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 기증 (6) - 기증하는 이야기

in #kr7 years ago

오늘의 포스팅은 실제 입원부터 기증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가지로 기억에 많이 남아서

최대한 현장감을 살려서 적었던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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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 도착하니 코디네이터 분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양손에 음료수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무겁게 들고 계셨다.

'잠도 못 주무셨다는데 그냥 제가 들게요.' 하고

코디네이터 분이 비닐봉지를 끝내 넘겨주시지 않으셨다.

배정받은 1인실 전경 사진

다른 기증자분들은 VIP 병실에 입원하셨다고

글을 많이 봤었는데 나는 일반 1인실로 배정받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잠시 1인실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불편하거나 그런 건 없었고,

내 인생 최초의 입원이 내가 아파서가 아니고 기증을 위한

1인실 입원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혈액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마니아 이신 코디네이터 분과

개봉한 영화들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했다.

코디네이터 분은 아주 발랄하신 여성분이었다.

코디네이터 분께서 채워주신 웰컴 드링크

평소에 비싸서 사 먹지도 못 했던 아임리얼 음료수가 인상적이었다.

(동생이 병문안 와서 종류별로 1개씩 다 가져감)

이외에도 벌꿀 카스텔라를 사오셨는데 고생하시는 (이쁜) 간호사분들께 드렸다.

기증 전 최종 건강검진을 위해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촬영, 심전도 검사를 받았다.

심전도 검사가 끝나고 한 가지 서약서를 작성했다.

기증시에 혈액 응고 방지제 때문에 칼슘이 부족해져서

손발이 저릿하고 입 주위에 화한 느낌이 날 수 있다는 얘기와

조혈모세포 원심 분리시에 혈소판의 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 등등

그런 부작용들이 있음을 알고 있고, 병원의 적절한 처방에 따르겠다는 서약서였다.

저녁쯤 마지막 4일째 그라신 주사를 맞았다.

역시나 주사제 들어갈 때 아픈 건 동일.

타이레놀을 가방 안에서 찾았는데 웬걸 없다.

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하필 타이레놀만 빼놓고 온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고통을 버텨보자 하고 그대로 있었는데...

역시 그라신은 그동안의 통증을 누적이라도 한 듯 내 허리 부근을 가만 놔두질 않았고,

새벽 2시가 되도록 잠에 들지 못 했다.

결국 침대 옆 호출 버튼을 눌러서 간호사분을 호출했다.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자겠는데 진통제를 안 가져와서 진통제나 진통 주사 좀 맞을 수 있는지요?'

타이레놀 한 알을 받아먹고 잠시 눈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노크하고 들어와서 형광등을 다 켜버렸다.

새벽 6시쯤이었다.

기증 날 아침은 이렇게 갑자기 시작이 됐다.

야간 근무하시는 간호사분이 아래 팻말을 들고 와서 침대 옆에 걸어놓으셨다.

왼팔 보존 팻말

조혈모세포의 원활한 채취를 위하여 혈액이 잘 나올 수 있는 굵은 정맥을 미리 찾아놨었다.

그 정맥이 왼팔에 있었기 때문에 각종 혈액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는 오른팔에서 했었다.

혹시 왼팔 정맥이 혈액 채취 등을 하다가 다치면

기증을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혈모세포의 원심분리가 끝난 이후

남은 혈액성분을 다시 받기 위한 라인과

혈액응고 방지제 성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칼슘 부족에 대비하여

칼슘을 받을 수 있는 라인 2개를 오른팔에 미리 찾아놨어야 했다.

문제는 내 왼팔은 정맥 찾기가 정말 쉬웠지만 오른팔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혈액 채취를 위해 정맥을 찾아놓아도 금방 사라지고 그래서 첫날도 여러 번 주사를 찔렀었는데

18G (제일 굵은!!!) 와 24G (중간 굵기) 주삿바늘이 넉넉히 들어갈

굵은 정맥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막상 찾아서 바늘을 넣고 5cm 가 넘는 긴 플라스틱 튜브를 혈관에 쑤셔 넣으면 터지기 일쑤였다.

첫번째 실패, 두번째 실패, 세번째 실패해서 혈관이 터질때 마다 피멍이 생겼다.

야간 근무하시던 분이 4번째 튜브 삽입에 실패하자

다른 간호사분이 기증 전에 따로 라인을 찾기로 하고

칼슘 주입을 위한 24G 바늘 먼저 넣어서 라인을 찾자고 하셨다.

24G 바늘은 오른 손등에 있는 정맥에 (다행히!) 바로 연결되었다.

