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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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전체관람가'감독들의 영화 엿보기 7탄.(감독 오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포스팅이지만 오늘만큼은 키보드 위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왔지만 뜨거울 것 같았던 가슴이 잔잔하다. 억지로라도 울리지 않는 이 영화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직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한 것일까, 품지 못할 내용이였을까. 알리려고 했을까, 울리려고 했을까.

십분의 일

가까운 골목에서 한집, 한 교실에서 세 친구, 같이 붙어자던 분대(군대에서 가장 작은 단위)에서 한명.
어제 눈길을 마주하며 웃고 울며 내일도 함께 할 것 같던 이가 오늘 옆에서 한 순간 사라진다면 그것이 나의 일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지난 1세기를 가장 다이내믹하게 지낸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다. 공과 과가 있고 명과 암이 있는 너무도 진해 섞일 수 없는 보색같은 동그라미의 가장 먼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는 너무도 평화로운 제주를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시선의 옆에는 공포를 가득 실은 낯선 이들을 실은 프로펠라소리가 가득하다.

1948년 사월 제주에는 눈길을 마주하던 제주도민 열 명 중의 한명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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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

이 영화에는 색이 없다. 명과 암만이 가득한 흑백영화이다. 색을 볼 수 없음에도 나는 방금 전 보색을 떠올렸고 생각해보니 그 동그라미에서 가장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색이 머리속에서 칠해졌다.

빨갱이와 군인들.

빛으로 섞이면 백색이되고 물감으로 섞이면 흑색이 되는 관계.
영화의 배경은 흰눈이 가득하다.
서로를 응시하다 눈으로 시선을 옮기면 자신의 색이 보일 것이다. 보색의 정의대로라면.

그러나 한쪽에는 색이 칠해져 있지 않다. 특정한 색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그저 자신들의 터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한쪽에는 색이 칠해져 있다. 스스로 옷을 입었던 부름을 받고 옷을 입었던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같은 색의 옷을 입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모여있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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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굴

1948년 11월 미군과 신생 한국정부군은 제주도에 대해 계엄령 선포와 함께, '섬 해안선 5km 밖인 중산간지역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른바 '초토화 작전'의 시작이었다.

화산섬인 제주에는 이러한 굴이 많을거라 짐작한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자연은 아닐진대 주위의 위험을 피해 태초이래 사람들은 굴에 들어갔다. 왜놈들이 설쳐대던 반도, 그 끝 제주에 이제는 양놈들과 한배를 탄 이들이 바다를 건넜다. 그들은 또 다른 양놈들과 손을 잡은 이들을 색출하러 왔다. 색의 번짐을 두려워 하던 그들은 걸러내기 보다 잘라내기를 택한다. 색은 그들이 칠했고 번짐에는 방도가 없다고 여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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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때?"
"뭐가 말입니까?"
"여기 있는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 죽일 수 있어? 여기 있으면 죄 없는 사람들 다 죽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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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들을 잡지 못해 발가벗겨져 엄동설한에 벌을 받던 이등병은 폭도를 마주하고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의 눈에는 눈앞의 여자에게서 자신을 벌을 주던 상관에게 보이는 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거주하던 막사에 총부리를 고스란히 마주하던 폭도로 규정되어진 순덕으로 인해 소란이 일고 그 소란을 일으킨 군인 한명이 굴로 흘러들지만 주민들은 감자를 챙겨주며 그를 보살핀다. 겉옷의 색은 뚜렷하지만 초록은 초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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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묻힌 사람도 살아남은 사람도 침묵해야 했다.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의 사월에는 한 집에 한 집 걸러 향이 피어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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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감자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말한다. 사회적인 이슈로 뜨거웠어야 할 감자는 차갑게 식어있다.
제목의 끝에 왜 숫자 2가 붙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후속편인가 해서 찾아보았지만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잊고 지냈던 무고한 희생은 제주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침묵해야 했다. 앞으로도 침묵해야 할 것인가.

오십년전 식어버린 감자를 이제는 다시 뜨거운감자로 되돌려 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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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는 지금도 식어간다. 지난 사월 제주를 향하던 세월은 잠겨갔고 그렇게 세월은 또다시 흘러간다.

수백의 꿈들이 바다속에 빠져버렸다. 허망하게 보내버린 그 꿈들과의 이별도 남겨진 이들에게 쉽지가 않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그 극과극에도 존재하지 않는 침묵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세월타령이냐 이제는 지겹다는 소리도 들린다.

너무도 많은 꿈들이 사라져 갔다.

잊지 말자, 사월의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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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울게 되는 영화 보다는 뭐랄까 저릿하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슬이라는 영화가 그런 영화이셨으려나요? 제목은 많이 들어보고 추천영화에도 여러번 봤는데 아직 보기전이네요. 글에서 어렴풋한 느낌을 받고 보니 한번 보고 싶어지는 군요.

네 저릿한 느낌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엔딩크래딧을 멍하니 바라봤네요.

그가 보고십다.

단편영화를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내용이 궁금합니다.
얼마전 강철비를 봐서인지 소개된 영화들 다 궁금하네요.

그리고 카일의 진급이벤트 당첨되셔서 보팅드리고 갑니다~^^

지슬은 장편영화이고 파미르는 전체관람가 프로에서 만든 단편이에요. 이벤트 보팅 고맙습니다!^^

흐...이런 아름다운 포스팅을 보고도 풀보팅에 전혀 올라가지 않는 제 힘..아직 신생아입니다. 일주일쯤 됬네요. 좋은 벗이 될것 같네요.
저는 마을어귀에서 이야기찻집을 합니다.
오시라고 하기 그런게...메뉴라곤 운남커피뿐입니다.
가끔 숭늉도 드리고요.

네 반갑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소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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