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네임챌린지 | 풍류판관

in #kr6 years ago (edited)

@kyunga 경아님의 지목을 받고 네임챌린지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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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팀잇 닉네임을 어떻게 선정하였는지?



이 닉네임은 헨릭 시엔키에비츠가 지은 소설 「쿠오바디스」에 등장하는 페트로니우스의 별명입니다. 로마 네로 황제 시절의 실존 인물로 이 글 마지막 파트에 제가 발췌한 내용처럼 인생을 아주 잘 즐기다 가신 분입니다. 고아한 판관, 우아의 판관 등으로 번역한 사례도 보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풍류판관이 가장 잘 된 번역으로 생각되는군요.

굳이 이 필명을 쓰기 시작한 건, 현실의 제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었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풍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습니다. 스무살 언저리의 저는 풍류판관보다는 파시스트 돌격대나, 붉은 셔츠단 따위가 아마 필명에 훨씬 어울렸을 겁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만 늘 몰입되어 있는 그 진지한 이미지가 싫었답니다. 대신 전 분위기 전반에 여유가 넘치고 어딘가 뺀질거리는 나이스 미들이 되고 싶었어요. 그림으로 형상화하자면 약간 아래 같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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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법조인이라는 제 직업과 풍류'판관'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필명은 학부 때부터 썼으니까요. 나라의 녹을 먹고 있다면 아마 스팀잇에서 이런 글들은 안 쓰겠죠. 실력이 없어서 판검을 못했습니다만 아마 어떻게 됐어도 지금쯤은 나오지 않았을까 싶네요.



2. 본명을 알려주세요.



이름을 알려 드리는 건 제 모든 걸 알려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로앤비라는 앱에 변호사 이름치면 신상정보가 전부 나오거든요. 전 앞으로 여기 읽기 거북한 이상한 글들을 잔뜩 쓸 생각이라...... 양해 부탁 드립니다.



3. 닉네임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으로 바꾸고 싶으신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프리트라는 필명을 써보고 싶었어요. 이프리트(عفريت)란 아랍 지역 민담 설화에 등장하는 불의 정령입니다. 흔하 알고 있는 램프의 지니 역시도 원래는 이프리트에요. 뭔가 불꽃 같은 글을 써보자 이런 생각이 있었죠. 스팀잇이니까 다른 곳 필명과는 다른 걸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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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묘하게 제 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많더군요. 그래서 그냥 원래 필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다섯 분을 지목해주세요.



제가 자주 교류하는 분들은 대부분 이 챌린지에 참여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일이 이웃분들 블로그에 들어가 이 분이 참여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확인하는 건 그 역시도 일이라...... 그냥 아래 말로 갈음하겠습니다.

스팀잇 이웃 분들 모두 사랑해요!



여기서 끝내면 좀 아쉬우니, 제 필명의 실존 인물인 페트로니우스의 최후를 묘사한 소설 「쿠오바디스」의 한 챕터를 올릴까 합니다. 저도 저렇게 사랑하는 여자 품에서 폼나게 죽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쿠오바디스 제 74장


페트로니우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틀 후 평소에 친근감을 나타내던 소(小) 네르바가 자신의 해방노예를 보내 궁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알려왔다. 페트로니우스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다음 날 밤 백인대장이 페트로니우스를 찾아와서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쿠매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하고 나면, 며칠 후에는 다른 사신이 와서 죽음의 선고를 알리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전갈을 가져온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기 전에 꽃병을 하나 줄 테니 그것을 주인에게 갖다주어라. 그리고 이렇게 사형 선고를 미리 알려줘서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주게."

별안간 그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마치 묘안이 떠올라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혼자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페트로니우스의 노예들은 쿠매에 머물러 있는 모든 조신들과 그 부인들을 '풍류 판관'의 화려한 별장에서 열리는 성대한 연회에 초대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자신은 오후 내내 서재에 틀어박혀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나서 정성껏 목욕을 했다. 하인의 시중을 받아 꼼꼼하게 주름 잡은 토가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는 탐미주의자의 안목으로 식당으로 들어가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본 뒤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에는 에게 해의 섬에서 그리스 소녀들이 향연에 쓸 장미 화관을 만들고 있었다. 페트로니우스는 태평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하인들은 이 연회가 여느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그는 일을 잘한 하인에게 평소보다 더 후한 상급을 내렸다. 연주자와 가수들에게도 미리 보수를 듬뿍 지불하였다.

