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생명 : 또는 '박노자' 비판

in #kr3 years ago (edited)

이번 포스팅은 많은 지지층을 가진 글쟁이 '박노자' 교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써놓았던 글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김훈'을 비판한 글도 포스팅했지만(김훈의 수사벽), 저는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들을 심하게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비판한다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그 행위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비판(인신공격 말고요)하고 반박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던가, 아니면 다른 칼럼이었던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아무튼 그의 글 중에 호국불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었다. 불교 사상의 핵심이 생명 존중인데(살생의 금지도 포함한다), 이유야 어쨌건 살생을 일삼은 호국불교의 전통을 찬양하는 것은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판에서 이상한 점을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사실 박노자는 한국에 와서 쉽게(?) 교수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소장 학자의 자잘한 고민과 고통도 모를 것이고 한국의 독특한 대학원 시스템과 교수 임용 과정도 몸소 겪진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의 입장이 지나친 순수주의요 근본주의라고 생각되는 까닭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니 큰 소리로 말하진 않겠다.

아무튼 내가 이상하게 여긴 대목은 불교가 보이는 인간중심주의적 행태이다. 이를테면 동물과 식물을 차별하고, 특별히 동물을 우대하는 그런 대목. 아마 내가 불교의 심오한 면모를 몰라서 이렇게 어림짐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초기불교에서는 육식까지도 일정 범위에서 허용했다 하니, 내가 비판하는 건 제도화된 근래의 불교이리라). 채식주의자가 범생명존중사상 때문에 채식주의를 택했다면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 식물도 생명이므로. 아마도 다른 배려와 선택이 그를 채식주의자가 되게 했어야 옳다. 가령 현대 사회의 육식이 가져오는 생태계 파괴라는 측면 따위. 그렇지 않다면 채식주의건 불교건 사상으로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리라.

하나 더 덧붙이자면, 박노자의 논의에는 '국가가 먼저냐 종교가 먼저냐' 하는 물음에 종교보다 국가를 택했다는 점을 국가주의로 비난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다. 허나, 인간은 영토에 종속된 존재라는 점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영토가 초토화될 때 이른바 상부구조인 종교는 설 땅이 없어진다. 특히나 종교 제도라는 권력은.

박노자의 생각에는 '힘의 관계'라는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그가 우리 사회를 비판할 때는 묘한 느낌이 엇갈린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까발려진 부끄러움과 이방인의 시선이 주는 무례함.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목소리엔 교수의 거리감이 느껴지고 구체적인 삶이 증발해버린 듯한 의구심이 커진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 글 쓰기 위한 글이라는 느낌이.


지금까지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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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모두까기인형 비판은 유명하죠...ㅎㅎ
하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드러내 준다는게 그의 글의 나름 쓸모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살짝 나름 좋다고 여기는 부분 올려봅니다. ^^
불교는 다른 책에서 한 말인가 보네요


그런글이 있나하고 당신들대한민국 찾아 봤습니다.
민족주의 부분

19세기 말 동족인 조선 탐관오리들이 얼마나 미웠던지, 외족인 영국 군인과 선원을 반갑게 맞아들이 거문도 주민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단지 외족의 침입과 민족의 저항이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어린이들이 영국 고문서를 뒤져서 거문도 주민의 실제 반응을 추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족정신과 국가적 위신을 찾아내려는 (조작하려는) 무리 앞에 역사는 너무 무력하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과 피의 흐름, 위의 착취와 밑의 저주, 겹치는 이해관계, 부처의 힘, 삼강오륜, 무당,,,이중 삼중으로 겹치는 융합종교, … 과거의 그 세상을 어용 민족주의자들은 우리와 그들의 싸움, ‘국가와 민족의 성장’이라는 단세포적 잣대를 들이대며 민족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

박노자는 “다만 민족 담론으로 부터 역사를 구제해 주고 싶”다고 하네요
그능 논점은 항상 인간개인존엄을 주장하는 편이죠..
민족주의-

세상만사는 ‘우리’와 ‘그들’의 싸움판/ 보편적 의미와 인간존엄은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다. 도덕도 중요치 않고 ‘우리’는 선이고 ‘남’은 악이된다. …
(조갑제의 이스라엘 기행)이스라엘 정보부의 암살단의 ‘정신무장’과 ‘완벽한 정보’, ‘여자까지 군대에 밀어넣어 중동을 호령하는 승자’ 등 이스라엘의 파시즘을 열심히 찬양한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현대적 방법으로 암살당한는 수만명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인간, 비존재들이다

인용하신 점들 때문에 사람들이 읽게 되었던 거라는 데 동의해요.

그런데 점점 검증되지 않은 근본주의적 입장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해 가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건 현실을 고치자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까자라는 태도일 뿐이라고 보았어요.

그 후론 박노자의 논의를 진지하게 읽기 어려워졌어요. 호국불교 사례도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고 보아서 예시했던 거고요.

의견 잘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까빌림도 제대로 된 까발림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한것 같아서 강신주씨와 더불어 믿고 필터링 하는 사람 중 일인입니다 ㅎㅎ

오, 그러시군요^^

짱짱맨 부활!
호출감사합니다

오치님 고맙습니다.

박노자의 글은 이방인의 신선함으로 그냥 재미 있게 읽는 정도가 적당한 게 아닌가 합니다.
또 분명 우리가 새겨들을 필요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습을 짚어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내면의 깊은 것까지 파악하는 것에는 문화적인 한계가 분명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죠. 박노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 만큼 우리가 그러한 점을 감안해서 그의 글을 대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는 듯 합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근데 목소리가 너무 크고 발언권이 너무 많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씁쓸해요.

부모님이 불교 믿으셔서 선택의 여지 없이 불교가 종교라고 하는 사람이라 자세한 교리같은 건 모릅니다.
다만 , 우리가 믿는 종교는 순수한 이상과 현실과의 타협이라고 봅니다. 불교에서 육식을 금하는 것은 바로 살생을 하지 말라는 이유인데 최근에는 이것을 내가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해석해서 고기 먹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핑계같아 보입니다만^^

불교의 본질은 개인의 깨달음을 통한 인격의 완성이지 그 교리가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를 통해 어떤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것을 믿음으로 포장하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우리가 국가라는 기반 위에 살기 때문에 과연 종교가 그 위에 서는 것이 당연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국가보다 종교를 위에 놓는 대표적인 게 여호화의 증인이죠.
대한민국 모든 종교가 다 살생을 금하거나 부정적인데 그럼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모두 병역을 거부해도 되겠군요.

원론적으로 따지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생명이기에 동일하게 취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무언가를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을 취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동물보다는 식물을 , 그리고 식물을 먹을 때도 배부른 것이 아니라 내가 최소한으로 필요한 양만 섭취하는 겁니다.
불가에서 공양을 할 때 발우공양라고 해서 그릇에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작은 양념조차도 결국은 자연에서 온 것이기에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https://namu.wiki/w/%EB%B0%9C%EC%9A%B0%EA%B3%B5%EC%96%91

님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다만 박노자 같은 글쟁이의 글이 자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맥락에서 불교를 언급하게 되었던 겁니다.

현실은 박노자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뒤엉켜 있고,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데, 박노자의 글은 이런 점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