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나는 다시금 사랑에 빠졌다.

in #kr6 years ago (edited)

느. 낌. 의. 공. 동. 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젖는 일이다!



이렇게 느닷없이 훅 들어올 때엔 대개 당황하곤 하는데 이번엔 대범하다. 알코올의 힘인가. 맥주를 마시면서 펼쳐든 그의 책에 완전히 빠져버려 밤을 꼴딱 셀 기세다. 언제나 느끼지만 혼자 마시는 술은 이래서 좋다. 꼴리는 대로 뭐든 할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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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그는 누구인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그의 책에 소개한 프로필과 네이버 인명록과 몇몇의 신문 인터뷰 기사가 다일뿐. 처음 그를 알게 된건 신문 기사를 통해서였다. 급하게 한국에서 공수한 그의 책은 사랑에 빠지기 충분할 정도로 위험했다. 세상에서 가장 졸릴 것 같은 그의 문학동네 팟캐스트도 들으며 예의 그 느려터진 저음의 목소리에 깜빡깜빡 정신줄을 놓게 되던 날도 있었다. 피디가 재미없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서 멋적게 웃던 그의 웃음소리가 참 정겨웠다.

그리고,
얼마뒤에 그를 잊었었다. 그랬었다. 나에겐 그저 한여름밤의 꿈같은 존재였다. 사랑의 큐피드 화살이 엉뚱한 시기에 엉뚱한 사람에게 쏘아진 듯 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달라 지려는지...

그러나,
이번엔 좀더 강렬한 듯하다. 아주아주 솔직한 기분으로 이 책을 다 씹어 삼켜 내것인 양 삼고 싶다. 이전에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도 알코올 때문이겠지. 날이 밝자마자 다시 그의 책을 짚어보자 다짐해본다.

그런데,
내려 놓을수가 없다. 그냥 그와 이밤을 불태우기로 한다. 그의 글은 비수가 되어 나의 몸에 여기저기 생채기를 낸다. 아마 부쩍 피로해진 내 몸이 더 아픔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겠지, 그의 글에 칼날을 달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 달라진건,
그가 아닐 수도 있다. 오베론의 장난과도 같은, 모두가 헬레나에게 빠져 있는 동안 나는 헤르메스에게 연민을 나눠주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 내가 헬레나의 사랑놀음에 빠지게 된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프다.

비애와 더불어 사는 삶이 어쩌면 이런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바꿔 적는다. 삶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중)

문득 떠오른 그때 그 시절.

장정일과 기형도의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절, 브레히트의 시를 읊고 다니던 그 시절이 눈물나게 그립다. 뭣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묻는다. 시란 무엇입니까. 시인 왈, 시는 메타포다. 시 조갈증에 걸린 우편배달부에게 이 시를 처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시는 고급 메타포의 일대 향연이다. 무릇 메타포는 수혈이다.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 혁명, 시 등과 같은 혼수상태의 단어들이 젊은 피를 받아 막 살아난다. 뛰어난 메타포는 감각의 문으로 들어가 사유의 문으로 나온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중)

아! 오늘 밤, 나의 시계는 20세기 어느 날에 맞추어져 있다.

날 좋은 날, 시가 그리운 날, 시집 대신 선택하곤 했던 이 책이 이렇게 어두운 날, 짜릿함을 선사해줄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래서 책은 여러 번 읽어야 하나보다. 그래서 몇몇 책은 꼭 소장하기를 바래본다. 가끔씩 이렇게 나의 혈관을 긁는 울부짖음들이 심장을 깨우고 날선 감각을 돋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글이 정말 써지지 않는 날, 눈물 같은 날, 슬픔 같은 날, 병신 같은 날엔 이 책을 꺼내어 그의 느릿하고 깊은 음성에 기대어 한 글자씩 또, 읽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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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글에 대해 써주셨네요.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ㅎ

느낌의 공동체 좋은 책인거같네요.

어제 맥주 한 잔 하시면서 읽으신 건가요?
저의 시간이 십 수년 전에 멈춰있었던 것처럼
에빵님의 시간도 20세기에 맞춰졌었던가봐요^^

그냥 행복한 시절 어느쯤엔가 멈춰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아요 ㅎㅎ아~ 시간 여행자가 되고 싶네요 ㅋㅋ

맘에 드는 책을 만나셨군요! 비록 작가는 썩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작가의 문장은 매력적인가봐요. 기댈 책이 생겼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느낌의 공동체’를 읽어야할 책 목록에 넣어 봅니다 히히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참 행복하게 읽었어요.

어마어마한 필력을 가지신 분이죠. 피기펫님께는 느낌의 공동체보다는 '몰락의 에티카' 추천합니다. ㅎㅎㅎ

병신 같은 날.... 오늘 이 책이 필요합니다. 오후까지는 참 좋은 하루였었는데...

오호! 무슨 일일까요? 에잇! ㅠㅠ

아, 역시.. 가깝고도 먼 작가님들의 세계. ㅠㅠ

누구말인가요? ㅋㅋㅋ ㅠㅠ

에빵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지요. 누구겠어요. ^^

신형철의 인기가 그의 평론이 실린 글을 읽기 위해서 해당 소설을 사서 읽는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듣기로는요.

저요저요! ㅎㅎㅎ 럼프님께도 '몰락의 에티카' 추천요 ㅎㅎ

알코올이 적당히 들어갔을때는 마치 나도 작가가 된 것처럼 머리에서 글이 줄줄 흘러나올 때가 있더라구요. 알코올의 힘이 그래서 좋은건가 싶으네요~ㅎ

ㅋㅋㅋㅋ 혹시 노래도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노래 연습을 안하고 있네요, 제가 ㅠㅠ

노래도 그렇지요. 알코올이 적당히 들어가면 감정이 저절로 잡히죠.ㅎ 그러니 음주 후 노래부르는 모습을 한번 보세요. 혼자서 세상을 다 집어 삼킬 듯 인상을 쓰면서 부르는 사람들 보셨을 겁니다.

느낌의 공동체, 느낌과 느낌을 연결해 주는 게 메타포 같아요. 잔잔한 글 감사합니다. 글 속에 에빵님의 뭔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아마도 음주글이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ㅠㅠ 딱 알아보시는군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ㅋㅋㅋ

ㅎㅎㅎㅎㅎ 마음챙김 부작용(?) 같습니다. ^^

그 날이 어떤 눈부신 날이었을지 궁금해 지네요..
젊은 날의 나를 위해 건배~~

ㅋㅋㅋ 건배~ 다시 마시기로 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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