잠시 후 페트로니우스는 정원에 서 있는 너도밤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에우니케를 불렀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든 햇빛이 땅 위에 얼룩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에우니케는 눈부시게 흰옷을 입고 머리에 작은 샤프란 가지를 꽂고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카리스의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페트로니우스는 그녀를 자기 옆에 앉히고 관자놀이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애정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우니케, 알고 있느냐? 넌 이미 오래 전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에우니케는 하늘처럼 푸른 눈을 들고 몰랐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언제까지나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그럼 이 사실도 모르겠구나."

페트로니우스는 말을 이었다.

"이 별장도, 저기서 화관을 만들고 있는 하인들도, 이 별장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도, 저 들판도, 양떼도, 오늘부터 다 네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에우니케는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서며 불안한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주인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고는 다시 페트로니우스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페트로니우스는 쓸쓸한 목소리로 짧은 한 마디를 던졌다.

"이제는 끝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도밤나무 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페트로니우스에게는 에우니케가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처럼 보였다.

"에우니케, 나는 평화롭게 죽고 싶다."

여자는 슬픈 미소를 머금고 페트로니우스를 쳐다보며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저녁이 되자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학식있는 사람들로, 페트로니우스의 연회가 지루하고 야만적인 궁전의 향연과는 비교가 안되게 우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회가 풍류판관의 마지막 향연이라고는 다들 생각치 못했다. 요사이 페트로니우스의 머리 위에 황제의 증오와 분노가 먹구름처럼 드리워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그라면 즉흥적인 기지와 재치, 또는 대담한 언변으로 그 위기를 능히 헤쳐 나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처한 신변 위기를 실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그의 명랑한 얼굴과 밝은 미소는 손님들의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

시간이 되자, 머리를 황금빛 그물로 감싼 소년들이 손님들의 머리 위에 일일히 장미 화관을 씌워주었다. 식당에는 제비꽃 향기가 가득했고, 오색찬란한 이집트 산 유리 촛대 위엔 촛불이 춤추고 있었다. 손님들이 긴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자, 그리스 소녀들이 달려와 그 발에 향유를 발랐다. 저택엔 은은한 아테네 음악이 흐리고 있었다. 식탁을 그득하게 매운 음식들은 정성을 기울여 만든 것으로, 천하의 미식가라해도 감탄할 수 밖에 없게 탁월한 맛을 내고 있었다.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온 방에 흘러넘쳤다. 손님들은 황제의 연회와 달리 이곳에선 아무런 강요도 위협도 없음을 느끼고 마음을 놓았다. 황제의 앞에서는 그의 노래나 시에 대한 충분한 찬사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찬양하는 법이 비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휘황한 등불 아래 담쟁이 덩굴을 감은 술 단지, 오랫동안 눈 속에 파묻어 놓아 차게 식힌 포도주, 혀끝에서 녹는 산해진미 등 무엇 하나 손님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는 활기가 넘쳤고 쾌활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페트로니우스는 에우니케와 나란히 앉아 최근 로마에서 일어난 일, 시중에서 떠도는 소문들, 이혼이나 연애 사건이라던지, 검투사에 관한 소식, 또 아트락투스와 소시우스 서점의 새로운 서적들에 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의 화술은 삼라만상을 비추는 햇빛과도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철 미풍처럼 청량하게 들렸다. 시간이 흐르자 페트로니우스는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고, 이에 키타라의 맑은 선율과 함께 무희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얇은 의상 밑으로 분홍빛 몸매를 언뜻언뜻 내비치며 교태를 부렸다. 음악이 끝나자 이집트의 점술사가 등장하여 수정 구슬을 보며 손님들의 앞날을 일일히 예언해주었다. 여흥이 막바지에 이르자, 페트로니우스는 앉아 있던 시리아산 방석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여! 조금 전 신들의 가호와 나의 무사 안녕을 위해 건배를 올린 그 술잔을 선물로 주겠으니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페트로니우스가 손님들에게 선사한 술잔은 어느 것이나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대가들의 솜씨로 정교하게 조각된 예술품이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 높여 감사와 칭송의 말을 했고, 어떤 사람은 주피터도 이처럼 훌륭한 선물을 내린 적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값비싼 물건이라 받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있었다. 페트로니우스는 무지개 빛깔로 영롱하게 빛나는,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진귀한 무라 잔을 높이 쳐들며 말했다.

