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두서없는 흔한 잡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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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6학년 시절, 매일 숙제로 일기 쓰기를 강요당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새삼 감사하게 된다. 매일 같이 일기를 쓰는데, 당연히 매일 특이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기에 나에게는 그날의 특별한 일을 써야만 되는 줄 알고 있던 일기라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그냥 글짓기라고 하면 어울릴 것 같은 수 많은 주제 들에 대한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교육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나의 일상을 적는 것보다 수필에 가까운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그러한 습관은 중학교 때 글짓기 대회마다 참석하는 열의로 발전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비로소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지금의 내가 밥 먹고 사는 데는 그 어릴 적의 일기 쓰는 습관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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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구상을 하고 글을 쓰라고 하는데, 나는 거의 반대로 글을 쓴다. 이를테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다고나 할까. 구상을 하고 글을 쓰면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유는 간단한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구상을 할 때 한번 머릿속으로 글을 지어놓으면, 실제로 옮겨지는 내용에는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처음 그 내용을 떠올릴 때의 감흥도 이미 지나간 후라 아무리 봐도 써 놓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랄까, 구상할 때는 막 끝내주는 명문일 줄 알았는데, 막상 나온 글은 그저 그래 놓으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실감이 되어 결국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게 된다.

반면, 아무 구상 없이 쓰기 시작하면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찬란하게 느껴지고, 덕분에 별거 아니 생각도 글로 옮겨지는 순간 뭔가 대단한 것처럼 치장이 되는 느낌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훑어보면 이 역시 감흥이 한번 지나간 후라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글을 처음 읽을 때의 ‘대단해 보임’은 구상을 하고 쓴 글보다는 즉흥적으로 쓴 글이 더 낫다. 구상을 하고 쓰면 쓰다 구상대로 나오지 않아 글을 멈추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즉흥적으로 쓰게 되면 일단 완성까지는 가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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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해 조예가 깊은 분의 말을 들어보면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사진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으면 비로소 남들이 다 똑같이 볼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사물이 비로소 독창적인 관점을 지닌 하나의 작품이 된다고 한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스팀잇에 글을 처음 올리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은 흔한 정보 글을 올리기도 하고 그걸 약간 가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은 별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정보 글이야 포털에서 검색하면 그보다 더 자세하고 더 잘 정리되어 나온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흔한 정보 글을 올려서 인기글로 가는 것은 힘이 든다. 소재나 주제도 중요하겠으나, 글 역시 사진처럼 관점이 제일 중요하다.

사진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듯, 독자는 글을 통해 글쓴이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된다.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관점이 틀려지면 보는 풍경이 달라지듯, 흔한 내용이라도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재미가 된다. 그런 관점이 들어가면 비로소 글에서 글쓴이가 느껴지게 된다. 단순히 뭐가 어떻다는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바라보는 글쓴이의 시선이 들어가야 비로소 남의 생각을 엿본다는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체험을 섞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일 것이고, 남들의 판단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모두가 좋다는 것에 대해 나쁜 점을 말한다던가, 혹은 반대로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 글을 읽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것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글을 읽는 보람과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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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글쓰기를 배웠거나 많이 써본 게 아님에도 맛깔 나는 글을 쓰는 친구들이 있다. 아마 그런 친구들은 전에 말한, 존재가 글로 흘러나오는 친구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글로 존재를 채우려고 한다고 해서 존재나 글이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치장하려고 해 봐야 어색하고 가짜로 꾸며 쓴 표가 확 난다. 글이라는 건 결국 존재가 흘러나와서 표현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본인부터가 재미난 사람이 아니면 글이 재밌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재밌게 쓰려고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재밌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 그 재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

흔한 글쓰기 비법에는 그렇게 재밌는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다독과 다상을 제시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면 된다는 뜻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면 결국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흘러 내려 글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필연적으로 글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치라고나 할까.

뭐..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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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그렇지만 직접 써 보는게 정말 중요하더라구요.
존재가 글로 흘러나오는 친구들을 분석한 책을 보고 그 친구들 따라 써 볼 수도 있으니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나도 글 잘쓰고싶다아~ 하고 갑니다 : )

ㅎㅎ지금도 잘 쓰시는데요 뭘.

일기쓰는 습관. 전 고등학교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가지고 있죠~ 대학시절과 군대시절에 쓴 일기장은 어디로 갔는지 이사가면서 다 없어진 것 같아 아쉽네요 ㅠㅠ 싸이월드에 쓰던 일기장은 당시 여친이 볼까봐 지우고... 페이스북에 쓰던 것도 지우고.. 아마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적이 많은 듯 ㅋ 이젠 그냥 웬만한 건 포기하고 사니까 편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쓰게 되는 듯 합니다. 모쪼록 편집장님께 압박들어오기 전에 작품완성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즈앗!!! ㅋ

흠... 여친이 생기면 일기를 지워야 하는 것이군요.

그 전 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지워야 합니다~ ㅋ 지우즈앗!!

지우셔야 인생이 평안합니다.

지혜인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새로운 여친이 생겨도 그 여친에 대한 걸 쓰지 말아야 되는거군요.
이른바 예방적 보안이죠.

