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시카고의 평균적 일상

in #kr-travel8 years ago (edited)





IMG_2379 복사.jpg

밀레니엄 파크에 앉아 그린 펜 드로잉 / 2013



IMG_2751 복사.jpg




3달동안 미국에 머무르게 될 것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나에게 잠 잘 곳을 제공해줄 친구의 집이 여기 있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였다. 사실 미국의 정치적인 이미지 때문에 미국 자체에 대해 별로 좋지 않는 시선도 있었다. 또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미국이란 그저 문화도 유적도 역사도 빈곤한, 한마디로 별 기대하지 않았던 나라였다.


실제로 이 곳에 도착해서 보름 정도는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삐딱한 시선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어딜 가나 너무 과할 정도로 많다는 생각이 드는 Security들. 친구는 그들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 사회는 엄청난 불안이 잠재되어 있는 장소! 라고 밖에 생각이 들진 않았다. 또, 건축으로 유명하다는 시카고의 다운타운을 걸어다녀보아도, 기껏해야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는 타워팰리스같은 삐까뻔쩍한 현대식 건축만 많은 빌딩숲에서 무엇을 느껴야하나..., 전철 역에서 맥도날드 모자와 코카콜라 티셔츠를 입은 어느 슈퍼뚱땡이를 보며 역시 정크푸드의 나라... 이것이 내가 미국과 시카고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IMG_2273 복사.jpg



보름이 지나자 나의 생각들은 점점 바뀌어 갔다. 그 변화의 시점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잠재력과 수준을 어느정도 몸으로 체감한 순간부터였다. 그것은 정확히 음악 때문이었다. 길거리나 전철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트리트 뮤지션들을 지속적으로 마주치며 그들의 진지한 표정과 자세들, 무엇보다도 수준급 실력에 매료되었다. 시내를 걸어가다가도 언제 어디서든지 그들은 충분히 내 넋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그것이 특수한 장소에서 우연찮게 만날 수 있는 퍼포먼스 혹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카고의 평균적 일상' 이었다는 점이다.


도처에서 목격되는 이 수준높은 음악의 '평균적 일상'은 그대로 도시의 공공문화시설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대도시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밀레니엄 파크'이다. 미술인들에게는 유명한 인도출신의 작가 애니쉬 카푸어의 거대한 콩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된 곳으로, 이미 이 곳은 시카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거대한 음료수 캔을 가위로 잘라붙여 디자인한 듯한 구조의 엄청난 크기의 야외공연장이 있다.


IMG_2996 복사.jpg




이 곳에서는 매일 저녁 무료공연이 열리는데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롹 밴드, 재즈, 교회합창대회, 클래시컬 오케스트라, 일렉트로니카, 심지어 이런 공공장소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법한- 전혀 대중적이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익스페리멘탈 뮤직까지.. 공연의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공연이 없는 시간에 시카고 시민들은 공원 이곳저곳 잔디밭에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마음대로 나뒹굴고 있었으며,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에는 관객석과 그 넓은 잔디밭은 정말 꽉꽉 채워졌다. 매일같은 광경은 그 자체로도 무언가 감동적인 인상을 주었다.


이렇게 도시 한 가운데에 잔디 위에서 마음대로 나뒹굴수 있는 릴렉스하고 한가한 거대한 공공장소가 있다는 것, 저녁이면 가족과 와인한잔 가지고 와서 잔디밭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수준급 무료공연을 볼수 있다는 것은 서울과 비교해 보았을 때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점이었다. 다만 이 거대한 공공장소가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성격인지는 아직 확인해보질 못했다. 만약 그것만 충족된다면 밀레니엄 파크는 시민들을 위한 도시의 가장 완벽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IMG_2759 복사.jpg




유럽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세 달동안 느낀 시카고에 대한 느낌은 대도시임에도 혼잡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고요하한 도시, 음악의 도시, 미술의 도시, 또 예술을 대하는 일반시민들의 평균수준이 높은 도시이며, 아티스트로서 혹은 정말 누구나 한번쯤은 살고 싶어할 만한 도시라는 점이다. 극찬을 했지만 편협한 단상에 불과하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좋은 것만 보고 느끼려는 여행자의 신분이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thelump




최근 포스팅

Sort:  

저는 작년에 유럽을 다녀왔는데 유럽도 가드가 많습니다. T.T 너무 좋은 곳이네요 시카고 예술의 향기가 느껴 지는 곳, 제게는 파리가 그랬습니다. 단 낮에 본 에펠은 정말 별로 였지만요 ㅎㅎㅎ 밤에 다시 봤을땐 아름다웠스비다. 반짝이는걸 너무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

남은 한주도 즐겁게 보내십시오 @thelump

파리도 참 아름답지요.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걷기에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아.. 추억.
제가 2013년 8월에 귀국했으니깐...
어쩌면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제가 우울할때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신랑을 데리고 밀레니엄파크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결혼 전엔 친구들이랑 콘서트도 보고 그냥 놀러다니기도 하고... 그랬네요.
요즘은 날이 좋았다 추웠다 하겠지만... 또 놀러가고 싶네요.

