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법성게⟫ 이야기 #9 "구세십세호상즉 / 잉불잡란격별성"

in #kr6 years ago (edited)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본질적으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하나하나의 요소가 전체와 부분이 동시임을 설명했다. 그걸 시간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시도했는데, 이번엔 구체적으로 시간을 쪼개서 어떻게 전체와 부분이 동시인지를 규명하는 대목이다.

옛날 사람들은 대개 공간은 중심에서 4방(동서남북), 8방(간방), 10방(위, 아래) 등 방향으로 구분하고, 시간은 대개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통해 3단계로 구분했다. 말하자면 이것이 시방삼세十方三世, 불교가 시공간을 통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시간이란 속성이 어디서부터 과거이고, 현재인지, 또 미래인지 자른듯 구분되지 않음을 그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3세란 편의상 나눈 것일 뿐이고 시간은 더잘게 나누어지니 관념상으로 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각각 다시 3세가 있다고 하면, 3세는 9세가 된다. 물론 무한대로 계속 자를 수 있는 것이지만, 이론전개에 있어서 시간은 단 한 번만 더 자를 수 있는걸로 제한하는 약속을 했다. 그래서 불교철학에선 수없이 더 잘게 자를 수 있지만, 의미없는 무한반복을 방지하기 위해 9세까지만 분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간의 논리에 있어서 불교철학자들만큼 민감한 이들도 또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시간 속에서 또 항상 바뀌는 단 한순간, 우리가 9세를 설정하고 계산하는 딱 그 한순간을 일념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절대순간인 셈이다.

일념이란 원래 있던 일념을 어디서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 누구든 한순간 하나의 포커스를 맞추고 마음이 한가지 목표를 가리키는 그 순간이다. 이 순간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우리 각자 스스로도 또한 늘 다른순간이다. 그 절대의 순간은 *이비똥 명품 신상을 발견하는 순간 얼어붙는 발자국이 출발일 수도 있고, 눈동자가 얼어붙는 절대미인을 발견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 일념을 시작으로 우리에겐 순식간에 수많은 시간들이 따라 열리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다시 말해, ‘현재’란 늘 다른 순간이며, 타인들과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일념이란 세속적일 수도 있고, 탈 세속적일 수도 있다. 일념을 수행의 순간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9세가 상대적이라면, 그 1념은 절대적이다. 절대적이란것도 별다른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움직임에 지배받지 않으면 절대적이다. 바로 이 각자 다른 1념이 시간이란 보편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단 하나의 절대적 시간이다. 여기에 상대적인 9세를 더하면 이게 10세다.

상호相互란 말도 한자어지만, 한자어는 가끔 우리와 순서를 바꿔 쓴다. 그래서 호상互相은 상호와 같은 말인데, ‘즉’이란 서로 대응한다란 의미로, 말하자면 함께 ‘작동’한다는 말이다. ‘작용’이란 표현이 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절대 따로, 상대 따로가 아니라 절대와 상대가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무조건 하나다. 똑같다. 그게 그거다라고 아무런 관찰도 없이 마구마구 섞어놓고 그게 진리다라고 할까봐 굳이 다음 구절을 추가해서 또 약간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마치 변덕이 심한 사람의 성격같기만 하다.

仍不雜亂隔別成

은 대개 잘 쓰지 않는 글자인데, 그래서, 그러나, 그러므로... 이렇게 해석하면 무난한 허사다. 불잡란不雜亂이란 “대놓고 마구마구 섞지는 마세요”란 의미인데, 한글 발음에서 ㄷ이나 ㅈ앞에서 不은 관례상 로 발음되나 우리는 보통 불로 읽고 있다. 언어에서 발음만큼 변화무쌍한게 없으니 그정도를 참고로 하고 넘어가자.

격별隔別이란 엄격하게,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뜻이다. 불교철학은 이런 양면성을 선호한다. 동전의 양면이라든지, 바닷물과 파도거품의 관계라든지, 또는 우유와 생수가 전혀 다르지만 섞으면 잘 어우러진다든지... 그러니 시간에서 구세와 일념이 따로이면서 또 동시에 작용하는 관계라 편의상 다르지 않다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도 각자가 완벽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혼돈속의 질서라고 해도 좋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건강한 사회의 척도로 잡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으로 울퉁불퉁, 삐죽삐죽 하지만, 그 다른 것들이 서로를 찌르지 않고 잘 공생하는 것이다.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이 두 구절을 사회속의 그런 질서에 대비해봐도 좋겠다.


[법성게 이야기]

法性圓無二相 | 諸法不動本來寂 / 無名無相切一切 | 證智所知非餘境 | 眞性甚深極微妙 | 不守自性隨緣成 | 一中一切多中一 / 一卽一切多卽一 | 一微塵中含十方 / 一切塵中亦如是 | 無量遠劫卽一念 / 一念卽是無量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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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속의 질서. 인상적인 표현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bulsik
팔로할게요~

저도 팔로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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