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가득한 출장일지
매번 마지막이라고 부르짓는 그 출장을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으로 다녀왔는데,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로 출장에서의 tmi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내볼까 한다. 출장 중에는 스케줄 상 글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킬 것만 같은 쫄보스러운 마음이 겹쳐 이렇게 돌아온 후에야 매일 머무르던 이 자리에 몇일 만에 앉아본다.
출발
늘 아침 첫 비행기를 탄다. 돌아올 땐 저녁 항공편인 경우가 많은데, 사람의 노동력을 최대치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새벽 항공편이 없기에 다행이지, 있었다면 그 편을 탔을 것이 분명하다.
읽지도 못할 책을 매번 챙기는데,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3-4페이지를 읽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kyunga님을 통해 알게 된 '뉴 필로소퍼'라는 잡지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게 찰떡같아 얼른 다 읽고 다른 이슈를 사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틈날 때 한두 페이지씩 느릿느릿 읽고 있다. 일하면서 알게 된 지식과 갖게 된 취향을 바탕으로 팟캐스트를 하게 되었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정말 정반대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건에 대한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글을 읽으며, 소비주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건 아닌가 하는 묘한 생각도 든다.
혼종
스타벅스가 없었더라면, 출장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여행도 아니고, 체력소모가 크고 동선이 정해진 출장 길에 스타벅스에 앉아 잠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큰 위안이 된다. 물론 그마저도 긴 시간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심신이 지친 와중에 맛과 향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카페에 들어간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물론, 없을 경우엔 대충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과일주스를 주문하기도 한다. 맛은 보장할 수 없음.
뭘 마실까 하다가 콜드폼콜드브루를 주문했다. 중국어로 이 메뉴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메뉴판을 가리켰다. 메뉴의 중국어 이름은 아메리카노와 라떼만 외우고 있다. 아메리카노라고 말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아닌 이상 알아듣지 못한다. 사실 영어를 할 줄 알아도 나의 발음이 통하지 않음; 아메리카노는 직역하면 '미식커피'다. 미국식 커피라는 뜻. 어쨌든 당이 많이 딸릴 땐, 아메리카노로 충족이 안되는 관계로 콜드폼콜드브루를 시켰는데, 나온 메뉴의 외형은 라떼. 손가락을 가리키며 내가 시킨 저 음료가 맞냐고 물었다. 맞단다. 콜드브루의 맛 정도는 구분할 줄 알기에 마셔보았다. 맞음. 콜드브루 위에 폼을 쌓은 후 휘저어서 내놓은 것이 확실한 맛임을 확신했다. 메뉴판 옆에는 콜드브루 위에 폼이 올려진 그림이 친절하게 그려져있지만, 그들은 더 친절하게 섞어서 내어준다.
힘들고 지치는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기름진 음식과 달달한 간식을 연속으로 먹으니 속이 매우 안좋은 상태였는데, 대접받는 식사에 잠시라도 함께 참석해야했다. 다음 비행을 앞두고 있어 시간 마저도 촉박하기에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가게 되었다. 중국은 식사를 대접할 경우 미리 식당에 와서 주문을 해 놓고 기다린다. 그래서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좋긴 하다. 물론, 열심히 맛있게 잘 먹어주어야 할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먹지 않더라도 내 앞접시에 이것저것 가져다 놓고 먹는 척이라도 해야한다.
그 와중에 신기한 디저트 발견. 밥을 먹고나서 먹는 것이 아니라, 생선과 고기를 포함한 메인메뉴를 한창먹고 있을 때 이런 빵이나 디저트 류도 함께 먹게 된다. 처음보는 신기한 폭탄 초콜릿에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들었다. 불을 붙이고 불빛이 반짝이더니 폭탄이 터진다. 터진다 함은 불빛이 사라지고 저 초코볼이 반으로 두동강 나면서 안에 누룽지튀김과 작은 초코볼들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누룽지가 왜 저 사이에 섞여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입이 단 상태의 나는 누룽지 몇 개만 집어먹었다.
명품 그리고 명품
돈 많은 사람 정말 많구나, 라는 것을 출장 때 마다 깨닫는다. 그 작은 나라에서 돈과 출신, 직업에 따라 단계별로 선긋기하며 니편내편 나누면서 온갖 편견 다 나눠가질 때, 그걸 우스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만 같이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수준의 부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많고도 많다. 명품으로 가득한 쇼핑몰이나 지역을 갈 때는 더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된다. 뭐 그렇다고 부자라고 느끼는 저 사람들이 제일가는 부자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많은 생각에 잠긴다.
뭐 그건 그렇고, 실내가 답답해서 잠시 바깥으로 나와 쇼핑몰에 둘러쌓이 광장같은 곳 벤치에서 쉬게 되었다. 흡연실처럼 사용되는 공간이라서 은은하게 담배냄새가 흘러들어왔지만, 다리가 더 아팠기에 그냥 앉았다. 그리고 한 켠에 보이는 테슬라 전기충전소. 차는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선 길에서 테슬라 충전소를 본적은 없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태양열 충전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엔 거대한 쇼핑몰 뿐이고, 바로 앞 애플 매장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리서치하면서 '테슬라'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앨론 머스크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처럼 자동차의 고급스러움이나 기능 이런 것 보다는 앨론 머스크가 행하고 있는 수 많은 사업들이 더 강하게 인지되어있다. 화성이나 달 여행, 지구를 한 시간 생활권으로 만드는 계획이나 하이퍼 루프 같은 것들. 인간의 삶을 빠른 속도로 눈부시게 발전시키는 가속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나는 언젠가 부터 이 사람이 참 무섭다고 느껴진다. 거침이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 돈이라는 권력을 충분이 쥐고 있는 사람.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어디까지가 맞고 틀리다고 아직은 말하기 어렵기에 더 무섭다.