24G 바늘을 꽂은 부분으로 기증전 혈액 내

조혈모세포의 양 및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수를 측정하기 위해

마지막 혈액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가 진행됐다.

잠시 있으니 배식하시는 분께서 아침밥을 들고 오셨다.

그렇게 나는 4개의 피멍이 오른팔에 생긴 채

라인에 연결되지 않은 왼손으로 아침을 먹어야 했다.

기증 당일 아침 밥

왼손으로 먹으니 미역국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첫째 날 점심 저녁 둘째 날 아침 점심 저녁 셋째 날 아침 이렇게 6끼를 먹었는데,

병원 밥은 역시 듣던 대로 맛이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다른 간호사분이 오셔서 못 찾은 정맥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결국 다섯 번째에 연결한 혈관조차 생리식염수를 연결하자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버렸고,

여섯 번째에 겨우겨우 연결에 성공하여 생리식염수를 연결해도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

8시 반쯤 오른팔에 생리식염수와 칼슘 보충제 2개의 라인을

매단 채로 기증을 위해 혈액원으로 이동했다.

기증 예정 시간은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이었다.

혈액원 침대에 누워 원심분리기에 드디어 왼팔 정맥과 라인을 연결했고,

생리식염수가 달려있던 오른팔 라인 한쪽도

조혈모세포 채취 후 나머지 혈액 성분을 받기 위해 연결했다.

새벽에 채취한 혈액 내에 조혈모세포 양이 많아서

당일 한 번만 기증을 해도 될 것 같다는 혈액원 선생님의 말도 들었다.

4일간 극심하게 아팠지만,

허리 부근에서 조혈모세포가 많이 혈액으로 이동해 줬다 보다 하고 생각이 들었다.

9시가 되자 드디어 원심분리기가 작동하고 혈액이 왼팔에서 빠져나와 오른팔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아아아악 하고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오른팔로 전해졌다.

너무 아프다고 혈액원 선생님께 말해서 긴급 정지를 했다.

원래 이렇게 아픈 건지 여쭤보니 원심분리기를 확인해보시더니

오른팔로 들어가는 속도에 문제가 있는 걸로 나타났다.

원인을 찾아보니 갑자기 압이 가해져서 연결한 혈관이 또 터진 것으로 판명이 났다.

혈액원 분들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원심분리기로 들어간 혈액은 응고 방지제가 섞여있어서 굳지 않지만,

빨리 다시 라인을 연결하지 않으면 왼팔 쪽 혈관에서 나오지 못하고

주삿바늘에 갇힌 혈액은 굳어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혈관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 아침에 연결해 주셨던 간호사분께 급하게 전화를 드렸다.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간호사분께서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혈관을 연결하셨다.

결국 일곱 번째 혈관은 엄지손가락 밑에 지나가는 곳으로 연결에 성공했고,

기계를 동작해도 전혀 아프지 않고,

응고 방지제 덕분인지 아주 시원한 느낌이 오른팔에 전해졌다.

이때가 9시 반이었다.

첫 번째 원심분리 사이클이 끝나고 난 후의 조혈모세포의 양 (거의 없다)

혈액원 선생님께서 조혈모세포의 채취는 총 14번의 사이클이 있고,

첫 사이클이 약 40분, 그 후 1번의 사이클이 약 15-20분 정도이며

분리가 끝나면 조혈모세포가 주머니에 모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왼손은 무조건 고정으로 주삿바늘이 연결돼있어서 움직이질 못했지만,

다행히 오른손은 손등 부근에 2개의 라인이 연결돼있었기 때문에

불편하게 나마 한 손으로 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조혈모세포가 모이는 주머니도 찍을 수 있어서 이렇게 포스팅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지인들께 무사히 조혈모세포 채취 시작됐고

폰도 한 손으로 나마 사용할 수 있다고 상태를 전해드렸다.

중간에 학교에서 연구실 행정 업무 때문에 전화도 오고 두 시간 정도는 나름 금방 지나갔다.

두 시간 반쯤 지났을까?

혈액원 선생님이 생각 외로 조혈모세포가 잘 안 모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왼팔에서 혈액 나오는 속도를 점차 올리셨다.

이때부터 왼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못 움직여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마도 속도를 올려서 그런 거 같다.

하는 수 없이 불편한 오른손으로 왼팔 윗부분을 마사지해주기 시작했다.

왼팔의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났는데,

혈액원 선생님이 코디네이터 분께 몇 시까지 조혈모세포를 보내야 하는지 물어보시더니

2시까지 최대한 채취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채취된 양이 좀 부족해서 14 사이클을 못 채울 것 같다고 하셨다.

