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되신 담임선생님의 15년 전 편지

in #kr6 years ago

작년 이맘때쯤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짐 정리를 하다가 옛날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고 단톡방에 사진을 하나 찍어 올렸다.
순간 시끄러웠던 단톡방에는 정적이 흘렀다.
고인이 되신, 고3때 우리 담임선생님의 편지였다.

난 사실 선생님이 스승의날에 우리에게 편지를 주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의 사진을 보니 어렴풋이 생각나는것 같기도 하다. 읽고 조금 갖고 있다가 방청소할때 무심히 버릴만큼 철없는 제자였다.

선생님은 학구열이 엄청 심한 동네의 고3 담임이었음에도 한번도 우리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으셨다.
조회나 종례시간에 대부분 들었던 얘기는 오늘 하루도 행복해라, 즐겁게지내라, 밥 잘먹어라, 무탈해라. 였다.
덕분에 고3때 우리반은 문과 꼴지...였고 옆 반 선생님이 매번 너넨 담임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며 제발 공부좀 해서 꼴지는 하지말라고 잔소리를 하고 가셨다.

우리때는 촌지가 흔했다. 부정적인 인식은 퍼져있었지만 기가 쎈 학부모들은 기어코 버리듯 던져버리고 나오기 일쑤였다.
선생님도 그런 황당한 일을 겪었으리라. 그럴때마다 선생님은 과자, 음료수, 햄버거 이런것들을 돌리며 “OO이 어머니가 너네 힘내라고 맛있는거 사주라고 하셨다”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졸업하고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야 혼자, 혹은 둘이 끼리끼리 두세번 찾아뵌게 다다. 취업 후에는 선생님 월급 얼마나 된다고 쏘냐고 깔깔 거리면서 우리가 쏘겠다고 웃고 떠들었지만(우리 주제에..ㅋㅋ) 항상 사주신건 선생님이었다. 너네 사줄 정도는 번다며 ㅎㅎ

7-8년전, 선생님이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속도가 너무 빠르고 너무 늦게 발견했다고 들었다.
고3때 친구들이 갑자기 연락이 됬다.
고3때 우르르 몰려다녔던 6명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났다.

인연이라는게 참 웃기다. 한사람하고의 인연이 끊기는 자리에서 다른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그 후로 우리는 단톡방을 개설해서 매일같이 잡담하고, 서로의 대소사를 챙겨주고, 6개월에 한번씩은 꼭 만나고 있다.

선생님의 편지 중 이 구절이 참 와닿는다.

인연은 영원히 지워지지않는 우리인생에 문신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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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마지막 문구 중에 너네들을 엄청 좋아한다. 라는 말씀이 되게 찡하게 다가오네요. 정말 제자들을 좋아하신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와요...

정말로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은 분이에요 ㅎㅎ 약간 우리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또 그분의 방식이었나봐요

이렇게 멋진 선생님을 만나는것도 정말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사춘기 학창시절 어떤 어른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각도 인성도 많이 달라지지 않나 싶어요. 이런 기억에 남는 은사님이 있다는것도 참 행복이네요. 이 글을 읽으며 저도 문득 어릴적 선생님 한분이 떠올라 갑자기 맘이 몽실몽실 기쁨 과 아련함이 동시에 듭니다.

직업이 교사인 분들은 많았지만 스승이라 부를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았던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스승의날에 생각나는 분이있어서 참 좋네요

스승의날에 생각나시는분이 계셔서 부럽네요..
전.. 생각을 하니.. 엉덩이가 아프네요..

저도 대부분이 등짝 스매싱... ㅋㅋ 기억으로 가득하네요

세상에 이렇게 멋진 선생님이 계셨다니!!!!
제 선생님도 아닌데 얼굴한번 보지 못한 분인데 눈물이 나는건...
분명 좋은데 가셨을거에요...ㅠ.ㅠ

그렇겠죠? 아직도 선생님 기억이 나요 ㅎㅎ

좋은 은사를 두셨네요. 저도 중2때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좋은 선생님은 두고두고 생각나는것 같아요

멋진 분이셨네요~ 저런분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난건 정말 행운이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이 스승의날이었단걸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도 저런분께서 있었으면 제인생은 조금이라도 다르게 바뀌었을수도 있겠다 싶네요~ 오늘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인생 사시고 계신데요 뭘~ 아마 알게모르게 좋은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거에요 :)

와...편지가 정말 너무 멋지네요...
포장되지 않은 진심을 담으신 편지 같아요 ㅎ
정말 좋으신 분이었을거라 생각되네요 ^^
잘 보고 갑니다. ~!!

저 편지를 쓰시고 준비하시는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괜히 또 눈물이 나네요

정말 멋진 선생님 이신것 같아요.
편지를 받은날 왠지 여러명이 울었을거 같아요.
그리운 하루일것 같습니다.

전 아직도 저 편지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져요. 스승의 날이라 더 생각나네요

오..
인연이란 참 신비하죠

그리 훌륭한 쌤이랑 인연이 있었는대
그 연이 끈어젔군요
하늘도 무심하시지...ㅠㅠ

그러게요.. 술을 좋아하셔서 친구랑 취업턱으로 술을 사갔는데 너무 후회되네요. 술 많이 드셔서 건강이 악화된거 같아서요

마지막에 인간 ○○○ 이라 적으신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동등한 위치에서의 관계를 희망하셨기에 인간이라 하신게 아닐지...

아... 그렇군요ㅠㅠ 전 아직도 선생님을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네요. 한글자 한글자 의미를 담아 쓰셨네요

15년전 편지인데도 상태가 매우 좋은것 같은데요!~

서랍에 그대로 박혀있었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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