6,7,8월 정말 매일매일 축제가 열려서 정신없이 밖에 싸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한 번은 같은 장소에 있었겠네요 ㅎㅎ 반면 겨울은 지옥같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아 다행일 정도로요 ;;

ㅎㅎ 캐나다보단 안추울것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길긴 길더라구요. 11월 부터 4월까지 눈이오는...
그래도 반짝있는 여름과 가을때문에 버티곤 하죠. 그땐 겨울을 잊어버린답니다. 다시 11월이 되서 벗어나지 못한거에 후회를 한다는... ㅎㅎㅎ

캐나다가 추위의 끝판왕이긴 하더군요. 이번 서울 역시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게 추웠습니다. 추운건 너무 싫습니다 ㅎㅎ

와 이런 야외음악당 부럽네요.가서 들으면 느낌이 어떨지 궁금합니다.규모는 좀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서서히 이런 영향을 받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되요.동대문 DDP나 시청 앞 이나 광화문 광장에서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문화가 생겨나고 있죠. 더 활성화 되서 우리도 이런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잘 봤습니다

맞아요. 곧 광화문 재즈 페스티벌도 열리고.. 거리예술 축제 등등 불과 몇 년 사이에 서울 도심에도 축제가 엄청 많아졌어요. 그래도 부러운 것은.. 아무데나 누울 수 있는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저 커다란 잔디!!! 그게 부럽긴 하네요 여전히.

다양성이 부럽네요.ㅎㅎ

네 언제 한번은 저 커다란 공연장에 아티스트 한 명 나와서 @doidoi-sound님이 작업하시는 텍스쳐와 비슷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실험적인 음악가에게도 기꺼이 무대를 내어주는 도시의 품격이 느껴졌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들을 가져오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것 같긴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만 가져오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어색한 부분이 많은듯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은 그런 문화에 적응해 가는듯 합니다.
몇년전 한국중앙박물관 광장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 댄스파티를 즐겼던 사진입니다.^^

댄스파티 엄청 흥겨워 보이네요.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서는 밖에 나가길 좋아하지 않아 방 안에서만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지에서는 계속 밖으로 나돌게 되잖아요. 정작 우리나라에 어떤 행사가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요 ㅎㅎ

잘 읽었어요
시카고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잔디 밭에 공연장 사람들 행복한 표정...
한번 가보고 싶네요~~

간다면 여름에 가시길요. 시카고는 여름입니다.

저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급변경 후
7일간 뉴욕에서의 시간은 딱! 이랬던것 같아요.
역시 미국...실망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세밀히 보게된 3개월의 동북부는
저의 여행지에서 가장 이상적인 곳이 되어버렸네요.
같은 것들을 많이 느낀듯합니다.

시카고도 꼭 한번은 가보고싶네요.
그 분위기 그립습니다~

그쵸. 적어도 한달 정도는 있어야 보이는 도시들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색안경을 벗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구요. 제가 예전에 뉴욕을 딱 이삼일 정도 가봐서 사실 별 느낌 없는데.. 말씀하신대로 일주일 이상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잘 보고 보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저렇게 큰 야외공연장에서 매일같이 무료공연이 펼쳐진다니 너무 멋질것 같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속에 들어와 있는 예술세계를 보면서 @thelump 님도 많이 흥분(?)하셨을거 같은데요.
일상속의 예술이 @thelump 님이 원하시는 것들이잖아요^^

네 언제 한번은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 노래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봤더랬죠. 시카고.. 정말 다시 가보고 싶은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평균적 일상이라는 말이 참 평화로워 보여 좋군요. 아~ 나의 평균적 일상도 고퀄의 문화생활이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스팀잇에서 많이 받아가고 있지요. 그림, 글 그리고 음악 ㅎㅎㅎ

저도 사실 한국에서는 그냥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ㅎㅎ 모니터로 보는 세상이 거의 전부입니다 ^^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1
JST 0.074
BTC 63908.28
ETH 1670.66
USDT 1.00
SBD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