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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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시선


백화점 10층 갤러리에 자리잡은 일러스트레이터 '아방(Abang)'의 전시.

아직 퇴근 시간이 한시간 남은 백화점은 한산했고, 같은 층에 식당과 카페들의 손님들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예전엔 백화점 식당가를 무조건 고급스럽고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텅빈 식당을 바라보니 젊은 세대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컨텐츠나 컨셉이 텅빈 것 처럼 느껴졌다. 물론, 컨텐츠만 채워진 핫한 식당들도 많다. 무튼, SNS에서 보았던 글귀가 잔상에 남기도 했고 마침 근처에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찾아갔다.

10-30대가 이 아티스트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바깥 커피숍들은 전혀 다른 고객층인 것이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텅빈 갤러리에 입장했는데, 구경하고 있으니 내 또래 남자 한명이 들어왔고, 그보다 좀 더 어린 커플과 남학생도 들어와 있었다. 모두 이 백화점의 주요한 고객층은 아닌것이 분명했고, 다른 루트를 통해 아방의 전시소식을 접하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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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의 전시 주제는 'Two names of beauty'로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아닌 또 다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여성'들은 얼굴이 각지거나, 덩치가 크거나, 눈이 작았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특성들은 표현의 수단을 위해 많이 쓰이지만, 대상을 제대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주제였다.

내가 바라본 아방의 그림체는 철저히 요즘스럽고 트렌디하며,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며 따를법한 단순하고 귀엽사리하면서도 레트로한 뉘앙스였다. 프린트해서 한장 쯤은 갖고 싶은, 조금 더 크게 인쇄해서 인테리어용으로 걸어놓고 싶은 그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바라본 시선이 있었다.






깊이와 넓이에 대하여


가벼운 일러스트와 짧은 글,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그린 그림이 상업화되고, 깊은 고민없이 토해내진 글들이 일기장처럼 모아져 책이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쉽게 평가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벼움에 대한 나의 시선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가벼운 평가들이었다.

깊이감이란 것이 반드시 스킬이나 노동력에 상대적인 것은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다보니 언제나 그 경계를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장르의 정통성이 반드시 깊이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에게 그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넓은 영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만큼 가볍에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예술과 디자인을 나누기 어려운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고, 등단을 하지 않은 작가들이 더 많은 책을 내기도 하고, 취미가 직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프로와 아마추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까??(결국 살롱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된 듯 하다.) 문화와 창작의 영역에서 말이다. 누가 더 전문가적인 스킬을 갖췄느냐도 중요하지만, 전문가 중에서도 명성과 스펙을 등에 엎고 속빈 강정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너무 어설프기도 하다. 이 경계는 다른 경계로 다시 이야기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더 매력적인 자기만의 깊이감 있는 세계를 갖추었느냐.. 그것이 관건일 것 같다. 미친듯한 덕후력으로 전문가를 능가하는 아마추어와 프레임안에 갇혀있지 않은 프로페셔널들의 각축장이 된다면, 우리의 문화나 예술은 더 매력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괜찮은 염탐자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유투버, 기획자, 마케터, 소비자 등등. 나는 이들이 아니지만(소비자 빼고), 이들을 염탐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세련되고 감성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어서 내 취향에 맞는 이들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두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성향은 이어질 듯 하다.

그러나 문득, 좋은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취사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평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많은 영화를 보아야한다. 취향에 따라 영화를 취사선택하는 건 관객이지 평론가가 아니다. 내가 뭐 대단한 평론가할 건 아니지만, 관객처럼 영화를 보고 평론가처럼 평가하는 얄팍한 시선은 좀 거두는 것이 '괜찮은 염탐자'로써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립서점들의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가벼운 책들 사이에 있는 괜찮은 책을 발견해내기 어렵다. 베스트셀러가 싫다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중에서도 마케팅이 아닌 내용의 깊이감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발견할 수도 없다. 나는 그 동안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시선과 관점에 목말라했던 사람인데, 더 다양하게 바라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때로는 넓게 때로는 깊게 보면서 이 시선을 유연하면서도 탄탄하게 만들어야 그 다음 스텝을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스팀잇에 연결지어 이야기해보면, 이곳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를 발휘하기도 하고, 일상의 생각들을 풀어내고, 취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내가 해왔던 것들과 관심사들을 토대로 뭐 좀 해보려는 사람 중 하나. 이곳에도 분명 매력적인 컨텐츠와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점 하나 찍지 않는 이상, 짧다고 가벼운 글이 아닐 때도 있으며, 길고 어렵게 쓴 글이라도 텅비어 있는 글도 있다. 회사다닐 때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디렉터들에 대한 존경심이 1도 없는 나이지만, 내가 한동안 무척이나 마음적으로 따랐던 분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어려운 걸 어렵게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걸 쉽게 이야기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라고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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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죠
예전에 인터넷 소설 작가가 국문학과에 진학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ㅎㅎ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볼 영화는 쏟아지고 ~ 평론가의 삶도 쉽지 않겠네요

그땐 참 유치한 인터넷 소설도 많았고 논란도 많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경계가 흐려지는 것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괜찮은 염탐자의 시선으로 편견과 가름 없이 보는 태도, 저에게도 많은 걸 깨닫게 하는 이야기네요!🙏

더 많이 더 깊게 보면서 더 괜찮은 염탐자로써 함께 불소소를 이끌어가보아요 봄봄님!!ㅋㅋ

맞아요. 어려운 걸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진짜 똑똑한 사람들..!!
(저도 취향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느껴지면 염탐합니다ㅋㅋ)

경아님도 프로염탐러!!:)

요즘스럽고 트렌디한 것에 대해서 저 또한 가볍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노래에 비유하자면, 멜론 탑10 차트에 속한 곡은 '일반대중' 의 취향이라고 치부하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가수의 노래는 '가치있다' 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ㅜㅜ

사실 저도 지금도 탑100을 잘 듣지 않긴하지만 ㅎㅎ 어떻다고 말할려면 한번은 들어봐야 되는 것 같긴해요. ㅎㅎ(근데 유투브에서 발견한 괜찮은 해외아티스트들의 음원이 국내스트리밍사이트에 풍성하게 구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ㅠㅠ아쉽 ㅎㅎ)

그렇죠? 제목 좋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떤 질문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힐 때가 성장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질문에서 자유로워지죠. 좋은 큐레이터가 되실 것 같아요.

과찬이지만 기분좋네요!! :) 네 정답을 찾았다고 느끼게 될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ㅎㅎ 염탐자, 매우 재미있는 콘셉과 의미 단어 입니다.

네 정말 쫀쫀한 염탐자가 되고 싶답니다.ㅎㅎ

어려운걸 쉽게 얘기하기 위해선 정말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네 그런것 같아요. 저도 내공 좀 키우려구요!!ㅎㅎ

P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깊이와 넓이가 함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나 요즘처럼 장르를 넘어서는 유연함이 필요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런것 같아요. 우선은 각자가 가장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탐구하는 것이 제일 좋을것 같구요. :)

역시 수도권에 거주하니 다양한 곳들을 갈 수 있고 접해볼 수 있어 유리한 것 같아요. 확실히! 컨텐츠 소비자로서 이렇게 온라인에서라도 대신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제가 대신 많이 보고 전달해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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