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앞부터 서비스 해주세요.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잘 타던 중고차가 있었는데 식구가 늘면서 중고차를 처분하고 조금 더 큰 신차를 구매했다. 그 신차가 이제 중고의 길로 들어서려한다. 구매 36개월을 넘기려 하는 것이다. 12개월마다 무상 ‘점검’을 받을 수 있었고 벨트 버클 같은 자잘한 소모품은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정비소를 찾아가면 군소리 없이 바꿔주곤 했는데, 이제 엔진이나 동력 등 중요한 부품을 제외하고선 보증기간이 끝나는 것이다. 괜히 차에 잡음도 좀 나는 것 같고, '무상보증수리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꼭 한 번 정비소에 들러 점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의 자세'라는 것을 후배로부터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은 터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직영정비소로 향했다.


01.jpeg

내 차는 아니지만 가슴이 저며온다.


후배의 팁에 따르자면 요즘 출시되는 배터리 일체형 휴대폰은 개통 12개월째가 되면 AS센터에 가서 배터리를 교체 받는 것이 좋다. 교체형 제품에서는 소모품인 배터리가 어찌되든 대부분 소비자 과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배터리 일체형 모델은 1년 내 1회에 한하여 배터리 효율이 낮으면 무상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체형 배터리 2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해도 18개월쯤 사용하면 성능저하를 실감할 수 있는데 내장형 1개로 사용하는 경우엔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부모님을 모시고 휴대폰 AS센터에 배터리 교체를 요구하러 갔다. 수리기사가 아버지의 폰을 컴퓨터에 연결하니 ‘배터리 불량, 교체요망’이라는 메시지가 떴고 어머니의 폰은 ‘정상범위로 보이지만 고객님께서 불편하시다 하니 특별히 교체해 드리겠다’며 결국 두 대 모두 새 배터리로 교체받은 적이 있다. '휴대폰 뒷부분의 배터리를 교체했으니 뒤프터 서비스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만 했다. 입 밖에 냈으면 어머니가 등짝을 쳤을지도 모른다.

처음 차를 샀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고급스러웠고 놀라웠다. 방향지시등을 켤 때 나오는 소리조차 띡↗땍↘띡↗땍↘같은 경망스러운 소리가 아니라 뚝-뚝-뚝-하는 중후함을 뽐냈고 분기점을 지날 때마다 네비게이션은 비행기가 이륙한 뒤 기장이 방송하기 직전에 나는 소리, 띵-을 멋지게 재현해주었다. 시동이 켜진 줄 모르고 키를 한 번 더 돌리는 일도 가끔 있었다.

어느덧 그 편안함이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36개월이 가까워 오니 공회전 때의 엔진소리가 2부 화성으로 나뉘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의 엔진소리는 더 고음으로, 소프라노 쪽으로 음역을 바꾸어 조금 듣기 싫은, 까랑까랑한 웅-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낮은 음역대의 부재가 허전해진건지 더-더덜-덜덜덜-흐 더더덜- 하는 불규칙한 비트박스를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겨울, 어느 눈 내린 다음 날에 시동을 켠 직후 창문을 내리는데 이게 눈 때문에 얼어있었는지 ‘뚝’하는 소리가 한 번 나더니 이후로는 저속운행 때 창문도 달달달 소릴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듣지 못하는 내 차의 비명섞인 노래를 들으며 운전을 하게 되었다. 우↘웅↗! #덜덜덜- 흐↘달달달- 우→♭덜덜♩


02.jpeg

1층은 고급, 대형 차종. 내 차를 찾으려면 3층까지 가야한다.


그래서 찾은 직영정비소, 소음관련 사항은 시운전이 필요하니 정비 시간을 길게 달란다. 총 소요 시간은 두어시간. 차를 맡겨놓고 고객라운지에서 안마의자의 시중도 좀 받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티비도 좀 보고, 와이파이 연결해서 스티밋 글도 좀 보고나니 지겨워졌다. 꼴랑 30분이 지났다. 근처 시장, 아파트 단지를 산책삼아 걷고 내가 사랑하는 국밥도 한 그릇 먹고 내가 싫어하는 감기도 얻어서 오고. 라운지에 다시 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정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차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손님이 불편해하시니 특별히 엔진미미, 미션미미라는 부품을 교체했다는 것이다.

차를 찾으며 살펴보니 내 머리통 절반만한 부품 두 개가 밖에 나와있다. 그걸 빼 내고 신품으로 교체했다고 했다. 앞부분의 엔진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뒷부분의 머플러까지 살펴봤는데 지금 교체해야할 부품은 없다고 했다. '차량 앞부분의 부품을 교체했으니 이건 말 그대로 아프터서비스로구나' 혼자 피식 나온 웃음은 덤이다. 그래서 '아프터 서비스 좋네요'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시동을 걸어 나가는 길에 엉덩이와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여전히 내 차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차량 진동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새 차의 그 정숙한 느낌은 이제 영원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뭔지는 몰라도 무료로 뭔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정비소를 떠났다.





Sort:  

언어유희가 대단하네요 ^^ 앞부터 서비스 ㅋ

이런 거 재미있어 하시면 아재인증인데요.

I'm sorry I was hacked! I have deleted the spam and working on clean up! xo

OK, I see.

Ka ipeupok lom

I don't understand your language. can you write it in English again?

아재요...

글쓰는 솜씨가 있으신건 알고있었지만....ㅎㅎ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시는 단계이신줄은 몰랐습니다.
재미나게 읽었네요. 그래요..저 아재라서요 ㅠ.ㅠ

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어 하시는 분이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주셔서 더 감사합니다ㅜㅜ

헉 ㅋㅋ귀에 딱지가 앉도록이 아닌 귀에 피가 나도록 ㅋㅋㅋㅋㅋㅋ
아프터서비스 뒤프터서비스 ㅋㅋ넘 웃겨요 ㅋㅋㅋ
대구님 차의 비명 섞인 노래는 효과음 지원이 되지 않아 상상은 잘 안 가지만 ㅋㅋ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아요 ㅋㅋ

글 써놓고 차를 몰아봤는데 제가 저기 써놓은 소리하고는 좀 다르더라고요ㅎㅎ나름 기억을 더듬어, 가장 정확하게 옮기려고 노력했는데.

아재 ㅎㅎㅎ
뒤프터 서비스라니 ㅎㅎ
아이폰도 그렇게 해주면 좋을텐데요.
국산폰은 다 그렇게 해주나요?^^

예전에 아이폰 쓰는 친구에게 듣기로 아이폰도 1년 이내에는 1회에 한해서 무상으로 리퍼가 된다고 하던데.. 그게 삼성처럼 쉽게 해주지는 않으려나요? 삼성쪽의 배터리 판단기준으로는 제가 일상적으로 쓰는 정도(살짝 웹서핑 폰 중독이긴 합니다)만으로도 교체 판정이 나더라고요.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우↘웅↗! #덜덜덜- 흐↘달달달- 우→♭덜덜♩이라뇨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슬픈건.. 정비를 받았는데도 그 소리가 나고 있다는 겁니다. 정비사의 판단으로는 정상이랍니다. 늙으면 어쩔 수 없는 걸까요.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5
JST 0.028
BTC 58192.51
ETH 2295.28
USDT 1.00
SBD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