3시에 비행기로 보내야 하니 늦어도 2시에는 마쳐야 한다고 코디네이터 분이 말씀하시자

13 사이클만 하고 이식에 필요한 양이 부족하게 되면 내일 2차 기증을 하자고 하셨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마지막 30분이 정말 힘들었다.

진짜 처음에 모르고 기증할 때는 그냥 좀 시간이 긴 헌혈일 거라 생각했는데 팔이 아파지고,

다음날 2차 기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 오른팔에 꽂힌 튜브들을 꽂은 채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

여러 가지 생각이 드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마지막 13번째 사이클이 시작될 때 조혈모세포의 양

(180 mL 가 채 안됐다. 보통은 200-250mL 정도 모인다고 들음.)

이때부터 그냥 폰도 안 만지고 그냥 눈 감고 있었다. 시계도 보기 싫었다.

침대에 등이 맞닿은 부분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그냥 눈 감고 에어컨의 바람만 느꼈다.

삐삐삐삐이익 종료 소리가 나며, 1시 57분 드디어 기계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혈액원 선생님이 이미 밖으로 나온 혈액을 알뜰하게(?) 다시 오른팔로 주입해 주셨다.

조혈모세포가 모인 주머니의 색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양은 적지만 조혈모세포가 많은 거 같다고 오늘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다시 오른팔에는 생리식염수가 연결되었고,

이제 일어나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눈앞이 아찔하더니 다시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잠시 현기증이 나는 듯했다.

결국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한 5분간 앉아있었다.

도와주시던 여사님께서 휠체어를 끌고 오셔서 입원 병동까지 밀어주셨다.

병실에 도착하니 코디네이터 분이 계셨다.

마지막 날에 다른 일이 생겨서 퇴원시에는 같이 못있을 것 같다고 하시며

혼자 퇴원을 해야 할 것이라 얘기해주셨다.

그리고 지난번 건강검진을 도와주셨던 분이

기증 후 관리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결정됐다고 전해주셨다.

기증 과정 중 불편한 점이나 통증의 정도에 대한 설문을 마치시고는

영화 티켓이 4장 담긴 봉투를 주셨다.

잠시 후, 간호사분께서 기증 직후 혈액검사를 위해 또 혈액을 채취하셨다.

왼팔, 오른팔 전부 다 사용하면 안 됐기 때문에 발등의 정맥에서 혈액을 채취해야만 했다.

나는 그놈의 오른쪽이 문제였다.

오른쪽 발등에 주삿바늘을 꽂고 주사기로 채취를 시작하자마자 터져서 부풀어 올랐다.

왼발은 한방에 채취 성공...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연결했던 생리식염수와 칼슘제를 연결한 라인을 빼고

주삿바늘은 꽂아둔 채로 주삿바늘의 뚜껑만 닫아주셨다.

밤 8시쯤 돼야 추가 기증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안 빼는 게 나았다.

사실 바늘을 빼도 다시 다른 곳에 꽂으면 되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지만,

새로 혈관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피곤했는지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났는데 이미 저녁밥이 들어와있는 상태였고,

창문 밖은 어둑어둑 해져있었다.

코디네이터 분께 연락이 왔다.

'좋은 소식 알려드릴게요!!!'

'조혈모세포 양이 충분히 많이 나와서 내일 추가 기증 안 하셔도 됩니다.'

그간의 허리 통증의 보람이었다. 조혈모세포가 많이 나와서 통증이 심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이쁜) 간호사분을 호출해서 당장 주삿바늘 튜브를 빼버렸다.

그렇게 맛없던 밥이 쑥쑥 넘어갔다.

그리고 일찍 잠이 들었다.

또 부산한 소리와 갑자기 켜진 형광등 때문에 잠에서 깼다.

마지막 날 오전 6시, 간호사분께서 혈액 검사를 위해 드디어 왼팔에서 쉽게 혈액을 채취해 가셨다.

혈소판 수치가 정상보다는 떨어졌지만 2주 후면 정상 수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아침밥을 먹고 난 후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반납하고 퇴원 준비를 했다.

담당 의사분께서 회진을 오셨다.

기증하고 불편한 점 없냐고 물으셔서, 살짝 피곤한 감 빼고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심전도 결과가 이상 징후가 있는 것처럼 나와서 나중에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동안 관리해주신 코디네이터 분께 감사하다고 전화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다음 포스팅은 마지막 기증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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