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살아있는 유체 도시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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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도시
천재들의 도시
르네상스의 발현지

여기는 피렌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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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숙소를 나서면 좁은 길 끝에 마치 거인처럼 두오모의 쿠폴라(돔을 일컫는 건축용어)가 난데없이 우뚝 솟아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수록 양쪽의 건물 사이로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대한 주황빛 쿠폴라를 보고 걸을 때면 가슴이 설레고 두근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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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없고 달이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두오모의 쿠폴라가 없는 피렌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존재감을 도시 가운데에서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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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거대한 도시라는 시계를 작동하게 만드는 건전지같은 존재라서, 혹여라도 쿠폴라가 이 도시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피렌체 사람들은 그 상태로 일순간 정지해버리고 갑자기 병이 들며 결국은 다 함께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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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피렌체에서는 거의 광장마다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상인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들도 과일,꽃,책,그림,옷,골동품,악세사리,공예품, 눈길을 끄는 온갖 신기한 물건 등 가지각색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야외에서 열리는 시장의 활발한 모습들은 여전히 피렌체가 과거의 영광만 회상하는 도시가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사람들이 활력있게 살아가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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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가장 큰 생명력을 주는 것은 역시 거리의 문화다. 광장문화의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는 유럽이기도 하지만 정말 거리, 골목, 광장마다 사람들에 의해 정말 다양한 색채가 깃들어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대형할인마트, 대형백화점, 각종 유명 체인점들이 아직 여기엔 전무할 정도로 삶의 공간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편리성을 제공해주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도시의 포탈화된 라이프스타일의 단점을 뭘까. 거리를 단지 이동 수단으로 퇴색시킨다. 그래서 도시의 생명력을 점점 앗아간다. 반면에 여기 피렌체는 정말 살아있는 유체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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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반 동안이나 줄을 서서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겨우 입장했다. 티켓을 끊고 두번째 방을 들어가니 저 끝에 거대한 다비드 상이 보인다.

사실 이게 원본이기도 하고 설치된 공간과 조명이 워낙 훌륭해서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더할나위 없는 인간의 몸에 대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조각으로 재현해놓았다.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에게 지구의 예술품을 딱 하나 보내서 소개할 수 있다면 난 다비드상을 택하겠다.

정말이지 이럴때면 어릴때부터 사진이나 컴퓨터에 의해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스포일러 당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물론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경이롭지만 바로 여기서 다비드상을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면 정말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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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따로 있는데, 다비드상보다는 그 앞에 놓여진 6개의 미완성 조각이다.

단지 돌에 갇혀진 사람의 형상을 꺼낼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말 처럼, 육중한 대리석에서 사람이 기지개를 펴듯 빠져나오고 있다. 만약 창조론이 옳다면 신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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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미완성'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다비드상처럼 인간의 근육과 피부를 완전무결한 환영으로 재현할 줄 아는 그가 만든 이 조각상들은 결코 그런 비슷한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지 않아 보일만큼, 미켈란젤로의 고의성이 엿보인다.

그는 완성했기 때문에 여기서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 그가 발견한 이 새로운 미학과 현대성으로 하여금 그는 여타 다른 동시대의 조각가들과 확연히 '한번 더' 구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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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보았던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돌과 인간 사이에 영원히 갇혀버린 슬픔이 느껴졌다면, 이 노예상들에게서는 무거운 돌을 박차고 나오고 있는 모습에서 마치 알이 부화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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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여행 중 단 한번도 꺼낸 적 없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림을 그린지 너무 오래되어 잘 될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이것만은 꼭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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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경직된 선들이 종이 위를 흐른다. 돌에서 사람이 생성되고 있는 조각의 모습처럼, 그림도 역시 그런 느낌으로 나와주어야 한다. 20분 쯤 흘렀을까. 눈과 손의 감각이 점점 맞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슬며시 펜을 위쪽으로 올려 잡아 그리니 좀 더 자유로운 선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시간 남짓 지나, 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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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도시가 너무 좋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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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봐도 멋진 도시지요~~ 구경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혼자 피렌체를 여행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이탈리아 중 최고였어요! 특히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은 직후라 더더욱요 ㅎㅎㅎ

여기서 고미술품 복원하면서 사는 삶.. 상상해봤는데 꽤 괜찮은것 같더라구요. 피렌체에서만큼은 과거에 파묻혀 살아도안절부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ㅎ

영화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오이같은 여자와 헤어진다는 것은 아쉽지만요

아... 사진만 봐도 황홀해지네요. 간직하고 싶어 리스팀 합니다.👍👍

감사합니다 :)

피렌체도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에요.
죽기 전엔 가보길 바라며... ㅡ.ㅡ

이탈리아는 베네치아와 피렌체가 가장 좋았아요. 아니 유럽여행 통틀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

다시 가고 싶어지네요

누구든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피렌체 정말 예쁜 도시죠. 두오모의 화려한 모습도 기억이 나고, 저 다리도, 미켈란젤로 광장도 다 기억이 나네요.

피렌체는 모든 여행객이 반할 수밖에 없도록 세팅된 도시죠..

피렌체는 기억에 많이 남는 도시네요
3일 정도 머물렀는데..
딱 한달만 살아 보고 싶어요^^
구석구석 걸어서 하루하루 돌아 보고 싶은 곳입니다.
사진을 보니 추억돋네요 ㅎㅎ
굿밤 되세요^^

저는 열흘정도 머물렀는데 일년정도 살아보고 싶더라구요. 적당한 핑계가 생기면 그렇게 하고 싶네요. 더 늦기 전에요. ^^

피렌체만 10일이면 많이 봤겠어요^^
전 3일도 엄청 빡쎄게 돌아서 ㅎㅎ
숙소에 돌아와서 눈을 감고 누우면 잠깐인것 같은데
눈을 뜨니 아침이더군요 ㅎㅎㅎㅎ
다음에 피렌체에 가면
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 보고 싶어요^^

멍때릴수 있는 시간 확보해서 가면 더 좋드라구요 ^^

그러게요...
좀 멍때리기도 하고
그냥 아무 길이나 걸어도 보고...
한적한 벤치에 앉아서 음악도 들어보고...
여행하면서 이런게 참 어렵더라구요 ㅎㅎ
시간이 아깝단 생각과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압박감 ㅡㅜ
다음에 가서 꼭 멍때리기 해봐야겠어요^^

웃는 목요일 되세요~

저도 좋네요! ㅎ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라서요!

너무 좋은 글과 사진 감사드려요^^ 미켈란젤로의 노예상, 저도 정말정말 좋아하는 직품이에요! 수업시간에 처음 사진으로 보고 반해버렸죠. 피렌체에 꼭 가서 실물을 보고싶네요.

미리 알고 계셨군요. 저는 가서 처음 봤었습니다 ㅎㅎ 저는 매끈한 조각보다는 로댕이나 미켈란젤로 말기 조각처럼 마치 드로잉같은 조각이 더 좋더라구요. 나중에 가서 꼭 보시길요 :)

저는 이탈리아에서 피첸체를 못가서 상당히 아쉬웠어요 ㅠ

피렌체 넘 좋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가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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