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이 되기엔 너무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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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1/2025
어쩌다 보니 힘 빼고 익명으로 즐기는 플랫폼이 단 하나도 없게 되었다. 지금 이 계정도 나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블록체인에 딱! 새겨놓고 말았다. 오늘 갑자기 스팀잇을 익명으로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들어서 새로 가입하려고 했으나, 정책상 하나의 휴대전화로 한 계정만 가입이 가능하단다. 영원히 새겨진 계정은 삭제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지운 흔적이 폐허처럼 남은 이곳에 다시 글자를 심을 수밖에. 오프라인으로, 온라인으로, 쓰고 있는 글은 정말 많지만 창구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 오래전에 쓰다가 만 노트가 불현듯 생각난 것처럼 스팀잇에 로그인을 했다.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그리고 2025년.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지냈다. 오랫동안 바라던 삶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마침내 회사원에서 프리랜서가 되었다. 하루를 몽땅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어 기쁘다. 그동안 왜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조금 더 일찍 프리랜서가 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 나의 기질을 7년 정도 참으면서 사회성과 일의 감각을 키운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프리랜서 업무 중에서도 회사 직원과 유사한 역할을 해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일 회사, 중국 회사의 일을 도와주고 있고, 설 연휴 때 몇몇 프로젝트에 더 지원해서 현재 계약이 진행 중이다.
정말 오랫동안 '물리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삶'을 간절히 꿈꿔왔다. 회사를 그만 둘 용기를 낼 수 없어 출근 이외의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며 어정쩡 양다리 세 다리 네 다리를 걸치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국적이 다른 사람과 인연이 되었고 지금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2년 동안 준비 기간을 가지기로 했는데, 올해가 그 2년째 되는 해다. 타국에서의 밥벌이를 고민하던 중, 더 늦기 전에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작년, 여름이 시작할 무렵에 드디어 회사를 벗어던지고 프리랜서가 되었다. 출근 시간에 구애 받는 삶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었다. 남의 회사에 소속되는 게 이 정도로 싫다는 걸 깨달아서 오히려 무한한 자유 안에서도 흐뜨러지지 않고 더 간절하게 시간을 쓰고 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자유를 얻었음에도 번아웃이 찾아오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시간을 아낌 없이 쏟아부을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번아웃을 건강히 이겨내도록 한다.
2년 전인가, 알게 된 지 얼마 안된 분이 오래전 스팀잇에 써 놓은 글을 링크로 보내면서 '이 글 읽었어요!' 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충격이란. 익명이 되기엔 너무 늦었다. 한편으로는 무한한 별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익명이기도 하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잉크. 그렇지만 절대적인 투명함이 진실된 삶을 강요한다면, 다시 발을 떼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가벼이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쓰는 삶에 자꾸 마음이 가는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럼 즐겨야지.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다시 오심을 환영해요.
글 쓰는 걸 좋아하시는 게 분명하게 보이는 문장들입니다. ㅎㅎ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시 즐겨보려고 합니다! ㅎㅎㅎ
사라지지 않아서 이곳이 좋아요. 이곳에 글을 쓰는 것도, 이곳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채린님 글을 여기서 읽으니 정말 정말 좋아요.
너무 좋다, 참 ㅎㅎㅎ 좋다는 말이 잔뜩 붙어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좋아요! 호호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