ㅋㅋㅋㅋ 증~~~ 답!!! 일기에 여친얘긴 쓰지 말즈앗!!! ㅋ

스팀에도 적용되겠군요^^

여친이 뭐죠?

ㅋㅋㅋ 여자연예인 친구의 줄임말입니다.. 가즈앗!!!

글 역시 사진과 같이 관점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글을 어떻게 읽느냐 일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에 대한 시선을 결국 사진이든 글이든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은 시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겠습니다만...

지나가버리는 찰나의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놓쳐 버리기 십상이므로, 무엇이든 적어두는게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잘 정돈되면 좋겠지요. 사실 이는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메모는 중요하죠. 그런데 실체는 작업으로만 만들어지는데, 머릿속으로 한번 만들어버리고는 만족해버리면 실체를 만드는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터라...딱 메모는 메모까지만 해야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려서 가상으로 완성해버리면 실체화가 잘 안 됩니다. 저는요.. ㅎㅎ

그렇군요. 아마 사람마다의 차이 혹은 완성된 문장 형태의 차이일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여러 상념들은 연결하는 작업을 좋아해서 - 스팀잇에는 잘 안올리지만 종종 시 작업을 합니다 - 직조된 상념들을 뱉어내지 않으면 저는 좀 답답한 경우가 있더라구요.

아마 시는 다르겠지요. 건축에 비유되는 문학 작품도 다를 것이고...
그런걸 마구 생각나는대로 썼다가는 대 참사가 ㅎㅎㅎ

네. 그래서 사실 제 경우에는 산문으로 적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길게 쓰다보면, 제 경우엔 진짜로 대참사가 납니다. (...)

재미있는 사람이 먼저 돼라~~
자신의 관점을 가져라~
책을 많이 읽어라!!

고등학교 때까지 글쓰기가 제일 싫었어요.
어쩌다 대학을 국문과를(내인생 최대의 실수)
ㅎㅎ
써야하고 쓰다보니
보고서 정도는 어찌어찌.

세가지 중에 책읽기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어도 표현하기란 어려운 것 같아요..

정착을 해야할 텐데..

아니다 정착할 수 있다. 나는 스티밋에 정착했다.
(어제 '운이 트이는 말버릇' 책을 읽었어요~!!
이리 하면 운이 트인다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

루덴스

오... 국문과...!!! ㅋㅋ 제가 찾고 있던 분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아니, 글쓰기 제일 싫은 분이 어째서 국문과를?
ㅎㅎㅎ

'당신의 소원을 이루십시오 ( 다른 제목 : 마스터의 지혜)'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요.
상상과 말은 결국 현실이 된다는...

감사합니다.

들고있는 저 손에 화이파이브를 하며

'소원을 이룬다'를 외쳐줍니다~아 가즈아~~

예전 숙제로 일기쓰는게 너무 싫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 연습이 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싫지만 억지로 했던게 결국 직업이 되는 사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그때부터 운명이 정해지는 거일수도 있겠지요..ㅎ

1번내용은 참 공감하는 내용인것같습니다.
일기든 무언가를 꾸준히 쓰는 습관이 들어있으면
이곳에서 포스팅을 쓰는것도 크게 어려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포스팅이 쉬운건 아니지만요... :)

뭐든 많이 하면 잘하게 되고 즐기게 되어 있지요.
많이 해서 즐기게 되고, 즐기니 많이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일기 쓰는건 더럽게 싫었는데
여행기 써 보고 나선 참 글이란게 써 보니 재밌기도 하고
쓰면 쓸 스록 쫄깃해지는 걸 체험해봤고,
친구가 신춘문예 준비한다고 해서 계속 읽어주는데
시간이 갈 수록 계속 재밌어지는 걸 보니 또 쓰면서 는다는 걸 보기도 하네요

좋든 싫든 일단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글쓰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친구분도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ㅎㅎ 좋은 글입니다. 지인들에게 읽어보게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 타이핑이 글을 이끈다는 느낌에 공감합니다. 어느새 생각이 생각을 꼬리에 물며 미약한 존재라도 빚어내려는 성의를 발휘하고 있더군요.. ^^ 잘보았습니다~!!

키보드라는 게 없었으면 과연 제가 글을 쓰고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워낙 악필에 손으로 글씨 쓰는걸 싫어해서리 ㅎㅎㅎ

다독과 다상. 순간 다치바나 다카시 할배의 서재가 떠오르네요. 책벌레가 되어보자 하며 누가 짱먹나 찾아서 탐구했었는데. 이제는 뭐가 그리 바쁜지 읽고싶어 사놓긴 하는데 세상 자극적인 것들에 시간을 다 내어주니 그저 한자리 차지만 하고 있는 책에 미안해지고 초조함을 느낍니다. 글이라고 하기도 뭣한 단어들의 나열을 하다보니 그동안 얼마나 책읽기와 글쓰기를 멀리 했나 싶어서 후회도 되다가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내가 전문 작가도 아닌데?' 적당히 타협하며 스팀잇을 하고 다른분들 글을 둘러보고 다시 깊이 반성중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다카시할배 생사도 확인했네요. 아직 건재하시군요 ㅎㅎ

사실 저도 돈이 생기자마자 책을 수십권 사 놓았는데,
몇권 읽지 못했네요.
스팀잇 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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