꼭 우리는 그렇게 경제적을 계속 성장해야만 할까. 매년, 매달의 성장이 더 긴 주기의 삶을 먼 길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찬
마지막 식사.
정말 심신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곧 끝이라는 희망을 가득 안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타이밍이었다. 출장엔 한번씩은 꼭 훠궈를 먹는다. 나도 훠궈를 싫어하진 않지만, 관광객 1도 없는 중국식당을 몇 일 연속적으로 먹다보면, 훠궈는 사실 입도 대기 싫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의 취향에 우리의 입맛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게 된다. 그렇게 명품으로 가득한 또 다른 쇼핑몰의 식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식당의 가격은 생각보다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고, 1인1탕으로 탕과 고기를 모두 따로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빨간 탕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재료들이 신선했고, 마지막 만찬을 그렇게 폭풍흡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 맛집이네. 누군가에게 추천해주어도 괜찮을 정도. 새우완자와 양고기, 각종 야채와 면까지 알차게 먹어 내 배를 빵빵하게 만족시켜주었다.
만찬이 끝은 아니었다.
먼저 한국으로 출발하는 우리팀에게 하나의 일정을 더 소화해야하는 일이 급작스레 주어졌고, '그들'의 혼선으로 인해 다른 장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에 가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공항에 도착해야하는 일정으로 인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지 않겠다고 전하고 호텔에 들려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는 내내 찝찝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다, 주도적으로 혼선을 주었던 사람이 보낸 발랄한 어투의 조심히 가라는 답을 받고 상황은 마무리 되었는데, 모든 기를 다 빼앗긴 후였다.
그렇게 심신이 지친 채로 공항에서 진짜 마지막 만찬을 하게 되었다. 적은 양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그건 아마 술때문이 아니라 긴장이 풀리고 스트레스 받았던 것들이 여독으로 남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 랜선으로 연락하고 일하는 것만 남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나의 노동력을 착취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늦잠을 잘 수 있고, 일하는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루를 풀로 일하지 않아도 되고, 출장이 아니면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 팟캐스트와 그 외적인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랜선으로만 100%로 일할 수 있다면 솔직히 얼마든지 더 하고도 남는다만, 주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쨋든 이곳에 출장에서의 일들을 남기며, 여독을 풀어내본다.
테슬라 모델S 정말 예쁘네요
저게 모델s였군요. 전 잘 몰라서 충전소만 열심히 쳐다봤네요 ㅎㅎ
해외 출장이 저의 로망인데.. 역시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군요.
저도 출장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사람인데, 제가 겪은 출장은 로망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물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요. 일정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관건인 것 같네요. ㅎㅎ
베이징은 건물 면적에 압도되더라고요. 저 크고 많은 건물이 누군가의 것일꺼라 생각하니...
그나저나 드신 초콜렛 완전 신기해요. 예전에 따동에서 예쁘게 차려진 음식을 맛본적이 있는데, 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는지 아쉬워요. ㅠ. ㅠ 초콜렛을 보니깐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맞아요 저도 그냥 큰 것도 아니고 ‘왕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저런 초콜렛을 카페도 아니고 전통중국식당에서 접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ㅎㅎ
피로 가득한 출장길이었지만 글로 정리하며 반추하면 마음에 쌓인 피로는 어느 정도 풀릴 듯 하네요ㅎ
우리 아내가 요즘 좋아하는 커피네요. 콜드폼 콜드블루요ㅎ
몇일간 담아놨던 것들을 풀어내니 조금 후려하기도 하네요. 콜드폼 콜드브루는 폼과 콜드브루가 분리된 맛이 묘미인데 아쉬웠어요 ㅎ
피곤에 쩔으셨음이 글에도 쩔어있네요 ~.~
라임인가요 ㅋㅋ
출장이라는 게 참 힘든 거군요. 고생하셨어요.
ㅎㅎ네 한번다녀오면 원래의 사이클로 돌려놓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듯해요.
P님 출장 다녀오셨군요. 고생하셨어요!
항상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기를!!ㅎㅎ
ㅋㅋㅋ너무 좋아하는 말이에요. 역시 경아님!:D
함께 출장을 다녀온 느낌이 드는 일기네요. :) 출장을 가본지가 언젠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농장에서 일하다보니 뭔가 뒤쳐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이렇게 생각이 담긴 일상이야기 오랜만에 읽으니까 마치 대화를 나눈 것만 같아요. 저도 이렇게 일상과 생각이야기를 적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출장은 한번 다녀오면 진이 빠져서 뭔가 이렇게 털어내지 않으면 너무 많은 상념이 남게 되요. 아직은 제가 몸담고 있는 일들이지만, 이 일들의 가치와 효율,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이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