"나는 키프로스의 여신을 찬미하는 뜻에서 이 무라 잔으로 술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그 누구의 입술도 이 잔에 닿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손이 이 무라 잔을 들고 다른 여신에게 축배를 하는 것 역시 원치 않습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그 비싼 무라 잔을 바닥에 던져 박살냈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던 손님들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정다운 벗들! 오늘 밤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동요하지 마세요.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노쇠해지는 것이 인생의 서글픈 섭리입니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솔선수범과 함께 충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곧 보면 아시겠지만 노령과 병마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단 우리가 먼저 끝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다가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자유의지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몇몇 사람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흥겹게 즐기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여신처럼 아름다운 연인을 옆에 두고, 화관을 쓴 채 이대로 눈을 감고 싶습니다. 나는 이미 황제에게 작별도 고했습니다. 작별인사를 어떻게 썼는지 다들 들어보시겠습니까?"

페트로니우스는 자줏빛 방석 밑에서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황제여, 나는 당신이 내 방문을 몹시 기다리고 있고, 나의 우정을 믿으며 밤낮으로 나를 그리워함을 잘 알고 있다. 또 나를 근위대 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했던 것도, 그대가 독살하고 탈취한 자들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나를 보내려고 했던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디 용서라라. 근위대 사령관은 사양하겠다. 지옥의 신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그대의 어머니와 부인, 동생, 세네카의 망령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대의 곁에 머물 수가 없다.

친애하는 황제여, 인생은 위대한 보고이며, 나는 그 속에서 많은 주옥들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선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단하지 마라. 나는 그대가 어머니와 부인, 형제의 목숨을 빼앗고, 로마에 방화하고 무수한 사람들을 암흑으로 보낸 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황제여, 나는 꿈에도 그럴 생각은 없다. 죽음은 누구나 면할 수 없고, 당신에게 그 이상의 처사를 기대한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불쌍한 풋내기 시인아, 내가 어떻게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그대의 설익은 시를 들으며 귀를 혹사시키고, 춤을 추느라 버둥거리는 그대의 말라비틀어진 흉한 다리를 보아야 하겠는가? 그대의 연기, 노래, 시궁창의 삼류 시인이 쓴 것 같은 그대의 시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워 몇 번이나 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곤 했다. 그대가 시를 읊을 때 온 로마는 귀를 막았고, 사람들은 그대를 비웃었다. 난 더 이상 그대 옆에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싶진 않다.

개가 짖는 소리와 그대의 노랫소리가 닮았다 해도 그 개 소리는 내게 별로 불쾌하게 들릴 것 같지 않다. 나는 개의 벗이 아니니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황제여, 부디 만수무강하기를. 그러나 노래는 하지 마라. 학살해도 좋다. 그러나 시는 쓰지 마라. 독살해도 좋으나 부디 춤은 추지 마라. 불을 질러도 좋지만 제발 그 서투른 악기 연주는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의 벗이자 풍류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주는 마지막 충고이다."

손님들은 두려운 나머지 몸이 모두 굳어버렸다. 그들은 네로에게 이 편지가 로마 제국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충격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필히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 편지의 낭독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페트로니우스는 이 모든 것이 악의 없는 농담이라는 듯 호탕하고 밝게 웃었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유쾌하게 즐기시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이 편지의 내용을 들었다고 사람들 앞에서 밝히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는 지옥의 강을 건널 때 카론에게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만."

