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살아있는 유체 도시
꽃의 도시
천재들의 도시
르네상스의 발현지
여기는 피렌체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 좁은 길 끝에 마치 거인처럼 두오모의 쿠폴라(돔을 일컫는 건축용어)가 난데없이 우뚝 솟아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수록 양쪽의 건물 사이로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대한 주황빛 쿠폴라를 보고 걸을 때면 가슴이 설레고 두근두근거린다.
태양이 없고 달이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두오모의 쿠폴라가 없는 피렌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존재감을 도시 가운데에서 내뿜고 있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도시라는 시계를 작동하게 만드는 건전지같은 존재라서, 혹여라도 쿠폴라가 이 도시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피렌체 사람들은 그 상태로 일순간 정지해버리고 갑자기 병이 들며 결국은 다 함께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일요일 아침 피렌체에서는 거의 광장마다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상인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들도 과일,꽃,책,그림,옷,골동품,악세사리,공예품, 눈길을 끄는 온갖 신기한 물건 등 가지각색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야외에서 열리는 시장의 활발한 모습들은 여전히 피렌체가 과거의 영광만 회상하는 도시가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사람들이 활력있게 살아가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말해준다.
도시의 가장 큰 생명력을 주는 것은 역시 거리의 문화다. 광장문화의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는 유럽이기도 하지만 정말 거리, 골목, 광장마다 사람들에 의해 정말 다양한 색채가 깃들어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대형할인마트, 대형백화점, 각종 유명 체인점들이 아직 여기엔 전무할 정도로 삶의 공간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편리성을 제공해주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도시의 포탈화된 라이프스타일의 단점을 뭘까. 거리를 단지 이동 수단으로 퇴색시킨다. 그래서 도시의 생명력을 점점 앗아간다. 반면에 여기 피렌체는 정말 살아있는 유체도시다.
한시간 반 동안이나 줄을 서서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겨우 입장했다. 티켓을 끊고 두번째 방을 들어가니 저 끝에 거대한 다비드 상이 보인다.
사실 이게 원본이기도 하고 설치된 공간과 조명이 워낙 훌륭해서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더할나위 없는 인간의 몸에 대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조각으로 재현해놓았다.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에게 지구의 예술품을 딱 하나 보내서 소개할 수 있다면 난 다비드상을 택하겠다.
정말이지 이럴때면 어릴때부터 사진이나 컴퓨터에 의해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스포일러 당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물론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경이롭지만 바로 여기서 다비드상을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면 정말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따로 있는데, 다비드상보다는 그 앞에 놓여진 6개의 미완성 조각이다.
단지 돌에 갇혀진 사람의 형상을 꺼낼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말 처럼, 육중한 대리석에서 사람이 기지개를 펴듯 빠져나오고 있다. 만약 창조론이 옳다면 신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다비드상처럼 인간의 근육과 피부를 완전무결한 환영으로 재현할 줄 아는 그가 만든 이 조각상들은 결코 그런 비슷한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지 않아 보일만큼, 미켈란젤로의 고의성이 엿보인다.
그는 완성했기 때문에 여기서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 그가 발견한 이 새로운 미학과 현대성으로 하여금 그는 여타 다른 동시대의 조각가들과 확연히 '한번 더' 구분되는 것이다.
밀라노에서 보았던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돌과 인간 사이에 영원히 갇혀버린 슬픔이 느껴졌다면, 이 노예상들에게서는 무거운 돌을 박차고 나오고 있는 모습에서 마치 알이 부화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여행 중 단 한번도 꺼낸 적 없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림을 그린지 너무 오래되어 잘 될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이것만은 꼭 그리고 싶다.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경직된 선들이 종이 위를 흐른다. 돌에서 사람이 생성되고 있는 조각의 모습처럼, 그림도 역시 그런 느낌으로 나와주어야 한다. 20분 쯤 흘렀을까. 눈과 손의 감각이 점점 맞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슬며시 펜을 위쪽으로 올려 잡아 그리니 좀 더 자유로운 선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시간 남짓 지나, 펜을 놓았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도시가 너무 좋다.
@thelump
언제봐도 멋진 도시지요~~ 구경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혼자 피렌체를 여행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이탈리아 중 최고였어요! 특히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은 직후라 더더욱요 ㅎㅎㅎ
여기서 고미술품 복원하면서 사는 삶.. 상상해봤는데 꽤 괜찮은것 같더라구요. 피렌체에서만큼은 과거에 파묻혀 살아도안절부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ㅎ
영화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오이같은 여자와 헤어진다는 것은 아쉽지만요
아... 사진만 봐도 황홀해지네요. 간직하고 싶어 리스팀 합니다.👍👍
감사합니다 :)
피렌체도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에요.
죽기 전엔 가보길 바라며... ㅡ.ㅡ
이탈리아는 베네치아와 피렌체가 가장 좋았아요. 아니 유럽여행 통틀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
다시 가고 싶어지네요
누구든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피렌체 정말 예쁜 도시죠. 두오모의 화려한 모습도 기억이 나고, 저 다리도, 미켈란젤로 광장도 다 기억이 나네요.
피렌체는 모든 여행객이 반할 수밖에 없도록 세팅된 도시죠..
피렌체는 기억에 많이 남는 도시네요
3일 정도 머물렀는데..
딱 한달만 살아 보고 싶어요^^
구석구석 걸어서 하루하루 돌아 보고 싶은 곳입니다.
사진을 보니 추억돋네요 ㅎㅎ
굿밤 되세요^^
저는 열흘정도 머물렀는데 일년정도 살아보고 싶더라구요. 적당한 핑계가 생기면 그렇게 하고 싶네요. 더 늦기 전에요. ^^
피렌체만 10일이면 많이 봤겠어요^^
전 3일도 엄청 빡쎄게 돌아서 ㅎㅎ
숙소에 돌아와서 눈을 감고 누우면 잠깐인것 같은데
눈을 뜨니 아침이더군요 ㅎㅎㅎㅎ
다음에 피렌체에 가면
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 보고 싶어요^^
멍때릴수 있는 시간 확보해서 가면 더 좋드라구요 ^^
그러게요...
좀 멍때리기도 하고
그냥 아무 길이나 걸어도 보고...
한적한 벤치에 앉아서 음악도 들어보고...
여행하면서 이런게 참 어렵더라구요 ㅎㅎ
시간이 아깝단 생각과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압박감 ㅡㅜ
다음에 가서 꼭 멍때리기 해봐야겠어요^^
웃는 목요일 되세요~
저도 좋네요! ㅎ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라서요!
너무 좋은 글과 사진 감사드려요^^ 미켈란젤로의 노예상, 저도 정말정말 좋아하는 직품이에요! 수업시간에 처음 사진으로 보고 반해버렸죠. 피렌체에 꼭 가서 실물을 보고싶네요.
미리 알고 계셨군요. 저는 가서 처음 봤었습니다 ㅎㅎ 저는 매끈한 조각보다는 로댕이나 미켈란젤로 말기 조각처럼 마치 드로잉같은 조각이 더 좋더라구요. 나중에 가서 꼭 보시길요 :)
저는 이탈리아에서 피첸체를 못가서 상당히 아쉬웠어요 ㅠ
피렌체 넘 좋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가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