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역사이야기 30편 - 장자상속의 조선?? -4-

in #kr6 years ago

잡다한 역사이야기 27편 - 장자상속의 조선?? -1-
잡다한 역사이야기 28편 - 장자상속의 조선?? -2-
잡다한 역사이야기 29편 - 장자상속의 조선?? -3-

윗글들에서 이어집니다 ^^

조선 최고의 정통성 숙종

현종다음은 어린나이에 즉위한 숙종이었습니다. 숙종은 즉위했을당시 14세밖에 안된 소년왕이었습니다. 보통 이런경우 생모나 궁궐의 어른이 수렴청정을 하며 성인이 될때까지 같이 하는게 기본이었는데요. 그러나 숙종은 이례적으로 수렴청정 과정을 건너 뜁니다. 여기에는 숙종의 어마어마한 정통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숙종은 조선시대 유이하게 원자->세자->왕테크를 탄 왕입니다. 단종도 그런 테크를 타긴했지만 일찍 죽었기때문에 어찌보면 조선에서 유일하게 태어나자마자 왕으로 내정된 그런 테크였죠. 거기에 이미 결혼했기때문에 충분히 성인 취급 받던 때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렴청정 없이 바로 정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어머니인 명성왕후에 따르면 이미 어렸을때부터 성격이 급하고 참질 못해서 어머니가 머리를 빗어주는데 가많이 안있어서 빗으로 머리를 때려가며 빗겨줬다고 합니다 ^^ 뭔가 상상이 됩니다 ㅋ

숙종하면 어찌보면 조선왕중에서 제일 친숙한 왕중에 하나인데요. 바로 엄청나게 드라마화 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스토리가 바로 이 숙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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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본적이 있는데 김혜수씨와 전광렬씨의 연기가 워낙 강렬했었죠. 저기서의 왕이 바로 숙종입니다.

이렇게 드라마로 많이 알려져있긴하지만 재위기간도 58년이나 되는 왕으로 조선 왕중에서 손에 꼽히고, 거기에 이 시기부터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같은 전란에서 벗어나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 입니다. 그 유명한 대동법도 이시기에 완전히 정착되기 시작하죠. 이렇듯 숙종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 치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숙종은 저 막장드라마 이미지처럼 여자들을 이용하여 당시 치열해진 당파싸움을 부채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인과 남인을 적절히 이용하여 왕권강화를 노렸죠. 예송논쟁 당시만해도 심하면 귀양으로 끝나던 것도 이제는 사약을 마구마구 뿌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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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의 거두였던 송시열도 이렇게 숙종의 숙청에 당해 사약을 마시고 죽게됩니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

숙종은 꽤 오래 살았고, 후사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에서 숙종 다음을 이어받은것은 첫째아들 경종이었습니다.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이었고,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고 죽은 뒤에도 어렵사리 세자자리를 지켜가며 왕위에 오를수 있었죠. 이렇게 살얼음 판을 걸어서였을까요? 경종의 몸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30대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자식도 없었고, 몸도 안좋았죠. 그리하여 후계자를 정해야하는데 이때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이 승부수를 던집니다. 바로 동생 연잉군을 밀었던 것이죠. 노론은 이미 숙종시절부터 연잉군을 밀었습니다만 숙종은 나름 첫째아들 경종을 지켜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왕에 오를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노론의 승부수는 받아들여져 경종의 후계자로 연잉군이 지목되었으나, 경종도 숙종의 아들인것처럼 한번의 환국을 벌여서 소론이 노론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습니다만 이미 경종의 몸이 버텨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조선의 장수왕 영조

그리하여 동생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그 유명한 영조입니다. 원래 연잉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는 무수리라는 설이 있을정도로 천한신분이었기 때문에 연잉군 역시 주변의 무시를 받던 상황이었습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연잉군이 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향하던 도중에 앞에 대신이 가고 있었는데, 대신이 일부러 길을 막고 안비켜주고 거드름을 피우며 무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옵니다.

하지만 연잉군은 착실하게 공부해가며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고, 결국 노론의 지지까지 받아서 왕위까지 오를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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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중에 몇 안남아있는 영조의 초상화입니다.

그러나 영조의 재위초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소론이 경종의 독살음모론을 밀며 영조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영조는 교과서에서 잘설명해준것처럼 탕평책으로 소론과 노론 남인등등을 가릴거 없이 등용하고자했었습니다. 그러나 소론의 몇몇은 영조에게 협조했지만 결국은 반란까지 일으켜가며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죠. 특히 게장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영조가 고생했습니다.

경종 말년에 영조가 게장과 감을 같이 진상했는데, 이를 먹고 탈이나 경종이 죽었다는 음모론 이었습니다.

그래도 영조는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조선 후기 태평성대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주변국도 워낙 좋았던 시기라-중국의 경우 청나라 최대판도에 전성기였고, 일본 역시 에도막부의 전성기였습니다-침입도 없었고, 내부 발전을 이루어가며 발전하던 시기였죠. 그러나 영조의 컴플렉스가 어마어마한 사건을 하나 일으키게 됩니다.

사도세자와 세도정치

영조의 최대약점은 바로 출신이었습니다. 워낙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었던 지라 젊은 시절에 무시받았던게 한으로 남아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식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원래 일찍 아들을 낳았었으나 9살밖에 안되어 죽었고, 영조는 큰 슬픔에 빠졌었습니다. 그후 딸들만 낳다가 마침내 늦둥이 아들을 낳게 되니 그게 바로 사도세자였습니다. 영조는 이 사도세자를 잘 키우고자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엇나가기 시작하죠.

사도세자를 몰아세우거나, 심하게 야단치는 등등 사도세자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맙니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에 그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있죠. 결국 영조와 완전히 엇나가버린 사도세자는 아버지에의해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게 되죠. 그리고 영조 또한 후반기로 갈수록 탕평책은 사라지고 외척들을 등용해가며 조선 후반기를 상징하는 세도정치의 씨앗을 뿌려놓았죠. 그렇게 제일 장수한 왕 영조는 조선의 전성기를 다시 만들며 손자 정조에게 왕위를 넘겨줍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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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각종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정조가 워낙 똑똑했고 걸출했던 왕이라 이 난관들을 잘 헤쳐나가며 조선 후기의 부흥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수원화성과 같은 유적지도 남기고, 정약용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력을 받아들여 규장각을 설치하여 새로운 학문의 부흥을 일으키죠. 이렇듯 정조는 다양한 업적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집권하여 했다면 조선이 더 부흥하지 않았을까 안타까움을 자아내죠. 그래서 죽음에 관해서 독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돌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조역시 영조처럼 세도정치를 막지 못했고, 그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이제 침체기에 들어갑니다.

숙종(장자)->경종(장자)->영조(사남)->정조(차남의 장자)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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