페트로니우스는 그리스인 의사에게 눈짓을 하고 팔뚝을 내밀었다. 노련한 의사는 순식간에 그 팔을 황금빛 실로 묶고 손목의 정맥을 끊었다. 피는 방석을 적시면서 페트로니우스의 머리를 안고 그 위에 몸을 숙이고 있는 에우니케에게로 흘러 내렸다. 에우니케는 페트로니우스에게 말했다.

"주인님, 제가 이대로 주인님을 떠나보내리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신들이 제게 불멸의 삶을 준다해도, 황제가 온 세계의 통치권을 준다 해도 저는 다 싫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뒤를 따르렵니다."

페트로니우스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몸을 일으켜 자신의 입술을 에우니케의 입술에 포개었다.

"그래, 그럼 너도 나와 함께 가자."

그러고는 덧붙였다.

"나의 여신아, 너는 진심으로 날 사랑했구나."

에우니케는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장밋빛 팔을 의사에게 내밀었다. 잠시 후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에서도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면서 두 사람의 피가 하나로 섞여 흐르기 시작했다. 이때 키타라의 반주에 맞추어 또다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합창단은 먼저 하르모디우스의 노래를, 다음에는 아나크레온의 노래를 불렀다. 아나크레온의 노래는 시인 아나크레온이 아프로디테의 아들 큐피드가 나무 밑에서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따뜻한 집으로 데려가서 날개를 말려주었는데, 배은망덕한 큐피드가 도리어 자기 활촉으로 시인의 가슴을 찔러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며, 그리하여 시인이 마음의 평화를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서로 몸을 기대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페트로니우스와 에우니케의 모습은 마치 한 쌍의 신처럼 아름다웠다. 두 사람 다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안색은 점점 핏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페트로니우스는 술과 음식을 더 내오라고 명하고, 연회석상에서 늘 그렇듯이 가까이 있는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이윽고 그는 의사를 불러 잠시 정맥을 다시 연결하라 이르고, 졸음이 밀려오니 타나토스가 자기를 영원히 잠재우기 전 잠깐 잠을 자두겠다고 말했다.

페트로니우스는 곧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눈을 떠보니, 흰 백합처럼 창백해진 에우니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그는 에우니케의 머리에 방석을 받쳐주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정맥을 다시 끊으라 분부했다.

페트로니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내자 가수들은 아나크레온에 관한 또 다른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잘 들리도록 키타라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연주되었다. 페트로니우스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끝날 무렵, 그는 다시 한 번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인정하십시오. 우리들이 죽고 나면 그와 동시에 사라지게 될 것이니. 그것은......"

그는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그의 팔은 있는 힘을 다해 에우니케를 부둥켜안았고, 머리는 베개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쌍의 조각상과 같았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자기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와 '아름다움'이 영영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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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쿠오바디스. 네로여, 미치광이같은 황제여! 이 글을 보니 쿼바디스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군요. 풍류판관의 유래 잘 봤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이군요.

제가 알고 있는 캐릭터 중에서 제일 멋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랭킹으로는 셜록 홈즈보다도 위에요 ㅋㅋ 아마 재밌게 읽으실겁니다 ^^

가즈아가 달렸는데 반말해도 되는건가 마는건가
암튼 형 페트로니우스 멋지단 얘긴 예전에 했고ㅋㅋ 소 네르바는 영문판에선 그냥 young Nerva였던거 같은데 문맥상 나중 황제가 된 걔겠지?암튼 오랜만에 요 자살장면 잘 봤음ㅋ

반말하려무나 ㅋㅋ
소 네르바가 young Nerva구나 영어 표현 어색하다 ㅋㅋ

이 장면은 불멸이여 영원히 읽힐듯

소 네르바가 더 어색해 형

보통 대 네르바가 있을 경우에 구분하려고 그렇게 부르는거지. 근데 그럴 경우엔 영어가 다름.
땡땡땡 the older, 땡땡땡 the younger 보통 이런 식임...young Nerva면 그냥 젊은이다 이 소리 ㅋㅋ

