 특유의 냄새와 잊고 지냈던 그 풍경들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이었다. 침대 하나마다의 집밥 냄새가 뒤섞여 풍겨왔다. 그때는 나도 그 중에 하나라 몰랐는데, 약품의 냄세와 뒤섞여 고약하게 느껴졌다. 눈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까까머리에 침대에는 환자에게 온갖 호수가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비상계단에서 링겔이 꽃혀있던 휠체어에 앉아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장소까지도 가보지 못 하고 익숙치 않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만 보다가 돌아섰다. 그때 엄마는 6인실에서 제일 나중에 들어가 제일 먼저 퇴원했다. 누구 할머니의 딸, 며느리 아줌마들이랑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친해졌는데, 익숙함이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었다.

활을 하는데 있어서 엄마의 역할이 크다는 걸 느꼈다. 밥은 그냥 차려지는 게 아니고, 옷은 그냥 입는 게 아니었고, 사는 게 그냥 사는 게 아니었다. 의식주의 전반에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구나 느꼈다. 돈만 벌어주면 장땡이지 집구석에서 하는 것도 없이라고 여기는 남편들, 결국 그걸 모르눈 그 사람들은 남편에서 한 칸 띄고 남의 편이지만, 좀 제대로 알았으면 싶었다. 지난 몇 주간 엄마 대신의 역할을 하는 동안 저녁마다 밖에서 남의 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시며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시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오랜만에 고마웠다. 나름의 배려였나. 모를 일이다.

동적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활동적이지 못하다. 칼질은 조금 는 것 같다. 찌개 정도는 혼자서도 잘 끓이는 수준이 됐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확찐자가 돼버렸다.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생활, 야구도 또다시 멈춰버렸다. 활동적인 건 지금 내 곁에 맴도는 모기뿐이다, 내방에서는. 세마리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각개전투로 덤벼든다. 열심히도 산다 쉐키들.

겨울이가 정원이 대신 신부가 되고 끝이났다. 우리 드라곤 선생님의 고백은 어찌될까. 선빈이와 한 병원에서 계속 지낼 수 있을까? 전공의 마치고 FA라면, 기아의 그 우리 선빈이처럼 율제병원에 계속 붙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다가, 그럼 안치홍 선생은? 우리 찌롱이가 롯데로 가버린 것 처럼 다른 병원에 가버리는 걸까? 싶었다. 이뤄질 것 같이 안 이어지는 사랑의 짝대기를 볼 때마다 울컥했다. 아니, 눈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고인 적이 많았다. 별꼴이다. 참, 안치홍 선생은 응급실을 부른 izi의 드러머 출신이다. 소소한 tmi는 작품에 더 애정을 붙인다.

12화는 너무 짧잖아싶었는데, 일주일에 하루 길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었구나.
이 멤버 리멤버 포에버하고 싶은데, 안정원 선생이 갑자기 강동주로 변해 돌담 병원으로 돌아가버릴까 걱정이 된다.
우리 김사부님은 2012년에 돌아오면 안 될까?

아니, 2021년 상반기에 김사부님은 박민국 교수랑 다시 컴백하고, 99즈는 하반기에 복귀하는 걸로!














겨울이 화이팅, 우효도 화이팅.
사노라면 우효가 불렀대요.
나만 알고 싶은 가수였는데.

자즈앗!


오늘의 자장가로 pick

아니 털보 총수 만나러 가즈아ㅏㅏㅏ

왜 다들 총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 시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언론인인데.
당신은 언론지의 총수자격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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