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기독교를 애증한다

in #kr7 years ago (edited)

나는 기독교를 애증한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신부전증을 완치하려면 건강한 신장을 이식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신장은 몸의 노폐물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 신장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독소가 체내에 차곡차곡 쌓인다.

신장의 기능을 인공적으로 대신하는 ‘투석’ 요법을 하면 10년 정도 살 수 있다. 꽤 지난 일이니까, 지금은 생존 기간이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투석은 신부전증 환자의 생명을 천천히 갉아먹는다는 것이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본 나의 결론이다. 물론 그마저 없었다면 더 일찍 돌아가셨겠지만. 다음은 투석에 대한 설명이므로 뛰어넘어도 좋다.


나는 의학적 지식이 없으므로 투석의 겉핥기만 기술한다. 투석에는 복막투석과 혈액투석,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머니는 복막투석을 오래 하셨다. 나중에 배에 고름이 차서 혈액투석으로 바꿔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한 고생은 차마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의사는 복막투석 환자의 배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한다. 이 호스를 통해 하루 4번 상당한 양의 약물을 넣고 뺀다. 환자 스스로 집에서 한다. 들어가는 약물은 무색투명하고, 나오는 약물은 싯누렇다. 소변 색이다. 약물을 넣어 몸속의 노폐물을 거르는 것이다.

혈액투석은 일주일에 3번 병원에서 한다. 혈액투석 환자의 손목 혈관을 뚫고 호스를 연결한다. 병원에 가면 장롱만 한 기계가 있다. 손목의 호스를 이 기계에 연결한다. 노폐물이 쌓인 온몸의 피가 기계 안에 들어가 깨끗해져 다시 몸속으로 들어온다. 너덧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가서 투석하는 대신 기도원에 갔다. 목사들은 기도하면 낫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성경 속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보험과 아들의 보험 따위를 깨서 교회와 기도원에 냈다. 아버지도 순진하고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2~3년쯤 교회와 기도원을 오가면서 버텼다. 그러다 집에서 의식을 잃었다. 어머니를 구급차에 태웠다. 병원에서는 왜 이지경이 돼서 왔느냐고, 바로 투석을 안 하면 죽는다고 했다. 심장도 망가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투석을 했다. 이미 심장이 상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신장이식은 못 받았다. 심장이 수술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가장 큰 잘못은 어머니에게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므로, 어머니를 동정하고 목사들을 미워한다. 제대로 된 목사라면 그때 어머니를 설득해서 병원에 가게 해야 했었다고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 투석을 시작하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때는 그게 우울증인지 본인도, 가족도 몰랐다.

어머니의 병세는 완만하게 나빠지다가, 한 번씩 급격하게 악화하곤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비슷한 주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절망에 빠졌다. 그래도 성격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버텨냈다.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신앙의 힘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만은 기독교에 진심으로 고맙다.
 
어머니는 2011년 1월 새벽 의식을 잃은 채로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면 어머니는 분명히 “아들 늘 하나님 의지하고 교회 열심히 다녀”라고 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나는 이제 거의 신앙을 잃어버렸다. 신을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을 아버지께는 아직 못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열심히 교회에 나가신다. 가끔 술에 취하면 “나중에 천국 가서 OOO를 만날 거야”라고 하신다.

아들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아마 손주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손주들을 주일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신다. 나는 성경에서 몇몇 에피소드를 추려낸 동화책을 샀다. 가끔 큰아들에게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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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이런 글엔 그냥 댓글 안 달고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댓글 남깁니다. 어머님께서 원하시던 대로 해보시고 돌아가셨으니 그 자체로 그냥 받아들이시고, 어머님께서는 다른 세상에서 웃는 모습으로 기자님을 지켜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님과 가족들의 행복을 빕니다~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마음은 아프시겠지만 너무 마음 아파 마시고 어머니께 더욱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보여 드리세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병원을 짓고 약을 개발하고 의사들을 보내셨음을, 저런 기도원의 목사들이 깨닫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내게 집과 같은 곳이었지만, 항상 안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위로하고 싶네요. 위로 받고 싶고요.

위로 감사합니다. 아마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 위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목사들은 병원 안가는가 ㅡㅡ
지들은 감기만 걸려도 병원 가믄서 큰병 걸린 어르신 한테는 병원 가란 소리조차 안했는지 ㅠㅠ
화내서 미안합니다 ㅠㅠ 첨 방문하는데 결례를 범했네요

아닙니다. 제 심정이 sweetpapa님의 심정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픈 글이네요.
어머님 께서는 원하시는 곳 가셨을 거라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끝 무렵에 너무 힘들어 하셨기 때문에 차라리 편안해지셨을 거라 생각하면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슬프네요 ㅜㅜ. 신앙의 힘으로 버티기엔 힘든일이 아니었을까싶네요. 마음이나 정신적으로 힘들땐 도움된다고 교회나 성당 다니는 친구들은 얘기하더라구요. 전 교회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 또한 믿고 싶어도 믿을수 없을때가 많아요 ㅡㅡ. 그래서 권유가 들어와도 마음이 잘 안가더라구요.

투석 시점이 너무 늦어버린 것은 화가 나지만, 절망 속에서도 기댈 곳이 있으셨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신앙을 갖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아... 재미난 글일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당하네요. 사촌오빠가 어머니(저의 고모)를 말도 안되게 잃고 한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으로 시작하는 기도였어요. 오빠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직도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저라면 어떨 지 모르겠어요. 애증. 애증이라는 말 밖에는...

본의아니게 우울하게 해드린 건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쌀쌀한데 햇빛은 또 쨍해요. 좋은 날 되시길 바래요.

안녕하세요. afinesword님의 마음이 전해져서 댓글 남깁니다.
지난 날의 그 아픔도, 아쉬움도 느껴지구요..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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