2000년도쯤인가 폴란드에서 영화화된거에선 배우도 멋지더라 ㅇㅇ

뭐랄까 the younger 도 아니고 young 네르바를 소 네르바로 번역했다는거군 ㄷㄷ
그런 영화도 있었구나 ㅋㅋ
근데 왜 스팀잇 포스팅에 조회수가 안 보이지? 나만 그런가? 버그인가

안 보인다고들 하더라고...
2001년 영화네. 그냥 아재인데 뭔가 영화상으론 멋있었음. 옛날 영화에선 별로였고...

마음의 불꽃이 느껴지는 글인데요?
불꽃같은 글 기대해도 되겠죠? ㅋㅋ
한자어라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불꽃이라... 글쎄요 ㅎㅎ
이제는 그런거 싫어요 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대륙에서 비롯된 닉네임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ㅋㅋㅋ 좋은꿈 꾸세요..!!

대륙이라 함은 중국인거 같은데 포청천과는 무관합니다 ㅎ 좋은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풍류판관님을 보면 법조인임에도 불구하고 신화나 타로카드와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음이 느껴집니다

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ㅎㅎ

ㅎㅎ 부족한 글 오랫동안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이 밥 굶기 좋으니 스팀잇이라도 열심히 해야죵

저도 늘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읽기 거북한 이상한 글들을 잔뜩 쓸 생각이라

ㅋㅋ 닉네임 첼린지랑 가즈아 잘 어울려^^
판타지 게임에서 본 이프리트가 저쪽 지역 말이었군.
판관형,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글 잘 보고 있어~

사실 나도 게임하다닥 알게 됐음.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ㅋㅋ 고마워 형 직업에 안 어울리는 글들 읽어줘서 ㅋㅋ

아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이름이 형 입에서 나오다니!! 난 2 음악이 제일 좋더라구. 물론 개임성은 3가 제일이지만. 뭔가 퐌타스틱, 동화같은 느낌과 Ost는 2가 제일 나아.

나는 3가 제일 나았지 ㅋㅋ 멀플하는 재미 아 그거 동생이랑 정말 끝내주게 재밌게 했었는데 하지만 형이 말해준 김에 2 ost도 좀 들어봐야겠다. 사실 아기자기한 맛은 2지

영화로 보는 것보다 글의 묘사는 비교할수 없을 많큼 섬세하고 풍부하군요. 풍류판관이란 이름이 처음부터 머리에 쏙 들어왔는데 그토록 멋을 아는 이의 별명이었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ㅎㅎㅎ 그래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아서 아마 감히 제가 필명으로 쓸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풍류판관님.. 어디로 가십니까? ㅎㅎ

어차피 멀린님 같은 분들이 스팀잇의 십자가를 지고 계시니 전 먹스팀 포스팅하러 맛집이나 가겠습니다

마법사 때려치우고 법사하면서 먹스팀 하고잡습니다. ^^

먹... 먹사
아이쿠 죄송합니다 썰렁한 농담 ㅋㅋㅋ

개인적으로 '로앤비'는 참 무서운 데이터베이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연과 지연의 정보를 모아놓아, 실제로 유추하거나 강화시키는데 쓰이곤 하니까요-

그래도 '판관'이면 상당히 잘 지어졌고 준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판단이라는 것이 결국 결을 명확히 하는 작업일테니까요.

그거 만드신 분이 아마 조우성 변호사님일거에요 ㅎㅎ 아주 필력이 훌륭하신 분이죠.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가 그런 거 잘 만드시더라고요 ㅎㅎ 물론 무서운 앱인거 맞습니당

개인적으로 제 필명에 대한 만족도는 100%는 아닙니다만 한 번 보면 기억은 잘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ㅎㅎ 좋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닉네임 챌린지를 진행하신 것을 이제서야 보내요^^
이프리트도 강렬하게 느낌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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